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여행
"쌤, 혹시 6월에 여행 갈 계획 있으세요?"
대학원 동기쌤에게 연락이 왔다. 6월에 여행 갈 마음 있냐고. 마침 친구들과 6월에 여행 가려고 마음먹고 있던 중인지라 귀가 쫑긋. 알고 보니 쌤이 속해 있는 연구소에서 목재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란다. 1박 2일 숙소 제공해 주고 연구 참가비까지 준다니 안 갈 이유가 없다. 여행 같이 가기로 한 친구 셋과 함께 일정을 조정해서 드뎌 출발.
숙소는 청포대센셋. 청포대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는 꽤 큰 규모의 리조트형 펜션.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수영장은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규모였다. 같이 온 친구들은 연신 "가족들과 함께 왔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연발. 우리끼리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내자고 왔건만 아이들만은 온종일 마음에 품고 다녔다. 좋은 것을 보면 늘 그렇듯이 가족이 먼저 생각난다.
실험 참가 후 자유시간. 출발할 때 날씨를 확인하니 온종일 비 비 비. 하필 몇 년 만에 친구들과 여행인데 비라니... 울상을 짓고 있을 새도 없이 비가 와도 즐기자며 밖에 나가니 적당히 바람이 불고 구름이 해를 가려주어 딱 사진 찍기 좋은 날씨로 세팅되어 있었다. 하늘도 우리를 돕고 있다며 친구들이 좋아하니 여행을 주도한 나로서는 안심 또 안심. 차에서 옛 노래를 부르며 마검포 방파제로 고고씽.
펜션에서 10분 남짓을 달려 도착한 방파제는 그림 같았다. 아련하게 저 멀리 보이는 등대. 그 주변으로 펼쳐진 자갈밭. 바다 자갈은 강자갈에 비해 거칠고 투박했다. 그 거친 질감이 마치 나무껍질 같다. 예전에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보았던 풍경과 흡사했다. 낮게 깔린 구름과 아련하게 빛을 내는 해변 그리고 아스라이 하늘 위로 사라질 것만 같은 등대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다. 친구들에게 오키나와가 꼭 이런 모습이라며 그때 기억을 들려주니 그렇담 자기는 굳이 오키나와 안 가도 되겠다며 한 친구가 농담을 했다.
배가 정박해 있는 한편에는 해안 구조 훈련을 하는 해안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는 안심하고 일상을 산다. 오늘 흘린 땀방울이 인명구조로 이어져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응원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 또한 인명구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일상은 때로 바다와 같아서 평소에는 잔잔한 물결 위에 배가 안전하게 항해를 하지만 가끔 몰아치는 폭풍우에 배가 전복되기도 한다. 인생이란 항해는 전복의 위험을 감수하며 파도를 뚫고 나가는 모험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렇다면 상담자는 전복된 사람을 구조해 내는 구조요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인생의 파도 속에서 안전하게 지켜내고 싶다!
안정하게 정박되어 있는 배에 '스카이'라고 적혀 있다. 이런 우연이!! 나의 부캐 스카이원장의 이름이 떡하니 정박된 배의 정수리에 붙어 있으니 사진을 아니 찍을 수 없는 상황. 난 이런 우연이 여전히 신기하다. 마치 이 여행은 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지지해 주는 증거라도 되는 양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한 동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좌절했었다. 몇 군데 지원서를 내고 낙방하기를 거듭하다가 지금의 센터를 만났다. 7월에 오픈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책임 또한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난 상담을 통해 새 힘을 얻는 내담자를 바라볼 때마다 이 길에 들어서게 된 걸 감사해한다.
사람들과 갈등하고 조직에서 외면당하고 내 소명의 자리가 어디인지 물을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친구들.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정기 기고하는 글을 다음날 송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친구인 나의 취업을 축하하며 기꺼이 이 여행에 동행해 준 나의 절친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에 만난 친구들아, 곱게 늙어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