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지식인들과 정치평론가들은 우리에게 정치적일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치를 외면한 대가를 말한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엔 나도 이 말이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뜩 궁금해졌다. 왜 이 사람들은 우리들의 양심에만 호소할까? 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정치가 이 모양이라는 듯이 우리의 죄의식을 자극할까? 그냥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졌을 때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얘기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정치에 참여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졌을 때 얻는 이익에 대한 명언은 없다. 왜 그 누구도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 우리 인생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말하지 않는 걸까??
나는 한동안 그 이유가 사실 정치가 말만 번지르르하지 우리 삶을 그닥 바꿔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양심과 죄책감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켜보니 정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정치적 인간이 될 때 얻게 되는, 눈에 보이는 이익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정치가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지 ㅎㅎㅎ
왜 나라마다 대학등록금이 다를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늦게 정확한 대학등록금 액수를 알게 된다. 대부분이 대학에 합격하고,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희한하게 한국 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을 가라고만 이야기하고, 대학등록금이 얼마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가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은 있었어도, 대학을 다니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선생님은 한 명도 없었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난 최근에서야 로스쿨 학비가 한 학기에 천만 원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해 처음 로스쿨을 간 아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자기도 합격하고서야 그렇게 비싼 걸 알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 학비가 또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난 지금까지 총 세 나라에서 네 개의 대학에 학비를 지불해봤다. 금액은 전부 다 달랐다. 뉴욕주립대는 한 학기에 1천800만 원, BYU는 300만 원, 케임브릿지는 500만 원, 서울대는 250만 원 정도, 그리고 다니진 않았지만 합격하고 통지서는 받았던 시라큐스 대학교는 4,000만 원이 넘었다. 실제로 OECD 자료를 찾아봐도 각 나라마다 대학등록금이 다르다.
OECD 국가별 대학등록금 자료 원본. 출처 : OECD 2016 Education at a Glance
국공립 대학교 기준으로 미국은 8,202 달러, 일본은 5,152 달러, 우리나라는 4,773 달러, 스위스는 1,015 달러, 그리고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는 '0' 달러. 이 금액은 도대체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예상했겠지만, 나는 우리가 던지는 표가 결정한다고 말하고 싶다. 각 나라에서 대학등록금이 다른 이유는 각 나라마다 정치가 달랐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간의 집권 기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그래프*는 내가 고등학생 2학년 때 처음 만든 것에 최신 데이터를 더한 것이다. 대학등록금이 보수/진보 중 어느 정당이 오래 집권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발상은 사실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 본 출처는 노회찬 의원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노회찬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은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진보정당이 오래 집권할수록 대학등록금이 싸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정치를 지켜본 동안 정치의 쓸모를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게 말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드는 내내 신기하면서도 진짜 그런가 의심스러웠다. "조사하면 다 나와요." 그래서 노회찬 의원에게 돌아가자마자 직접 조사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해보니 진짜 그랬다.
진보정당이 오래 집권할수록 대학등록금은 싸지고, 보수정당이 오래 집권할수록 대학등록금은 비싸진다. 노회찬 의원이야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 이 연관성을 언급했지만, 사실 똑같은 데이터로 보수정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교육의 질,' '대학 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세금 투입) 배제' 등 학비는 온전히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논리도 분명 존재한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우리가 던진 표, 그리고 그 표에 의해 집권한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 우리가 내는 학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들 1년에 1억 2천씩은 버나요?
돈 얘기를 계속해볼까?
우리나라 1인당 GNI(국민총소득)가 최근 3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대충 해서 3천만 원이라 하고, 한번 생각해보자. 1인당 GNI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번 모든 돈, GNI를 돈 버는 사람 수(경제활동인구)가 아닌 전체 인구수로 나눈 값이다. 즉, 여긴 5살 아이도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4인 가족은 1년에 평균 3천만 원 x 4 = 1억 2천만 원은 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헉! 다들 1년에 1억 2천은 버는 집에 살고들 계신가요?
더 신기한 것도 있다. 일본을 보면 1인당 GNI에서는 우리나라보다 1만 달러가 넘게 높다. 심지어 2013년 기준으로는 2만 달러가 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중위임금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나라 전체는 우리보다 부유한데, 평범한 중산층은 우리보다 더 가난한 것이다. 이게 뭘 의미하냐고? 이건 바로 우리나라가 전체에서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GNI가 올라도, 어느 정치세력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내 수입은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정치는 이래서 중요하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거라고?
이제 정치에 참여한 결과는 내가 낼 대학등록금이고, 내가 버는 임금이라고 말하자 ㅎㅎ
#1장나는어떤세상을원하는가
*1) 미국이 진보정당 집권이 0년인 이유. 데이터를 모으면서 진보정당을 좌파에서 중도좌파까지 분류되는 정당을 기준으로 삼았다. 미국 민주당은 국제적 기준으로 보수정당으로 분류되며, 당내에 '사회적 민주주의자,' 즉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세력이 있지만 비주류 세력이기 때문에 보수정당으로 분류했다. 맞다,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보수정당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의 민주당도 완전한 진보로 분류되는 정당은 아니라 포함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지만, 중도-중도좌파의 범위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일본과 캐나다의 데이터에도 중도-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정당이 포함되었다.
*2) 평균임금 대신 중위임금을 쓰는 이유. 예를 들어, 5명이서 사는 나라, A와 B가 있다고 하자. A에서는 1명이 100만 원을 벌고, 나머지 4명이 0원을 번다. 그리고 B에서는 모두가 20만 원씩 번다. A는 확실히 중산층이 어려운 사회다. 그런데 평균임금을 계산해보면, A와 B 모두 20만 원이 나온다. 평균임금은 말 그대로 평균만 보여주기 때문에, 소득분배를 반영하지 못하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중위 임금은 모든 사람들을 소득 순으로 줄을 세워, 딱 가운데 있는 사람의 임금을 보여준다. 그래서 A의 경우 중위임금은 0원, B의 경우 20만 원인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정확한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알기 위해 평균임금보다는 중위임금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