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을 놓은 자리

장교 시절부터 사랑한 코트를 떠나며


상실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했고, 포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테니스 라켓을 벽장 깊숙이 밀어 넣던 날, 나는 특별한 감정 없이 그 일을 해냈다. 먼지가 쌓인 라켓 케이스를 손에 쥐고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것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아마 오랫동안 꺼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학교 때 처음 라켓을 잡았다. 선배의 권유로 시작한 테니스는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공이 라켓에 제대로 맞았을 때의 청명한 소리, 베이스라인에서 날아온 공을 정확히 받아쳤을 때의 쾌감.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점점 코트 위의 시간이 길어졌다. 주말이면 빠짐없이 코트로 향했고, 방학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라켓을 메고 나갔다.


군대에 갔을 때도 테니스는 계속되었다. 장교로 복무하면서도 틈만 나면 부대 내 코트를 찾았다. 훈련이 끝난 오후, 땀에 젖은 군복을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라켓을 들었다. 동기들과 함께 코트에서 공을 주고받는 시간은 군 생활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공이 네트를 넘어가는 순간, 복무의 무게도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전역 후에도 테니스는 계속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말만큼은 코트를 지켰다. 동호회에 가입했고, 정기적으로 모여 시합을 했으며, 때로는 지방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라켓의 그립을 잡을 때마다 손에 익은 감촉이 좋았다. 낡고 해진 그립 테이프를 새것으로 감을 때, 라켓줄이 끊어져 다시 스트링을 맬 때,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코트는 내게 자유의 공간이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피로, 미래에 대한 불안. 그 모든 것들이 코트 밖에 머물렀다. 베이스라인에 서서 공을 기다릴 때, 나는 오직 그 공에만 집중했다. 어디로 날아올지, 어떤 속도로 올지, 어떻게 받아칠지. 세상은 그 순간 라켓과 공, 그리고 네트만 남았다.


그러나 결혼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아니, 바꿔놓았다기보다는 우선순위를 재배치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주말은 더 이상 내 것만이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보내야 할 시간, 함께 가야 할 장소,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토요일 아침, 라켓을 메고 나가려 할 때마다 아내의 표정이 눈에 밟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타협을 시도했다. 한 주는 테니스를, 한 주는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식으로. 하지만 동호회 활동은 매주 정기적으로 이루어졌고, 한 주라도 빠지면 팀 일정에 지장을 주었다. 게다가 주말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아내는 주말만큼은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싶어 했다. 함께 장을 보러 가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점점 코트에 가는 횟수를 줄였다. 한 달에 두 번, 그리고 한 번. 동호회 사람들은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들의 눈빛에서 아쉬움을 읽었다. "결혼하면 다 그렇지 뭐"라는 농담 섞인 위로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


라켓을 잡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손의 감각이 사라졌다. 가끔 코트에 나가도 예전처럼 공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타이밍이 어긋나고, 발의 위치가 틀렸으며, 공은 네트에 걸리거나 라인 밖으로 나갔다. 그럴 때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코트에 나와야 하나. 차라리 깨끗하게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벽장 속 라켓을 꺼내 보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가끔 그 존재가 생각날 때가 있다. 주말 아침, 창문 너머로 맑은 하늘이 보일 때. 뉴스에서 테니스 경기가 나올 때. 누군가 운동 이야기를 꺼낼 때. 그럴 때마다 가슴 한편이 근질거린다. 코트의 흙먼지 냄새, 공이 라켓에 맞는 소리, 햇살 아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오후의 코트.


하지만 나는 그 근질거림을 애써 무시한다. 대신 아내와 함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장을 보러 가고, 동네를 산책하며, 주말 저녁에는 함께 영화를 본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다.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보면, 라켓을 놓은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니스는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둔 것처럼. 벽장 속 라켓처럼,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포기인지, 유예인지,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포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테니스를 사랑했다. 대학 시절부터, 군대에서도, 전역 후에도 계속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아내와의 시간, 가족과의 주말,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


그것을 책임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선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쩌면 성숙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나는 지금 그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켓을 놓은 자리는 비어 있지 않다. 그 자리에는 아내와의 토요일 아침이 있고, 함께 걷는 주말 오후가 있으며,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는 저녁이 있다. 그것들이 라켓을 대신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언젠가 다시 라켓을 잡을 날이 올까. 아이들이 크고,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면, 그때는 다시 코트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 않는다. 벽장 속 라켓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라켓 없이도 괜찮다. 씁쓸함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코트에서 보낸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몸 어딘가에, 근육의 기억 속에, 마음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것을 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다른 것을 사랑할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라켓을 놓은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용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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