가을 바당

제주의 가을(3)

by 박현

제주 사람들은 가을 바당('바다'의 제주어)이 최고라고 말한다.

육지에서는 지금쯤 늦가을의 정취가 묻어나지만, 제주 바당은 아직 포근하다.


가을 바당이 최고라고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다 수온은 한 계절을 늦게 간다고 하는데, 여름을 지나고 한참이 되어도 바닷물의 온도는 급격하게 내려가지 않는다. 바닷물에 발을 담가도 차갑다기보다 따뜻한 느낌이 더 많다.


서귀포 바당을 걸으면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바닷가에서 느끼는 바람은 거친 질감의 바탕에 서귀포 특유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섞여 있다.

머리카락을 휘감기는 세찬 바람도 이맘때는 조용히 사라진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건조해지면서 해풍의 비릿함에 꽃향기가 실린다.

바닷가에 자생하는 나무들도 바람에 씨방을 열고 검붉게 여문 열매를 떨어 뜨린다.

가을 바다는 아무것도 없어도 쓸쓸하지 않다. 텅 비어있어도 가득하다.


가을엔 하늘이 맑아져 바다와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바닷물이 하늘과 맞닿아 곧은 선을 만들어 낸다.

가을 수평선은 그 너머를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가을 바당은 바라만 보아도 좋다.




구두미 바당으로 간다.

햇살에 눈이 부신 바당 물결이 벨롱거린다('반짝이다'라는 뜻의 제주어)

포구 앞에 왕돌이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있는데 벌써 보랏빛 해국이 피기 시작한다.

시원하고 포근한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며 옅은 색이 짙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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