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이 뒤엉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릴 적 내가 꿈꾼 나의 미래 그리고 우리 가족, 어느 것 하나 내 예상과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당장 내 앞에 놓인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를 보지 않았던 시간의 죄책감들이 뒤엉켜 나를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병원 생활로 나는 병문안을 오가며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사실 아버지를 용서하진 않았지만, 그냥 당장 아버지가 다 나았으면 하는 마음밖에 없었고 그게 내 기도의 전부였다. 그리고 다행히 아버지는 차차 회복해나가셨다.
나는 본래 낙천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현실을 보면서 암담해 했다. 그렇지만 마냥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어렵게 공부하여 딴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나와 동생을 입히고 먹였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무엇을 보고 버틴 것일까?
아마 엄마의 까만 눈동자는 항상 우리를 담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깊은 어둠에서도 빛과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나는 똘똘 뭉치려고 했다. 서로에 대한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계속 붕대만 감은 채 전진했다.
이혼 후 좋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집으로 이사를 하였을 때, 나는 엄마에게 웃으며 내 방은 핑크 벽지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이삿날 안방 화장실에 있는 짐을 싸며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세면대가 없는 화장실은 생각보다 적응이 어려웠다. 사실 세면대가 없었는지 샤워기가 없었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너무 극적인 변화이고 힘든 시간이라 뇌에서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 틀림없다. 화장실에서 씻는 게 추워 엄마와 나는 목욕탕에 자주 갔다. 세찬 바람이 부는 겨울날 목도리를 칭칭 감고 목욕 가방을 들며 집에 걸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어루만져줄 시간도 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쭉 오셔서 구석에 있는 집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