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 - AI 시대의 성찰"

by 박현수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서

빅토르 위고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을 올려다보며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라고 중얼거렸을 때, 그는 단순히 인쇄술이 건축의 권위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그는 인류 문명의 거대한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다.

돌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알고리즘으로

중세의 사람들에게 대성당은 모든 지식의 보고였다. 돌에 새겨진 조각상들은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천국의 빛을 전했다. 그런데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식이 무거운 돌덩어리에서 가벼운 종이로 옮겨갔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이주를 목격하고 있다. 지식이 종이에서 알고리즘으로, 인간의 기억에서 인공지능의 연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챗GPT와 같은 AI가 순식간에 시를 쓰고, 코드를 작성하고, 복잡한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기대의 이유들

AI는 분명 희망적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수십 년을 공부해야 했던 의학 지식이 이제는 몇 초 만에 접근 가능해졌다. 언어의 장벽이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창작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AI는 민주적이다. 과거에는 소수의 학자나 전문가만이 독점했던 지식과 창작 능력이 이제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마치 인쇄술이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문자를 평민들에게 돌려준 것처럼.

두려움의 그림자

하지만 두려움도 있다. 위고가 걱정했듯이, 우리의 오래된 것들이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

글쓰기를 AI에게 맡기면서 우리는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암산 능력을 계산기에게 넘겨준 후 우리의 수학적 직관이 둔해진 것처럼, 창작과 사유의 근육도 위축되는 것은 아닐까?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의문이 든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쓰고, 더 논리적인 글을 쓴다면,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준다. 인쇄술이 나왔을 때도 필경사들은 실업을 걱정했지만, 결국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읽고 쓰게 되었다. 대성당이 지식 전달의 독점권을 잃었지만, 그 아름다움과 영성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기계에게 맡기고, 우리는 더 인간다운 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공감하고, 사랑하고, 의미를 찾고, 서로를 위로하는 일들 말이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결국 중요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우리만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여전히 파리의 상징으로 서 있듯이, 인간의 본질적 가치들도 AI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빛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두려워할 필요도, 맹목적으로 환영할 필요도 없다. 다만 지혜롭게 준비하고, 인간다운 것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함께 헤쳐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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