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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Aug 25. 2019

적당히 이타적인 우리

정치적 성향은 나의 이해관계로만 정해질까?

이익을 다루는 정치



정치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레 이익을 말하게 된다. 아니, 당연히 말하게 된다. 공원이든, 새 도로든 지역 예산으로 몇 억씩을 땡겨왔다는 건 지역구 정치인들의 오랜 홍보 방식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비판받아 온 방식이기도 하지만, 또 여전히 먹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정치는 결국 우리들의 이익과 욕망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평론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할 때 나의 이해관계를 잘 따져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기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세상에서 본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합리적 존재라는 명제로만은 설명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나의 이익만 따지는 건 아니더라


우리는 모두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이타적이다. 그건 우리 모두에게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힘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단칸방에서 세 모녀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 사람이 죽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견뎌내다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를 머릿속에 그린다.


"지난 9일 청소노동자 ㄱ씨가 숨진 서울대 제2공학관 지하 1층 직원 휴게실의 15일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지난 8월 9일, 서울대에서 일하는 한 청소노동자가 창문 하나 없고, 작디작은 지하 1층 휴게실에서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숨졌다. 우리는 이 소식을 한 60대 청소노동자가 어느 더운 날 쉬려고 누웠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단순 사실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그분이 그 더위 속에서 해왔을 노동, 그리고 잠깐 쉬기 위해 들어왔지만 더욱 답답하고 덥기만 한 휴게실, 하지만 그곳에서 밖에 쉴 수 없었던 당시의 기분에 대해 상상하고 감정이입하게 된다.


바로 우리 안에 내재된 이런 본능 같은 힘 때문에 우리는 나 자신이 가난하지 않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나는 생리대를 못 살까 봐 걱정하지 않지만 생리대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나는 군대를 가지 않지만 군 복무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J. K. 롤링은 하버드 졸업식 연설에서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상상력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진보 쪽에서는 이것을 젠더 감수성, 동물 감수성 등 00 '감수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건 감수성이라 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타고난, 되도록이면 "함께 잘 살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그건 아주 부유한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바로 그 옆에서 스테이크를 썰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불고기라도 먹고 있으면, 덜 불편하게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에는 나뿐만이 아닌 우리도 포함된다.


함께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 본질은 남 일이 남 일이 아니라는 것


난 폭염 속에서 일하는 60대 청소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게 남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60대 청소노동자에게 관심 없는 정부가 열악한 고시촌에서 영양가 없는 밥을 먹으며 취업 준비하는 20대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에 희생자 유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타인의 삶에 대한 우리의 이타성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런 나라라면 그런 사고의 희생자가 언제든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 일이 내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해야 할 것


무지와 이타성을 혼동하지 말자.


상황은 역으로도 가능하다. 자신은 가난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자기는 시장 한 구석에서 자그마한 장사를 하며 어려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전통시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대기업 자본의 쇼핑몰을 지으려는 정당에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많다. 물론, 자신은 저소득층이지만 진심으로 대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잘 되고 내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평생 특정 언론과 특정 논리만을 접해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무지에 의해 그런 판단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두 경우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강자에 대한 과도한 너그러움도 경계 대상이다. 우리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더 오래 거슬러가면 아무리 나쁜 왕이라도 단두대에 올려 처단한 역사가 없고, 현대사에서는 무기징역을 받은 전두환, 12년 형을 받은 노태우를 모두 단 2년 만에 사면시켜줬다. 이런 지나친 자비로움은 때로 큰 역사적 오류를 남긴다. 


이타성에 있어서도 강자에겐 강하게, 약자에겐 약하게란 말이 맞는 걸까.


그러니 적당히 이타적이어야 한다.



#1장나는어떤세상을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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