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 후에도 항상 나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 함을 알았다. 하지만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첫 숨을 들이켰다.
처음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친구도 사귀고 수업도 열심히 들으며 어학원 생활을 이어갔다. 공부가 이토록 신나고 재밌는 일이었을까. 한국에서의 힘듦은 모두 잊은 채 공부와 친구를 사귀는 데에만 집중했다.
생활에 적응하며 즐겁게 수업을 듣고 있는 어느 날, 수업에서는 ‘가족’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반에서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8명의 학생이 발표 순서를 기다리며 자신의 가족을 소개할 생각에 들떠 보였다. 나는 한국에서 이미 여러 사회적 시선을 경험했고 그 시선들은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기에 큰 긴장감이나 두려움 없이 엄마와 나, 동생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첫 발표를 시작한 친구부터 큰 충격이었다.
그 친구의 국적은 오만이었고 어학원을 같이 다니는 자신의 형은 첫째 엄마의 아들이라고 했다.
“첫째 엄마의 아들이 무슨 말이야? 큰엄마?”
친구들의 질문 세례를 받은 그 친구는 태연하게 웃으며 가족 소개를 이어나갔다.
“우리 아버지는 총 세 명의 부인을 두고 있는데 우리 형은 첫째 어머니의 아들이야. 나는 세 번째 엄마의 아들이고”
“너…. 그럼 너는 세 번째 엄마의 큰아들이야?”
책에서만 보았던 가족의 형태를 직접 들으니 너무 신기했다. 다른 것보다 이러한 가족 형태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그 친구의 태도를 보고 나는 더욱 놀라웠다. 오만은 최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고, 모든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공평해야 한다고 했다.
곧이어 이탈리아 친구가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다가 한마디를 얹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낳아서 키우고 있지만, 혼인신고 안 했는데.”
여기저기서 질문이 이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비혼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애들이 꽤 많아. 근데 우리 지역에서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아. 그런 가족이 많은걸?”
곧이어 콜롬비아 등 다른 친구들의 가족에 대해서도 수많은 에피소드가 이어졌고 나처럼 이혼가정에서 커온 친구도 있었다.
‘뭐야.. 내가 너무 평범하잖아..’
내가 너무 평범해져 버려서 당황한 것인지 그들의 스토리가 너무 자극적으로 느껴진 것인지 나는 당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러한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 좋았다. 모든 친구는 서로의 가족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거나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