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몰랐던 것들

by 현율


답장이 너무 늦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어. 삶이라는 게 불현 듯 다가와 불식간에 사라지는 일들의 연속이니, 그날 밤 내게 했던 질문을 까맣게 잊었다고 할까도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렸어. 지난 수십 년간 네 질문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망각했을 거라고 비난은 하지 말아줘. 비록 만취한 상태였지만, 그 때 내게 던진 물음은 명확하게 기억하거든. 어째서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있는 것, 그리고 해야 할 것이 모두 다르냐고 물었잖아.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왜 이렇게 인생이 지독하냐는 거였지? 사실 네 기억 속에 두 번째 질문이 남아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나는 가급적 현명하고 아름다운 답을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앞선 질문은 어느 풋내 나는 청년의 넋두리 같았지만, 질문을 이어가던 네 처연한 표정은 도무지 지울 수가 없었거든. 이제 와서 그런 질문에 답하겠다고 하니 다소 혼란스럽거나 어쩌면 화가 날 지도 모르지. 게다가 아름다운 대답이라니 말이야.


어찌됐든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조금은 답을 기대할 거라고 생각해. 대답을 꺼내기 전에 물어볼게 있는데, 혹시 여전히 좋아하는 것과 현실, 그리고 해야 할 것들이 구분이 돼? 나는 어느 노회한 자의 유연함을 가장한 타협과 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야.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삶의 영역을 구분하는 행동을 여전히 지속 중인지 묻는 거야. 만일 여전히 살아가는 일들이 네 감정 테두리 안에서만 꿈틀거리고 있다면 말이야. 내 대답은 또다시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거든. 하지만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바, 욕망과 현실의 괴리에 아무리 지쳤더라도 성정 상 그 질문들은 여전히 네 품속에 있을게 분명해. 뱃심으로 세상을 대하거나 는질맞은 눈을 갖지 못한 사람인데 욕망은 소멸되지 않으니, 네 안의 소용돌이가 잦아들 리 없지. 당시 침불안한 현실에서 미래에 놓아 둔 시선의 무게가 얼마나 육중했는지는 기억하나? 그럼에도 나는 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했어. 네가 둔중한 현실에도 침몰하지 않았던 것은 미래에 대한 너의 무지근하면서도 집요한 시선 때문이었거든. 지금도 은연하기만 한 미래를 향해 습관적으로 손을 뻗고 있을까? 중년에 접어들었으니 그 미래는 쇠약해진 시력만큼 조금은 가까워졌을 거야. 죽음을 목도할 정도에 이르면 가까워지던 미래는 현실에 닿을 수도 있겠지.

혹시 이게 오랫동안 떠올렸던 좋은 대답이냐고? 그럴 리가. 다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야. 시선은 늘 어렴풋한 미래에 두면서도 현실의 씨줄과 날줄을 위태하게 엮어온 네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 아둔한 방식으로 삶을 이어갈 것도 확실하고.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남지 않았어. 그 때는 정말 몰랐다고. 그저 허공에 부유하는 삶으로 알았으나, 실은 빛나던 욕망이 미래의 부채와 맞닿도록 안간힘을 써왔던 것을 말이지.


오래전 네가 거울을 보며 던졌던 질문에 해줄 수 있는 답은 이게 최선이었던 것 같네. 해가 바뀌었어. 좋은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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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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