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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Dec 31. 2023

구글은 왜 당당히 훔치라고 말하는가?

#세계 최강 검색엔진 구글의 학습전략

 "구글에서 자주 쓰는 말 하나가 '당당하게 훔쳐라 Steal with pride!'다."


구글 커스터머 솔루션팀을 이끌고 있는 구글 코리아 조용민 상무가 최근작 '언러시'에서 공개한 구글의 학습 전략이다. 기업은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조차 정보 공유에 인색한 편이다.  그런 이유로 옆 팀에서 무슨 프로젝트가 진행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뉴욕 구글 사무실 전경. EPA=연합뉴스

   

여타의 기업과 달리 구글은 정보 공유가 활발하다.  정보나 노하우를 기꺼이 내놓고 공유하며 다른 팀에게 배우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얻어 오는 것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라고 부추길 만큼 학습에 진심이다. 


한번은 제빵 장인을 코칭한 적이 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대 상권에서 30대 40대에 창업한 사장들 대여섯명이 아침마다 모여 책을 읽었다.  젊은 사장들은 의외로 써먹기 좋은 장사 관련 책이 아닌 진지한 인문학 책을 읽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모여 두툼한 책을 읽고 때론 일대일 코칭도 하며 관계는 깊어졌고 장사도 하나둘 자리 잡아 나갔다. 그 사장들 중에 폴사장이라고 불리는 제빵 장인이 있었다. 여느 때과 같이 책을 읽고 나누는 중에 불현듯 이런 말을 했다. 


"기술은 배우는 게 아니라 훔치는 거예요." 


'훔친다'라는 말의 어감이 좋지 않아 인상을 찌렸더니 이내 알아차리고 폴사장은 설명을 시작했다. 주방에서는 누구도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단 말이다. 일터는 학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니니 일단 입사를 했으면 어느 정도 기술은 있다고 보고 바로 일을 시킨다는 것이다. 일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한두 번 보고 곧잘 따라 하지만 더디면 그만큼 뒤처진 작업 속도로 인해 다른 직원들의 업무가 가중되니 구사리를 먹고 버티지를 못하게 된단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선배들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히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당시에는 그랬단다. 그렇게 얘기하는 폴사장에게서 옛 시절의 묘한 향수같은 것이 느껴졌다.


'기술은 배우는 게 아니라 훔치는 것'이란 제빵 장인의 말에  나는 '일류의 조건'이란 책이 떠 올랐다. 사이토 다카시는 일류를 업에 능숙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지금은 절판이 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의 내용을 뇌과학자인 박문호 박사는 방송에서 세 가지로 요약했다.  


일류는 전문가 정도가 아니라 대가다. 전문가 열명 중에 하나는 대가가 된다. 그 분야를 말하면 떠오는 사람이 바로 일류다. 이런 대가가 되는 조건의 첫번째는 '추진하는 힘'이다.  짧은 시간에 압축하는 힘이 '추친하는 힘'이다. 이건 누구나 다 하는 얘기다.  두번째는 '훔치는 힘'이다. 지식의 도둑이 되는 것이다. 


지식을 모방하라는 얘기는 많이 한다. 지식 훔치기를 사람들이 잘하는가 그렇지 않다. 훔치는 걸 잘하는 게 도둑이다. 도둑이 되려면 지갑이 비어 있어야 한다. 전문가에게 지식을 들을 때는 지갑을 비워야 한다. 자기 의견을 비워야 한다.  그렇게 훔치기의 고수가 되면  처음에는 지식을 나중에는 마음을 훔친다.


'훔치는 힘'에 '요약하는 힘'이 뒷받침 되면 목표가 드러난다.  도파미네이션에서는 '중요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지식은 평등하지 않다.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여 체화해 나갈 때 일류가 된다.  


인생은  돈, 사람, 지식을  모으는 과정이다. 모은다 함이 바로 훔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이 세 가지를 잘 훔치는가 아닌가로 판가름 난다. 제대로 훔친다는 것에 대한 내용이 사이토 다카시의 일류의 조건이다. 박문호 박사의 이같은 명쾌한 요약은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는 도덕경 4장과 잇닿아 있다. 함석헌 선생의 도덕경4장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다. 


비임으로 쓰는데 혹 차지 않은 듯 하더라

깊도다 모든 것의 마루인 듯 하구나

그 날카로움을 꺽고 그 얽힘을 글르며

그 빛을 고르게 하고 그 티끌에 같이하니 맑도다

혹 있는 듯 하고나내 그 뉘 아들임을 알지 못하겠도다

님보다도 먼저인 듯하구나




컵은 비어 있기에 쓸모 있다. 채워져 있는 컵에는 물을 담을 수 없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가득 담긴 지식을 덜어내지 않으면 정보도 노하우도 얻을 수 없다. 끊임없이 비워내는 과정이 지식의 창출에 있어서 최일선의 과제인 셈이다. 


경영학자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학습의 첫번째 조건으로 '무지의 지'를 꼽는다. 지식의 원이  커지면 커질수록 무지의 접촉면이 늘어나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무지를 깨닫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이것은 배우는 이에게나 가르치는 이에게  모두 필요하지만 아무 데서나 꽃피우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교사들의 교사로 불리는 파커 파머는 진정한 교육이 꽃피우는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자신의 무지와 연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조성될 때 교육의 가능성은 증대된다. 그와 달리 공포는 교육을 전반적으로 마비시킨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파커 파머는 공포의 문화에 전염된 교실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학생들은 학점을 못 딸까봐, 강의를 이해하지 못할까봐, 피하고 싶은 화제에 말려들까봐, 자신의 무지가 노출될까봐, 자신의 편견이 도전받을까봐, 동급생들 앞에서 바보처럼 보일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공포와 교사들의 공포가 함께 뒤섞이면 공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교육현장은 마비되어버린다. 




공포로 마비된 교실에서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안전한 환경이 조성될 때 인간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한다. 기업도 사람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교실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포가 지배하는 기업은 성장이 둔화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교가 되었든 기업 현장이 되었든 정보와 노하우를 마음껏 훔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퍼실리테이션을 하면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학습역량은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맘껏 기량을 펼칠 장이 마련되지 않아 역량이 숨겨져 있었다.


어떤 기업의 중간 관리자급 리더십 교육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이런 교육은 신물이 난다는 듯 삐딱하게 앉은 사람들은 연신 스마트폰을 들어다 놨다 하며 강의를 시작도 하기 전에 빨리 끝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강의 내용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모양새여서 이론적인 강의보다는 퍼실리테이션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간단히 러닝 퍼실리테이션의 개념을 설명하고 포스트잇을 나눠준 후 이제까지 만난 리더십 중에 가장 본받고 싶은 리더십의 특징 다섯 가지를 적어보라고 요청했다. 



교육 현장에 모인 중간 관리자들은 신나게 포스트잇을 채워 나갔다. 그렇게 모인 포스트잇을 모아 발표하게 하니 리더십 교과서 목차로 삼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근사한 내용들이 화이트보드에 채워졌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암묵지가 있다. 말과 글로 정리를 못했을 뿐 그 안에 현장에서 얻은 보물이 담겨있다. 결국 이론이라는 것도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것을 말과 글의 전문가인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화이트보드도 모자라서 전지를 덧붙여서 암묵지가 형식지로 자리잡혀 나가는 모습을 보자 현장의 리더들은 박수를 쳤다. 물론 당일 교육자인 내가 유도한 박수이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스스로에게 보내는 자긍심이 깃든 응원의 박수였다. 


나는 현장의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에게는 지혜가 있다. 20년 세월 넘게 교육 현장에서 밥벌이를 하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다 현장에서 그들의 지혜를 잘 훔쳐 왔기 때문이다. 현장의 사람들은 관대하여 그날도 화이트보드와 전지에 그림처럼 수놓인 리더십 통찰을 내것으로 삼아 강의에 써먹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리더들은 합창을 하듯 '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외치는 리더들의 얼굴은 자긍심으로 빛났다.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인 전망이 어둡다. 이런 시절일수록 개인이든 조직이든 기세가 꺽이면 안된다. 한마디로 구성원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사람은 인정받고 가치를 존중받을 때 기운이 난다. 내가 쓸모 있을 뿐 아니라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힘이 나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가치가 확인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고도화는 기업간 기술격차를 줄이고 있다. 이제 기술을 숨기는 기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오픈하는 기업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제 시장은 숨겨논 보화를 지닌 기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빈번히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의 영향력과 가능성에  투자한다.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훔쳐라 Steal with pride!'하고 말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자.


*이번 칼럼은 제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례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례뉴스'는 현장지식과 실천사례를 공유하는 비지니스 언론사입니다. 앞으로도 칼럼과 인터뷰 기사를 한달에 한 두번 정도 '사례뉴스'에 기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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