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eCommerce 제(멋)대로 헤집어 보기 #4
2014년 플래텀에서 연재했던 이커머스 잡설을 손봤다. 어색한 문장 몇 마디 바로잡고 가끔은 그림도 바꿨다. 브런치를 시작하는 Kick-off 정도로 생각한다. 당시 이 주제로 플래텀에서 연재를 시작하며 달았던 말머리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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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을 주제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PC 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시절부터 포털과 전자상거래에서 일하며 쌓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연재의 제목은 ‘이커머스 제(멋)대로 헤집어보기’입니다. ‘제대로’ 헤집고 싶지만 개인적 경험과 주관적 견해를 따르기에 객관적이기보다는 편파적일테니 ‘제멋대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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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게시일 - POSTED ON 2014/11/04)
이커머스 시장은 여전히 역동적이다. 20년간 두 자리 수의 전년대비 성장률이지만 여전하다. 이는 통계청이나 대기업 경제연구소, 해외 증시뿐 아니라 필자 같은 업계 종사자는 그 기간 동안 피부로 느껴왔다. 이제는 뭔가를 팔아서 돈을 버는 기업이라면 모두 한번쯤은 이커머스를 고민한다. 현장 체감을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모바일이 밀려오고, 불경기가 길고, 수익모델을 엄격히 요구하는 트렌드가 기업과 브랜드들을 시장에 더 몰아넣기도 한다.
필자는 여러 기업에서 직접 이커머스 사업을 진행하다 에이전시에 온 지 2년째다. 그러다 보니 특정 기업에 소속되었을 때보다 허심탄회(?)한 논의 요청을 과거보다 더 많이 받는다. 주체는 다양하다. 대기업은 물론, 대기업 산하 혹은 중소기업의 특정한 브랜드(이하 ‘모노 브랜드’), 하다못해 쇼핑몰을 준비하는 개인과도 만난다. 에이전시니 그런 논의가 매출로 이어져 반갑지만, 시장과 사업의 이슈들을 접하니 논의 자체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다.
그런 경험들을 정리해 보니 주체별로 이커머스 사업 진입과 활성화를 위한 고민도 조금씩 달랐다. 오늘은 그 이야기다.
필자가 경험 중인 이커머스 사업 구상이나 활성화의 고민들을 편의상 대기업, 패션을 중심으로 한 모노 브랜드, 개인 창업 쇼핑몰로 나눈다.
대기업의 이커머스 시장 진입에 대한 고민
국내 시장만 해도 이미 들어올 대기업은 다 들어왔다 싶은 요즘이다. 그래서 이는 과거 사례를 떠올려 본다. 몇년 전 사례임을 밝혀둔다.
과거 모 통신 대기업 경영진 요청으로 이커머스 시장 진입을 검토하는 논의를 함께했다. 공교롭게도 몇년의 기간을 두고 두 통신 회사 A와 B에서 각각 그럴 기회가 있었다. 몇년의 갭은 있었지만 두 회사 모두 고민은 비슷했다. 기존 사업의 시장 포화와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서 이커머스를 검토 중이었다. 시장 규모, 성장성, 명확한 수익모델이 이유였고 자사의 핵심 역량 여부는 둘째였다. 풍부한 자금, 기존 사업과 시너지, M&A 등의 옵션을 생각하면 그 생각은 수긍할 수 있었다.
그 두 개 회사의 고민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첫째, 자체 사업으로 시작할까, M&A 할까.
둘째, M&A면 최대한 선두 업체에 가까운 Big one을 인수하는게 좋을까, 강력한 버티컬 몇개를 여럿 인수하는게 좋을까.
셋째, 자체 사업으로 시작하면 필요한 핵심 역량이나 초기 조직 구성 및 규모는 어떻게 설계하나.
나머지 고민들은 대체로 저 세 가지에서 파생되었다. 이를테면 자사 그룹의 어떤 계열사들을 활용하면 좋을지, Big one이든 버티컬이든 어떤 업체가 인수대상으로 좋은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어찌됐든 당사는 종합 카테고리를 아우를 예정인데 트리거 역할을 하는 카테고리는 어떤게 좋을지, 해외 진출 방안은 어떻게 발전시킬지 등.
A사는 고민의 시작 단계에서 만나 주제가 거대했다. ‘이커머스, 어떻게 해야하나’. 논의 과정에서 위의 세 가지 고민으로 이야기가 정리될 즈음 필자가 몇가지를 질문했다.
첫째, 중요한 것은 Scale 입니까 Profit 입니까
둘째, 귀사의 신성장 동력으로서 의미 있으려면 매출 규모가 얼마여야 합니까
셋째,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의 시간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까
넷째, 수익화 시점과 수익성의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합니까
첫번째 질문은 사실 이상한 질문이다. 사업에서 Profit의 중요성을 물을 필요는 없다. 타이밍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이라 물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당시만 해도 새로운 플레이어 특히 대기업이 진입하면 가격 대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수익성은 둘째였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전쟁이었다. 그럴 때마다 판이 흔들렸고, 기존 사업자들은 멀미를 했으며, 소비자는 즐거웠다.
대답은 예상대로 조 단위 이상의 사업 규모를 원했고, 부여 받은 시간은 3년 이내였으며, Scale과 Profit 둘다 중요했고, 수익화는 빠를수록 좋다는 원론적이고 무거운 숙제였다.
나의 대답은 Scale과 Profit은 안타깝게도 상당기간 동시에 추구하기 어려운 현실이고, 조 단위 이상의 매출 역시 부여 받은 기간내에 어렵고(회계상으로도 매출이어야 하므로), 다만 조 단위 이상의 거래 규모는 가능할지 모르나 시장에 풀어야 할 돈의 규모와 기간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 거래 규모 확보와 그를 통해 원하는 시장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투입된 자금을 누적 BEP로 회수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의견도 덧붙였다(의지와 사실은 다르고, 나는 사실을 말하는 자리였다. 의지는 누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므로 별도의 주제다).
두 회사 중 몇년 더 먼저 만난 B사는 조금 더 구체적이긴 했다. 당시 시장에 G마켓이 매각대상으로 떴다는 소문이 돌던 때였다. B사는 G마켓의 적정 밸류에이션을 8천억원 정도라 보며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포함한 인수가와 이후 회수 가능성, 예상 시기, 시장 구도 재편 시나리오, 자체 사업화와 다수 버티컬 M&A와 G마켓 인수 3개 안을 비교할 때 무엇이 더 적합할지 등을 이야기 나눴다. 그러나 이야기의 큰 흐름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이후 두 회사의 선택과 길은 달랐지만 시장의 큰 방향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시장을 리드하는 주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아닌 혜성처럼 나타난 트렌드나 새로운 기업과 벤처였다. 결국 시장과 소비자 입장에서 핵심 가치는 명확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가장 적나라하고, 파격적이며, 빠르게 공략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반증을 보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 안타까운 점은, 그 풍부한 자금력과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오히려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고 트렌드를 뒤쫓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말 그대로 대기업이므로 빠르기 어렵고, 큰 투자에 따른 책임에 대해 내부 이슈가 복잡하다. 특히 풍부한 자금력은 특이한 상황을 낳기도 하는데, 돈이 더 들더라도 시장을 지켜보다가 검증된 모델에 투자하겠다는 여유 혹은 조심성을 허락하는 점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은 현재 시장을 리드하는 소셜커머스의 진화 과정과 당시 대기업 내부의 대응 사례를 보면 잘 드러난다.
알려진 대로 소셜커머스는 미국의 지역 기반 할인 딜에서부터 흥행했다. 그루폰과 리빙소셜을 필두로 서비스 상품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국내 시장에서는 기존 이커머스 기업이 아닌 젊은 개인 몇몇이 시작하는 벤처에서 이어받았다. 이후 지역 기반의 서비스 상품을 넘어 실물 상품을 다루며 과거 전자상거래 초기 거래형태인 공동구매와 유사한 판매 형태로 진화(?)해갔다. 그 과정에서 큐레이션을 강화하고 모바일에 빠르게 대응하며 코스트코나 TV홈쇼핑의 핵심 가치를 온라인 모바일에서 진화(!)시켜 나갔고, 조 단위 매출로 훌쩍 커지기까지 불과 3~4년만에 벌어졌다.
(자료 출처 : 전자신문 2014. 1. 15 / 그림 출처 : 소셜커머스 성장과 전망 보고서 by DMC Report)
그 몇 년의 기간 동안 대기업 기반 이커머스 조직은 대략 이런 흐름을 가졌다.
트렌드에 밝은 실무부서나 전략 스탭에서 해외 최신 동향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거나 조금 더 알아보라고 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보고서로 남는다. 국내에서 20대 청년들이 벤처를 세웠다는 기사, 모바일 트렌드와 함께 젊은 대중으로부터 인기라는 기사를 업계 동향 기사로 만난다.
이후 외국계 투자사로부터 투자 유치 소식이 들리고 수십개의 업체가 나타나자, 이전과 달리 긴장된 시선으로 바뀐다. 자사의 매출과 트래픽은 그대로인데 소셜커머스 선두업체는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것을 목도하고, 입점 셀러가 동요하며, 자사 고객들이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소셜커머스 TV광고가 몰아치고, 자사 소비자 조사에서도 소셜커머스가 화두이며, 자사의 카테고리까지 소셜커머스가 침범하자 본격적으로 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좀더 빠른 대기업은 그 전단계에 소셜커머스 대응 TF를 마련하기도 하지만 부서간 갈등, 연말연시 조직 개편과 임원 재배치 등의 내부 이슈로 Task를 제대로 Force하지 못하고 TF는 떠돈다. 또는 TF가 Trial에 가까운 미션이므로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 미션 임파서블을 부여받지만 실은 수많은 보고서 문서 작업에 치이다 때론 몇 안되는 인재가 겨우 얻은 노하우를 들고 소셜커머스로 이직도 한다.
그러다 대세가 그쪽이 될 것이라는 점, 타이밍을 놓쳤다는 점, 그리고 핵심 역량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을 회장님까지 하시게 되면 M&A를 타진한다. 물론 대상 기업은 의사가 없거나 어마어마한 밸류에이션을 부른다. 다시 회의한다. 다시 검토한다. 다시 보고서를 쓴다.
기존 사업과 병행하느냐 한쪽을 미느냐로 고민한다. 병행하자니 아무리 대기업이지만 리소스의 한계를 걱정하고, 한쪽으로 몰자니 각각의 리스크를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거나 책임질 수 없다. 그 사이 또 조직 개편과 임원 재배치의 계절이 돌아온다.
물론 그 사이 해당 TF는 정규 팀이나 본부가 되어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 받지만, 또한 그 사이 어엿한 경쟁자가 된 벤처 출신의 소셜커머스들과 소비자는 넘사벽이 되었기에 따라잡아야 할 성과도 엄청나게 올라서 결국 TF 때와 난이도는 비슷하다.
쿠팡의 김범석 대표나 티몬의 신현성 대표는 자사의 소셜커머스를 모두 알고 모두 결정할 수 있다. 반면 대기업 소셜커머스 사업은 일개 부서장이 최고 운영자이며, 그는 자신의 사업을 잘 알지만 모두 결정할 수 없고, 모두 결정할 수 있는 레벨의 경영자는 자사의 소셜커머스를 모두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다. 팀장이 바뀌고 본부장이 바뀐다. 보고서를 새로 쓴다.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실사례들을 시나리오화했다. 물론 다르게 진화하는 유통 대기업도 있다. 이마트나 홈플러스는 그들의 강점인 식품 특히 신선식품의 소싱과 관리, 물류의 강점을 강화하고 투자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편다. 트리거 카테고리 자체가 타 대기업 경쟁사나 소셜커머스가 선뜻 따라잡기 어려운 영역이다. 반면 그들은 그를 활용해 점차 전선을 넓힌다. 비교적 높은 허들의 차별적 역량을 원천적으로 보유한 덕이다. 그러나 그들조차 온라인 사업만 놓고 볼 때 지금의 수익성은 좋지 않다. 반면 그들 입장에서 오프라인 유통 및 향후 다가올 O2O의 시너지가 더 중요해 온라인 사업의 독립적 수익성은 큰 이슈가 아닐 수도 있겠다. 자사의 이커머스 거래 비중이 균형을 기울일 만큼 급격히 커진다면 수익성이 이슈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대기업은 많은 리소스와 거대한 조직을 갖춘 이면에, 한계도 뚜렷하다. 솔루션은 외부가 아닌 그들 내부에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기도 하고 암울하기도 하다.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그들 입장에서 가장 부담인 점은 간단히 말해, 온전한 수익을 누리지 못하거나, 얻은 수익을 미래 사업에 ‘투자’가 아닌 당장의 경쟁과 마케팅에 다시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위와 같이 후발 대기업의 재무적 성공 확률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 것 역시 격렬히 성장하는 이커머스 시장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기도 하다.
다음 회에서는 패션 시장을 중심으로 한 모노 브랜드와 개인 창업자들의 시장 진입 및 활성화 고민은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