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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Apr 27. 2021

출산 후 달라진 일상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일상의 변화들

출산 후에 뭐가 제일 많이 달라졌어요?


라는 질문을 주변에서 자주 받는데, 답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달라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이기도 하고, 상대는 나에게 거창한 답을 기대하는 것 같은데 내 답이 실망스러울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출산을 하면 마음가짐부터 세상을 보는 관점, 삶의 우선순위, 관심사 등 참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그 중 하루하루 내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들은 사실 크고 거창하기보다는 사소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더라.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큰 변화라고 느껴지는 일상의 변화들을 몇 가지만 뽑아보자면,



1. 내 몸아, 너 낯설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몸


내가 붓기가 다 빠진 후 거울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성장이 마무리된 20대 이후로 15년 동안 하루에 적어도 2-3번씩 마주하던 내 몸인데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 마치 내 얼굴에 다른 사람의 몸을 갖다 붙여놓은 것만 같다. 배는 아기가 진작에 방을 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룩하고, 살은 흐물흐물하고, 한가운데에는 임신선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허리는 두껍고, 가슴은 크다. 여기까지는 아기를 낳고 수유를 하느라 그렇다 치지만 팔, 등, 허벅지, 엉덩이 등 온몸 구석구석에 살이 붙었다. 임신 기간 내내 지속된 입덧으로 잘 먹지 못해 몸무게 증가가 많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낯선 것은 단순히 체형만이 아니다. 평소 체력 좋고 건강하고 아픈 곳 없는 나였는데, 출산 후 몸에 성한 곳이 별로 없다. 대표적으로 손목, 발목, 골반, 무릎, 그리고 손가락까지 몸의 관절이란 관절은 다 아프다. 그중에서도 손가락과 손목 관절이 제일 아픈데 주먹을 쥐는 것조차 힘들다. 그리고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산후 2달 후 요가를 다시 시작했는데 수없이 해오던 동작들임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결국은 중단을 했고 덕분에 다이어트는 한 뼘 더 멀어지고 말았다...  


2. 모닝 리츄얼: 달라진 아침 일과

 

출산 전 모닝 리츄얼 vs 출산 후 모닝 리츄얼


아침은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하루의 시작이 알차면 그 날은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침 일과에 꽤나 진심인 편이다.


출산 전 약 3년 정도 꾸준히 지켜오던 내 모닝 리츄얼은

기상 > 아침 운동 > 샤워 > 뉴스 들으면서 옷 입기 > 불어 팟캐스트 들으면서 아침 먹기 > 다이어리에 오늘 할 일 적기 > 하루 시작

이었다. 반면 출산 후 나의 모닝 리츄얼은

기상 > 테오 기저귀 갈기 > 테오 비타민D 먹이기 > 테오 밥 먹이기 > 테오 트림시키기 > 테오랑 놀기 > 테오 낮잠 재우기 > 우유병 소독하기 > 세수하기 > 임산부용 종합비타민 먹기 (모유수유를 하기 때문에 계속 먹어야 한다) > 아침 먹기

이다. 나의 모닝 리츄얼은 이제 내가 아닌 테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3. 책장


출산과 함께 달라진 일상의 변화 중 또 하나는 바로 나의 책장이다. 어느새 육아 서적으로 가득 차 버린 내 라이브러리. 지난 4개월 동안 육아 서적 외에는 읽거나 구입한 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북클럽에서 미혼인 친구들에게 열심히 육아 팁을 공유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ㅎㅎ (2주에 한 번 영상으로 만나는 북클럽에서는 각자가 지난 2주 동안 읽은 책 1권씩을 공유한다.)  


4. 패션: 입는 옷과 머리스타일


출산 후에는 입는 옷과 헤어스타일 역시 크게 달라졌다.


옷은 모유수유를 하다보니 수유가 가능한 옷만 입게 된다. 보통 수유복을 입고, 가끔 수유복이 질릴 때면 상의를 여닫을 수 있는 옷을 골라 입는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옷들은 수유가 가능하지 않은 옷들이라서 한동안은 입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4개월째 옷 5벌로 살고 있다 ㅎ


옷의 소재 또한 중요한데, 아기를 수시로 안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아기의 피부가 내 옷에 닿기 때문에 소재가 자극이 없고 부드러운 옷만 입게 된다. 게다가 테오는 안았을 때 내 옷에 얼굴을 마구 비비적대기 때문에 더더욱 옷의 소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출산 전에는 옷을 사면서 소재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되었다.  


옷과 더불어 헤어스타일 역시 달라졌는데, 출산 이후에는 머리를 더 이상 풀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탈모로, 출산과 동시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이게 단순히 '빠진다'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볍게 빗어내렸을 뿐인데도 한 움큼이 빠져나오고, 머리를 감으면 매번 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때문에 머리를 풀고 있으면 금세 테오 입에, 옷에, 침대에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테오가 손으로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월령이 되고부터는 수시로 머리채를 잡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느새 올림머리가 내 고정 헤어스타일이 되어버렸다.

  


이 외에도 내 일상의 구석구석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출산을 하면 삶이 180도 변한다고들 한다. 아이를 낳아보기 전에는 그 변화가 엄마라는 존재가 되고, 모성애가 샘솟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커다란 의미의 변화들을 말하는 건 줄 알았다. 물론 그것도 맞지만 나의 일상 구석구석이 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구나 싶다.


사실 내게는 모성애, 가치관, 세상을 보는 관점 등의 거창한 개념의 변화들 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변화들이 더 피부로 와 닿는다.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일상의 사소한 변화들에서 - 하루를 시작하고, 책을 고르고, 옷을 고르고, 머리를 하는 일상의 순간순간에 테오가 중심인 결정을 하는 나를 보며 - '아, 내가 엄마가 되었나보다' 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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