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은 나 그리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한 사람. 봉인된 박스를 가슴에 안고 잠시 내려놓을 때마다 누가 열어볼까, 무언가 들춰질까 걱정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존심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을 때, 엄마도 애써 사회의 시선을 외면하며 몸을 움츠리셨다. 엄마는 직장과 주변에 이혼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침대는 꼭 큰 사이즈로 사용하셨다. 이사를 갈 때마다 좁은 방에 큰 침대를 끌고 가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서른이 넘어서까지 왜 엄마가 큰 침대를 썼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시집가는 날, 엄마는 큰 침대를 버리셨다.
그렇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혼자서 모든 걸 감내하셨다.
이혼가정의 이름값은 생각보다 지불 비용이 컸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나에게는 크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내 가족을 원망하고 연민했다. 그리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 번씩 울음을 터뜨리다 나는 그 시절을 아예 잊기로 했다.
“나빴던 기억은 증거가 없어. 지나간 자리는 흔적조차 남지 않으니까 나만 잊으면 되는 거야.”
고요하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날, 나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은 상상, 큰 화마에 휩싸여 집이 송두리째 채 타버리는 상상. 가장 평화롭고 행복할 때 나는 항상 불안에 휩싸였다. 그렇게 항상 저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소용돌이는 조금씩 나를 버텨내기 힘들게 만들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로 살며, 간신히 버티고 있을 때 나는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해 걸었다. 4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까맣고 핼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이 날 절벽 끝으로 모는 것 같았다.
“이거 아니야…. 내 인생은 이렇게 아버지와 이별하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