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오셔서 구석에 있는 집이요.”
배달 아저씨가 한참 우리 집을 찾았다. 아랫집에서는 우리 집 누수 때문에 물이 들이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에는 층간소음이 있다며 조용히 걸어달라고 했다. 중학생들 하교 시간이 될 때면 동네 불량 청소년들은 우리 집 뒤편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가 창문을 타고 코끝을 찔렀다. 나는 창문을 열고 그들에게 매서운 눈빛을 쏘아댔다.
그리고 그 매서운 눈빛의 대상은 점점 세상을 향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방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그리고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일을 끝내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누워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몸은 아팠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며 깨달았다.
부모의 부재와 환경의 변화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닥쳐와
다시 꿈꾸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나를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것을.
학교에 간 어느 날, 학식을 먹다 친구들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야기 도중 가족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친구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난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랑 둘이 살고 있거든.”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 그렇구나”
친구들의 당황한 기색과 어투를 보고 마치 나는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에게 왜 굳이 가족사를 이야기하지?’
자리에서 나와 친구에게 질문했다.
“물어보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이야기한 거야?”
친구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잘 지내다가도 부모님이 이혼한 걸 알면 멀리하는 친구들이 있었어, 그래서 이젠 만나자마자 이야기해. 그래도 괜찮으면 같이 지내겠지.”
툭 내뱉은 이야기가 아닌 오랜 시간 겪은 아픔으로 선택한 방법임을 알았다. 세상을 향해가는 나의 매서운 눈빛처럼 그 친구는 날카로운 잣대를 허공에 외롭게 휘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