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사회주의 이론을 접한 것은 케임브릿지 대학 경제학 수업에서였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마르크스 경제학과 사회주의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이 시간은 한국에서 자라며 내 안에 자연스레 내재된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해소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이 시대에도 문학과 예술 사회에서 인정받는 작품들은 사회주의 작품들이 많다. 같은 황금종려상을 받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유명한 사회주의 영화감독인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예술, 문학계에서는 이런 작품이 없었다. 사회비판 영화는 많았지만, 대중 영화로 자본주의를 직설적으로 비판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내게 [기생충]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사회주의 영화가 나왔다. 그것도 2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만드는 엄청난 전개와 재미와 함께! (개인적 의견이지만, 사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작품은 의미와 감동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재미... 는 없는 것이... 개인 의견 ㅎㅎ)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기생충]은 대사 하나하나, 소품의 상징, 화면의 구성, 음악 등 곱씹을수록 정말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이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영화 속에 들어있는 그 사회주의적 이론과 고민거리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다른 주제는 이미 훌륭한 리뷰들이 많이 있다. 이미 나와있는 여러 시각들에 더해,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생각해보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엘리트와 노동자들은 함께할 수 있을까?
[기생충] 속 두 계급의 공존. 그리고 냄새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책이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조지 오웰이 사회주의가 왜 대중에게 지지받지 못하는지, 그 시대의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뻘짓'들을 하고 있는지 속 시원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다수가 평범한 노동자이고 시민인데, 왜 진보주의가 지지받지 못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강추'한다).
이 책 속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이라는 장에서 조지 오웰은 솔직하게 말한다. 사회주의자이지만 결국 엘리트인 자신도 하층 노동자 계급의 더러운 옷과 집 앞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노동자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지만, 그들이 더러운 입을 대고 돌려 마신 술병에 차마 내 입을 갖다 대진 못하겠더라고 조지 오웰은 말한다. 이 '건너기 힘든 강'은 진보주의의 영원한 숙제이다.
[기생충]에서도 이런 고민은 여러 군데 등장한다. 영화 속 기우가 자신과 애정을 나누는 관계인 부잣집 딸에게 "나 여기 어울려?"라고 묻는 장면이라던가, 수차례 등장하는 '냄새'가 그렇다. 영화 속에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 냄새는 끊임없이 이선균의 가족(부자)과 송강호의 가족(하층민)의 공존을 방해한다.
세상엔 '자본가'와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더 재미있었던 것은 그 '냄새'의 또 다른 기능이다.
이 역시 조지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지적하는 부분인데, 사회주의자들은 이 세상에 '자본가'와 '(최하층) 노동자'만 있다고 생각하는, 굉장히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끔은 노동자가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엔 그 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밤늦게 야근하면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화이트 칼라들은 진보의 적인가? 콩알만 한 자본도 자본이라고, 하루하루 힘들게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은 자본가로 볼 것인가? 이런 사람들은 부르주아라고 배제하는 것은 옛날의 사회주의도, 지금의 진보진영에서 저지르는 실수이다.
더욱 놀라웠던 건, 영화 [기생충]도 자칫 이 실수를 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족은 부자 CEO의 가족과 반지하에 사는 가족, 두 가족밖에 없다. 하지만 봉준호는 최상층과 최하층 사이에 '낀' 대다수의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영화 속 대사처럼 반지하(또는 그 보다 더 '아래')에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보다 살림살이는 더 나아도 자본주의의 폐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훨씬 더 많다. 자칫 그 사람들을 놓칠 수도 있었으나, 역시 봉준호는 잊지 않고 그들을 포함시켰다. 바로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대사를 통해서다. 이 대사를 통해 봉준호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송강호 가족의 처지에 포함시키고, 송강호 가족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배제가 아닌 동행이다.
노동자들끼리 싸우게 되는 역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힘 빠지는 현실이 '을들 간의 전쟁'이다. 온 힘을 모아 자본가들과 싸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노동자들끼리 지지고 볶는 행태는 모든 시대, 모든 문화권에서 진보진영을 무너뜨려 온 최대의 적이었다(지금도 그렇다).
[기생충]은 이 부분도 완벽하게 그려낸다. 결국 송강호의 가족과 '지하실 부부'를 기생충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적으로 삼는다. 사회주의 이론의 시각으로 보면, 해답은 힘을 합쳐 거대 자본가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분배구조를 만드는 것이지만, 결국 자본가의 떡국물을 받아먹고사는 그 한자리를 놓고 두 하층민 집안이 피 볼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이 부분을 봉준호는 정말 극적으로 잘 그려낸다.
또한 그 '떡국물을 받아먹고사는 것'에 상당한 만족감, 더나아가 고마움을 가지고 사는 모습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묘사한다.
그 와중에 진짜 적은 자본가, 이선균이라는 점을 유일하게 깨달은 송강호가 이선균을 칼로 찌르는 것은 굉장한 매력 포인트다.
마지막 대사, "그날이 오면"
끝으로, 기우가 제시하는 해결 방식이다. 기우는 돈을 벌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집을 사버리겠다고,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올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결국 자본주의를 최대한 발전시켜, 부를 극도로 축적해야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물론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 속 생존을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 내 가족이 돈을 잘 벌고, 잘 살아야 한다는 블랙 코미디일 수 도 있겠지만)
그리고 기우의 마지막 대사, "그날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사실 그날이 오면 이후 대사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ㅠㅠ)"는 우리 세대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송강호가 아닌 기우, 젊은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들을 새 세상으로 불러내자고. 특히 마지막 대사의 "그날이 오면"이라는 문구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80년대 민중가요가 생각나게 하는 대사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문학 작품(영화 포함)이 '진보'성을 띄지 않으면 사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무의미하다기보단 매력이 없다. 기득권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예술과 문학이 의미를 떠나 과연 매력이 있을까. 그래서 어느 시대에나 예술가와 문학가 중에는 진보주의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하던 19세기를 지나오면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주의 작품들*은 인정받았다. 수많은 사회주의 소설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작품들은 현대에도 인정받는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칸 영화제에서만 해도 그렇다. 사회주의 신념으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 번이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사회주의 작품이라 하면 막 빨갛고, 선동적인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작품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생각보다 많은데, 7-80년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시기에 나왔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작품이 그렇다. 우리 교과서에선 '산업화 시대 문학'이라 에둘러 부르지만, 사실상 사회주의 문학이다.
정말 놀라운 건,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회주의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내부자들], [더 킹], [제보자] 같이 정치, 사회, 언론 등을 비판한 영화가 많았다. 하지만, [기생충]과 같이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또 사회주의 이론 안에서 유명한 고민거리들을 잘 담은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시작 부분에 언급했듯 내가 살면서처음 '사회주의,' '마르크스'란 이름을 공적으로 접한 것은 케임브릿지 대학 수업시간에서다. 난 한국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한국과 미국은 각각 6.25, 냉전의 경험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반사회주의적 나라다)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배운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케임브릿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르크스 경제학적 이론'을 언급하는 교수를 통해 처음으로 그 이름을 들어보았다. 그리고는 서울대학교에 와서 제대로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서울대는 김수행 교수님의 노력으로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이 어렵사리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국내 대학 중 하나다).
이렇게 사회주의와 마르크스를 그 이름도 불러선 안될 '볼드모트' 대하듯 해온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 사회도 점점 근현대사 속 쌓아온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국가로 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