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자라고 있다
베란다 한구석,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는 자리에 화분 하나가 놓여 있다.
무심한 듯 놓여 있지만, 사실 내 시선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을 향한다. 며칠째, 아니 몇 주째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었지만, 녀석은 요지부동이다. 흙은 적당히 축축하고 통풍도 나쁘지 않은데, 식물은 마치 박제된 것처럼 그대로다. 어제와 똑같은 잎의 개수, 조금도 자라지 않은 듯한 줄기의 높이.
나는 팔짱을 끼고 화분을 내려다보며 조금씩 조바심을 느낀다.
스마트폰 속 세상, 다른 사람들의 베란다 정원은 하루가 다르게 숲을 이루는 것 같은데 내 화분만 시간을 비껴간 듯 멈춰 있다.
'물을 더 줘야 하나? 영양제가 부족한가? 아니면 화분이 너무 작은 걸까?'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다 문득 서늘한 의문 하나가 가슴을 찌른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이미 성장을 멈춘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식물의 침묵 앞에서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 때, 우리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처럼.
성장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적어도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에게는 그렇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부모는 매일 체감하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척은 "언제 이렇게 컸니?"라며 놀라워한다. 변화는 아주 미세한 입자처럼 쌓이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매일 물뿌리개를 들고 서성이는 나에게 식물은 정지 화면처럼 보인다. 인간의 시간은 초침 소리에 맞춰 빠르게 흐르는데, 식물의 시간은 계절의 흐름에 맞춰 느리게 흐른다. 우리가 조급해하며 발을 구르는 사이, 식물은 자신의 리듬으로, 아주 천천히 호흡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의심을 거두고 화분 가까이 다가가 쪼그리고 앉는다.
잎을 살짝 들춰본다. 줄기와 잎자루가 만나는 그 은밀한 겨드랑이 사이를.
그리고, 발견한다.
아주 작은, 쌀알보다도 작은 연두색 돌기.
새순이다.
어제는 분명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내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짙은 초록색 잎들 사이에 숨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여린 생명. 너무 작아서, 너무 투명해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분명히 존재한다. 딱딱하게 굳은 줄기 껍질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그 작고 단단한 의지가.
식물은 멈춰 있지 않았다.
내가 '변화 없음'이라고 단정 지었던 그 시간에도, 녀석은 온 힘을 다해 밀어 올리고 있었다.
흙 위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화분 아래 캄캄한 흙 속에서는 치열한 생명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뿌리는 물을 찾아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뻗어 나가고, 미세한 뿌리털들은 흙 알갱이 사이사이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줄기는 위로 솟구칠 에너지를 차곡차곡 비축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다고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도 이 화분과 닮았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노력하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을 때, 운동을 해도 몸이 그대로인 것 같을 때, 성실히 일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쉽게 좌절한다. '내가 헛수고를 하고 있구나'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하지만 식물을 보라. 식물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물을 주고 햇빛을 주면, 반드시 자란다. 당장 내일은 아니어도, 식물 자신의 시간표에 맞춰 반드시 응답한다. 인간의 조급함이 재촉한다고 해서 꽃이 일찍 피지 않고, 무관심하다고 해서 성장을 멈추지도 않는다.
성장에는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씨앗은 흙에 닿자마자 싹을 틔우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껍질을 불리고, 내부의 배아를 깨우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답답한 시간을 견뎌야만 흙을 뚫고 올라올 힘이 생긴다. 준비 없이 튀어나온 싹은 볕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린다.
당신이 지금 답답해하는 그 정체기는, 쓸모없이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다. 내면을 단단히 다지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는 시간이다. 지금 겉모습은 어제와 똑같아 보일지라도, 당신 안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일주일 후, 나는 다시 베란다로 나간다.
그 작던 새순이 어느새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랐다. 꼬물거리던 연두색 덩어리가 제법 잎사귀의 모양을 갖추고 돌돌 말려 있다. 신기하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존재조차 희미했는데.
그리고 또 다른 가지 끝에서도 새로운 눈(gu)이 트고 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에서.
식물은 내게 조용히, 그러나 온몸으로 가르쳐준다.
"급하게 자라지 않아도 괜찮아. 남들과 속도를 맞추지 않아도 돼."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거야."
나는 물뿌리개를 들어 흙을 적신다.
물이 흙으로 스며드는 소리가 '타닥타닥' 빗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이제 잎이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잎의 먼지를 닦아주며 속으로 말한다.
"그래, 네 속도대로 해. 나는 여기서 물을 주며 기다릴게."
오늘 하루, 당신은 조금 자랐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누군가의 칭찬을 듣지 못했어도, 당신은 분명히 자랐다. 어제의 고민이 당신의 뿌리를 더 깊게 만들었고, 오늘의 인내가 당신의 줄기를 더 단단하게 했다.
그 미세한 변화들이 켜켜이 쌓여, 어느 날 문득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꽃을 피울 것이다.
오늘의 평범함이 내일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확실하게.
베란다의 식물도,
그리고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