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M Dec 01. 2021

착함 is not 호구

































































































































나는 과거에 성선설을 믿었었는데,

10년 넘게 연구(?)한 끝에

성악설이 더 그럴싸하다는 결론이 났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나를 먼저 챙긴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것이 더 쉽고,

악마의 속삭임이 더 달콤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과거에 나 자신이 착하게 행동하려고 했던게 설명이 됐다.



인간은 본성이 악한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어쨌든 내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지내려면,

더 도덕적이어야 하고,

더 마음이 넓고 깊어야 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 지내려는

나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너 착한척하냐?"

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그랬다.



"응. 본성이 착하지가 않아서

척이라도 한다.

그리고 난,

착하고 싶다."



라고.







가끔 어떤 엄마들은

아이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바보같이 살면 안 돼,

니껄 왜 쟬 줘,

맞으면 너도 가서 한 대 때려 등.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마음이 선해야 행동과 외모도 아름다워지는 거라고.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가볍게 베풀 수 있는건 베풀라고 가르쳤다.



다만,

돈은 교환 도구이므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줄 일은 없다고 가르쳤다.



친구에게 맞았을 때 너도 같이 때리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어지고

모두가 다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이 딱 5살, 3살 때

서로 손지검을 시작했었다.



나는 그때 아예 싹을 잘라버렸다.



아이의 손이 상대방을 때리려는 순간,

그 작은 팔이 터지도록 세게 쥐어 잡고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아이를 보며

낮고, 정확하게 말했다.



때리는건, 나쁜 거야!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동물'이야.

동물이 되고 싶어?

넌 지금 아이라서 엄마한테 혼나고 말지만,

어른이 되면 감옥에 가는 거야.

엄마가 알려주는데도 계속 때리면 엄마는 경찰에 신고를 할 거야.

아이들은 펑펑 울었지만,

며칠 뒤면

아이들은 또 서로를 때렸다.

다시 말했다.



때리는건, 나쁜 거야!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동물'이야.

동물이 되고 싶어?

넌 지금 아이라서 엄마한테 혼나고 말지만,

어른이 되면 감옥에 가는 거야.

엄마가 알려주는데도 계속 때리면 엄마는 경찰에 신고를 할 거야.

아이들은 펑펑 울었지만,

며칠 뒤면

아이들은 또 서로를 때렸다.

다시 말했다.



때리는건, 나쁜 거야!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동물'이야.

동물이 되고 싶어?

넌 지금 아이라서 엄마한테 혼나고 말지만,

어른이 되면 감옥에 가는 거야.

엄마가 알려주는데도 계속 때리면 엄마는 경찰에 신고를 할 거야.

아이들은 펑펑 울었지만,

며칠 뒤면

아이들은 또 서로를 때렸다.

다시 말했다.



다시 말했다.

다시 말했다.

다시 말하고,

다시 말하고,

다시 말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여기는 너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다 같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행복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가!



이 한 명의 작은 사람을

착하게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


'착하게 키우면 안 돼~'


같은 소리가

저렇게 편하게 나올까.






그 사람들이 말하는

호구나 기타 등등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나도 꽤 여러 사람들을 겪어 봤고,

뒤통수도 맞아보고 왕따도 당해보고

뭐 해 볼 건 다 해봤다.



이쯤 살면 해 볼만한 건 다 해 보지 않았겠는가.



그럴수록 점점 사람을 믿지 않고

벽을 쌓고 가시를 세우는 것이

과연 내 삶의 행복을 향해 가는 올바른 길인지 되물어 봤다.



답은 당연히 NO였다.



물론,

일적으로 머리를 굉장하게 계산하고 불가피하게 사람 관계를 이용해야 할 때도 있다.

마치 정치처럼.

그럴 땐 그냥 일로 하면 된다.



축구게임처럼,

막 전쟁같이 싸우며 일 하다가,

일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선한 삶을 살면 된다.

그게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일상에서 크게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것도 없다.

정확히 딱 하나,

돈거래만 안 하면 된다.

나는 가족끼리도 돈거래는 반대다.



그리고 미안한데,

착한 사람도

상대방이 나를 이용하는 건지 진심인지 다 안다.



거절 못 하는 거?

그건 거절을 못하는 거지 착한게 절대 아니다.



내가 거절함으로 인해서

상대방과의 관계가 불편해짐을 걱정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건,



'걱정'하는 거지,

착한 거랑은 거리가 멀다.



좀 이렇게.



한 단어에 모든 상황을 다 묶지 말고,

본인이 겪은 과거의 상처들 때문에

아이들을 애매한 어른으로 만들지 말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자존감은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



내 마음속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그리고

'착하게 안 키우기'보다는

'현명하게 키우기'를 알아보는 것이



내 아이 호구 안 만드는

훨씬 더 정확한 길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개념을 좀 달리 했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은,

서해 바다에서 잡혀 올라오는

물텀벙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작은 동산에 올곧이 서서

저 멀리 동구 밖까지 내다보는 곧게 뻗은 소나무 같은 사람이다.



도덕적이면서도 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당신이 못 찾았다고 해서

당당하게

"그런 길은 없다"

고 말하지 말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