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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산 Dec 21. 2021

기생충에게 배워라

<기생충 제국> 

창형흡충은 소의 배설물을 통해 알을 퍼뜨립니다. 배고픈 달팽이가 그 알을 삼키면 달팽이의 창자 속에서 부화하죠. 갓 태어난 유충은 달팽이의 창자를 뚫고 나와 소화액을 분비하는 샘으로 들어간 뒤, 꼬리 유충으로 발달하여 달팽이의 거죽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면 달팽이는 유충을 끈적한 점액으로 둘러싸서 풀숲에 토해 놓습니다. 

 

거기에서 유충은 개미와 마주치게 됩니다. 개미에게 둥근 점액질 덩어리는 아주 맛있는 먹이거든요. 개미가 점액질과  함께 수백 마리의 창형흡충을 삼키면, 흡충들은 개미의 장으로 들어가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머리로 갑니다. 


이때부터 개미는 기생충의 주술에 걸리죠. 감염된 개미는 저녁 무렵 공기가 신선해지면, 땅 바닥의 동료 개미들에서 빠져나와 풀이파리의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풀잎의 끄트머리를 물고 거꾸로 섭니다. 이렇게 풀끝에 매달리면 소나 지나가는 다른 초식동물에게 먹히기 쉽습니다. 개미가 소의 위로 굴러 떨어지면 흡충은 소의 간으로 가서 성체로 살아가게 돼죠. 

 

어떤 기생충은 달팽이의 투명한 촉수로 기어들어갑니다. 촉수 밖으로 비쳐지는 기생충의 줄무늬가 달팽이를 풀벌레처럼 보이게 해서 새가 잡아먹도록 만들어요. 그러면 기생충은 새 몸속에 둥지를 틀죠. 어떤 기생충은 포식자에게 옮겨가기 위해 자신들의 중간숙주를 멍청하고 어리석게 만들어 쉽게 잡아먹히도록 합니다. 


아휴, 이 모진 것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희박한 미래를 위해, 이것들은 중간숙주의 몸에 철저히 굴복하고 자신과 숙주의 경계를 해체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포식자의 주둥이에서 모든 것이 으깨져버리는 순간, 완전한 패배로 판명될 것 같은 그 순간, 승리합니다. 아휴, 이 모진 것들.


<기생충 제국>의 한 장면입니다. 이 책을 쓴 과학 저널리스트 칼 짐머는 "인간이 기생충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훌륭한 선배들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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