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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Jul 09. 2019

힘들 땐 주저 말고 도움을 청하자

누구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는 수가 있다. 힘든 일은 10대 인생이라고 피해 가지 않는다. 그 일이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외부요인에 의해 일어난 일이든, 관계없다. 그 어려움을 혼자 극복해낼 수 없을 땐, 주저 말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나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정말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다. 아니, 적어도 늘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중학생 때는 학생회장을 하며 또래상담부를 신설하여 직접 상담 부원이 되어 운영할 정도로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 활동을 하면서도 내가 상담을 필요로 할 일은 전혀 없을 줄 알았다. 고등학교에서도 나는 스트레스를 안 받기로 유명했다. 그 빡센(?) 기숙사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아침마다 교실 문을 번쩍 열며 "오우 오늘도 상쾌한 아침 에브리 바디~" 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은 전교에 나밖에 없었다.


당시 한일고에 있던 심리학 분야에서 꽤나 유명한 상담 선생님도 나처럼 스트레스가 없는 학생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리고 특별히 심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자세하게 글로 적어 곱씹어 생각해보고 나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나를 보고 자신의 심리를 다루는 데 있어 선수급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후 나 스스로도 고정관념이 생겨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나는 늘 내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웬만큼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납득이 안 되는 일은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해결해나갔다. 그러던 내가 21살이 되던 해, 온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 하나 일어났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친구가 운명을 달리했다. 높은 건물에서 투신을 한 것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접한 것은 누군가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어?? 뭐라고?? 확실해??"

"응, 그렇데."

순간 아차 싶었다.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지만 주변에서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린 경우를 처음 보는 나는 당연히 아직 살 확률이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했고, 많이 다쳤으면 어떡하지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소식이 전해졌다. 믿기지 않았다. 다시 확인하고, 확인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화해서 확인했다. 점점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많이 다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이겨버리기 시작하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팔과 다리에는 피가 안 통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넋이 나가 울음이 터져 나오는데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울었다. 내 평생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어 어떻게 묘사를 해내진 못하겠다. 너무 분했고, 억울했고, 이해가 되지 않았고, 슬펐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해 난 어느 정도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가끔 잘 지내다가도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몇 번 묘소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늘 그래 왔듯 그에 대한 기억과 생각을 정리하며 내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괜찮지 못했다.




상담사를 찾아갔다


상담사를 찾아간 것은 그 일이 있은지 꼭 6개월이 지난날이었다. 처음에 상담사를 찾아간 것은 그냥 "원인 모를 화병" 때문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이 극도의 화가 난 상태로 쭉 이어져 해소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모든 게 싫어지고, 모든 것에 쉽게 화가 났다. 어느 순간 나는 내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내가 차마 화를 낼 수 없는 약자(나보다 아래 직급의 후임 등)를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화로 인해 나 스스로도 굉장히 지쳐있었고, 더 이상 이 화를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왜 어느 순간 이렇게 미친 듯이 화가 나서 사는지 나 혼자 원인을 찾을 수가 없어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


원인을 찾는데만 두 차례의 상담이 필요했다. 첫 두 차례의 상담 동안 선생님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가 느끼기엔 뭔가 이야기가 겉돌고,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울음이 터진 것이다. 상담 선생님은 그것을 보고 "아,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고는 이후로도 5차례 더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고 보니, 난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전혀 극복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 친구의 운명을 그렇게 만든 세상과 모든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고, 슬픔도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난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그 누구와도 그 일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그 친구에게 꼭 하려고 하였으나, 하지 못한 말도 있었다. 상담 선생님이 이끄는 여러 방법들을 따라 나의 감정과 기억, 그리고 말을 쏟아내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음을 다듬어갔다.



상담이 도움이 될까?


상담을 받고 나는 많이 괜찮아졌다. 더 이상 쉽게 화를 내지 않았고, 예전처럼 농담도 자주 던지고, 더 웃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난데없이 친구 생각이 날 때면 눈물이 나고, 또 눈물을 흘리다 보면 두통이 사라지는 것이 종종 있지만, 화를 견디지 못해 힘들어할 때와 비교하면 훨씬 좋아졌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치료는 물론이고, 학교에 흔히 있는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도 평범하게 인식되지 못한다. 그래서 용기를 내 상담사를 찾아가다가도 "아, 내가 막 큰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하며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왠지 약해 보이는 것 같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나 상담 치료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그런 치료를 받는다고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다른 것보다 상담 선생님의 상담 스케줄이 꽉 차서 몇 주 뒤에나 상담을 받게 될 확률이 더 높다. 또 이런 말을 하면 "바쁜데 어떻게 나 같은 일로 선생님을 찾아갈까"하며 발길을 돌리는 친구가 꼭 있다. 제발 그러지 말자. 그 문제는 여러분이 아니라, 국가가 학교에 상담 선생님을 늘려서 해결할 일이다. 힘들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그래도 괜찮다.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는 우리 발걸음을 잡는 또 다른 생각은 "아, 이거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떠한 도움이든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낮다. 더욱이 10대에는 그렇다. 특히 상담은 인생에 갑자기 툭하고 떨어진 힘든 또는 고민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드러내며,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된다. 또한 상담을 받으며 놀란 것이, 아픔을 치유한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인생과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단 것이다.




꼭 가족과 친구의 죽음과 같은 큰 충격이 아니어도, 우리 10대를 힘들게 하는 일은 많다. 그게 무엇이든 스스로 힘에 부친다고 느껴지면 꼭 도움을 청해야 한다. 학업 스트레스와 같은 경우도, 종종 조금 참고 견디면 졸업과 동시에 사라질 것 정도의 간단한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심한 학업 스트레스는 일상생활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고도 여러 고등학생 친구들이 내 메일로 연락이 왔다. 그중에는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로 몸까지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일도, 혼자 끙끙 앓을 일도 아니다. 어떠한 일이 되었든, 힘들 땐 주저 말고 도움을 청하자. 남들 옆에 기대서 좀 울어도 괜찮다. 10대에도, 그 이후에도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먼저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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