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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Mar 25. 2019

캡틴 마블을 보고 뒤통수를 맞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우리의 시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젯밤, 동생과 심야영화로 캡틴 마블을 보러 갔다. 평소에 영화에 대한 글을 즐겨 쓰는 것도 아니고, 마블 팬도 아니기 때문에 늦게서야 가서 보고 왔다. 그리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최근 엄청난 마블 팬이자,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마블은 정치 영화야"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진 몰라도, 정말 굉장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싶어진 것도 몇 년 전 설국열차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스크럴이 악당이 아니라고?!


(일단 <캡틴 마블>은 무엇보다 페미니즘 정서가 흐르는 영화다. 그리고 그 요소를 잘 그려낸다. 하지만 그 부분을 설명한 글은 이미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난 그 이외에 개인적으로 나 자신을 놀라게 만들었던 두 가지 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렇게 생긴 친구들이 나온다. 누가 봐도 무섭고, 나쁜 놈 비주얼... 하지만 그것이 나의 잘못된 선입견이었음을


영화는 중반까지도 스크럴을 악당으로 몰아간다. 심지어 브리 라슨(캡틴 마블)은 그들에게 '너희들은 테러리스트야(두 번째 점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역시 굉장히 멋있는 대사였다!)'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이 흐름과 시각에 자연스럽게 설득된다. 그리고 당연히 스크럴이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고? 솔직히 말하자. 스크럴의 외모 때문이었다(최소한 나에겐 그랬다...). 징그러운 피부, 흉측하게 생긴 귀, 무섭도록 새까만 눈은 우리로 하여금 혐오와 무서움을 불러일으켰고, 저들이 '나쁜 놈'이라는 전개와 시각에 더욱 설득되게 만들었다. 반면, 크리족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저들은 '정의'를 입에 담는다. 왠지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 어떤 배경도 설명되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무비판적으로 크리족이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영화를 보신 분들만 알겠지만, 심지어 나는 머그잔에서 김이 올라올 때까지도, "앗, 그럴 줄 알았어! 스크럴한테 당했구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악당이라고 확신했던 스크럴은 사실 피해자이고, 약자였다.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몰고, 학살하는 건 우리와 똑같이 생긴 크리족이었다. 뒤통수를 크게 맞았다. 그리고는 생각해보게 된다. 도대체 난 왜 그렇게 철석같이 스크럴이 나쁜 놈이라고 믿었을까? 그리고 깨닫게 된다. 사실 영화 속엔 스크럴의 '외모' 외엔 그들이 악당이란 단서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히스패닉(남미, 멕시코계)과 흑인을 보면 자연스레 더 경계하고, 위험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내가 다른 게 무엇인가... 반성하게 되었다.



미국 까는 미국 영화


너희들은 테러리스트야


출처 다음 영화


스크럴이 피해자임이 밝혀지고 나서야, 이 대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 대사는 누가 하는 말일까? 누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일까? 이 대사의 화자는 바로 '미국'이다. 크리족은 자신의 '질서'에 복종하지 않는 소수 종족(스크럴족도 이중 하나다)들을 힘으로 제압한다. 자신이 만든 기준을 전 세계의 질서로 만들고, 복종을 요구하며, 통제에 불능할 경우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나라. 미국.


"너희가 뭔데 너 자신이 아닌 모두의 질서를 만들고, 너희가 뭔데 복종을 요구하고, 너희 뭔데 통제를 하냐"라는 질문을 미국은 받지 않는다. 우리 역시 질문하지 않는다. 영화 속 크리족도 그렇다. 우리는 크리족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중 1, 2 때 미국에서 사회 수업을 듣다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교과서 한쪽엔 아주 큰 천사 그림이 하나 있고, 마주 본 쪽에는 일명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를 설명하고 있었다. 미국은 전 세계에 정의를 바로 세울 사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미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한 '먼로 독트린'에서부터 미국은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개입하고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내가 교과서에서 본 그 그림이다. Manifest Destiny라 치자 바로 이 그림이 나오는 걸로 봐서 비단 그 교과서에만 있던 게 아니라 상징적이고, 유명한 그림인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손을 들고 물었다. (바로 몇 주 전, 수업 시간에 동물 농장을 읽고, 소련의 Propaganda(정치 선전)에 대해 비판했었다) "도대체 이게 얼마 전에 배운 소련의 Propaganda랑 다른 게 뭐죠???" (이 글과 별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사실 여기서 더욱 놀랐던 건 선생님의 반응이었다. "정말 훌륭한 지적이야"하며 나의 의견을 인정했던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데, 이렇게 다른 사고들이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그들의 태도가 미국 사회의 다른 힘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이런 미친 발상을 교과서에 실어 놓았다는 건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국제 기사를 쓸 때, 미국 언론들의 시각을 그대로 빌려서 쓴다. 특히 갈등이 심한 이슈에 있어서는 거의 100% 미국의 시각을 대변한다. 그 시각은 이미 자연스레 우리 머릿속에 스며들어있다. <캡틴 마블>은 이런 우리의 시각에 질문할 것을 말한다.




이런 메시지를 던진 영화가 미국 영화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마치 "Manifest Destiny가 소련의 Propaganda랑 다른 게 뭐죠"라는 질문에 '정말 훌륭한 지적이야!'라고 말했던 선생님처럼. <캡틴 마블>을 통해 마블 영화 중엔 정치 영화가 많다는 그 사람의 말에 더 설득되는 것 같다.


<캡틴 마블>은 많은 이야기 거리를 담은 재밌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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