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에세이 - 「그를 버스에서 내리게 하라」
복도 끝에서의 대면 복도 끝 창문 앞에 진우가 서 있었다. 늦은 오후, 빛은 길고 붉게 늘어졌고, 그는 여전히 교복 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고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이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이상하게 공허한 소리가 났다. “나, 교장실 가기로 했어.” 내가 말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덜 떨렸다. 진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그래.” 그리고 한 박자 쉬고, 조금 더 작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 그 말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또렷했다. 그 순간 무너지는 소리가 내 안에서 났다. 아, 이 애는 지금도 자기 말이 맞았다는 걸 증명하려고 이 말을 꺼낸 거구나. 말은 했고, 책임은 없다. 나는 너보다 먼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정말 그렇게 믿었어? 그 말을 하면… 아무 일도 안 한 네가, 옳은 게 되기라도 할 줄 알았어?”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여전히 창밖을 보고만 있었다. “넌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내가 말했다. “근데 지금 와서 그게 ‘했었다’는 거야? 그건 예언이 아니라, 비겁한 해설이야. 넌 내내, 구경만 했어. 말도, 책임도, 결정도… 단 한 번도 네가 먼저 한 적 없었어.” 바람이 복도창을 흔들었다. 진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네가 조용해서 현명한 줄 알았어.” “근데 이제 알겠어. 넌 그냥… 겁 많고, 조용한 가해자였어.” 나는 돌아섰다. 이번엔 진우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 정말 아무 말도, 끝까지 하지 않았다 -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 중에서
스타트업을 함께 시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경험도 풍부한 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게 수동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항상 조심스러운 결정을 강조했지만, 그 신중함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결정을 미루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나 난관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 작은 실패나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나온 이 한마디는 팀원들의 사기를 조금씩 갉아먹고, 제 마음에도 무거운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그의 행동 패턴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가장 먼저 "안 될 이유"부터 찾았습니다.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라며 결정을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사소한 문제에도 "거 봐요, 제가 그렇게 될 거라고 했잖아요"라는 반응을 보이며 결국 일이 안 될 것임을 재확인시키곤 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그의 부정적 예상이 현실이 될까 두려워, 그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매달린다는 것, 특히 그 사람이 핵심 기술을 쥐고 있는 공동 창업자일 경우, 심리적으로나 운영적으로 큰 위험을 동반했습니다. 심리적으로는 그의 지속적인 부정에 저도 점차 자신감을 잃어갔고, 팀 전체에 조용한 침체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운영 측면에서도 우리는 그에게 지식과 업무가 몰려 있었기에, 그의 소극적 태도 하나하나가 회사의 발목을 잡는 병목이 되었습니다. 마치 기둥 하나에 의지해 버티는 집처럼, 그가 흔들릴 때마다 우리 사업 전체가 흔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힘든 경험을 돌아보며, 자연스레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의 통찰이 떠올랐습니다. 코비는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주도적(proactive)으로 살라'는 첫 번째 습관을 강조하며,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 개념을 소개합니다. 주도적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영향력의 원”에 집중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가지만, 반대로 대응적인(reactive) 사람은 “관심의 원” 즉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문제들에만 매달려 결국 비난과 피해의식만 키운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늘 불평만 하는 사람 곁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남 탓과 불운을 한탄하는 부정적 에너지만 쌓인다는 뜻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공동 창업자의 모습이 정확히 그런 대응적인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통제할 수 있는 내부 개선점보다는, 시장 상황이나 남의 단점 같은 자기 영향력 밖의 일(관심의 원)에 더 집중했습니다.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환경이 이래서 어렵다"는 식으로 말하며 우리의 시선을 문제 밖으로만 돌려놓았지요. 그 사이 우리 팀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들—제품의 완성도나 고객 피드백 반영 같은—에는 에너지가 제대로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코비의 말대로라면 이러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팀의 영향력의 범위를 점점 축소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와 함께 지내며 점차 그런 소극적 태도에 물들어 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저는 고심 끝에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더 이상 한 사람의 비관적인 관점에 우리 모두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이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Jim Collins)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먼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 다음 무엇을 할지 결정하라"는 원칙을 강조합니다. 그는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경영자들은 새로운 비전이나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버스에 태울 올바른 사람들”부터 모았고, 맞지 않는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버스의 방향(전략)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버스 메타포는 스타트업인 제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 길을 함께 가는 사람”보다 “가야 할 길 자체”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작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콜린스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만약 팀에 잘못된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면, 방향을 아무리 제대로 잡아도 위대한 회사가 될 수 없으며, 훌륭한 비전도 훌륭한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 스타트업의 비전이 제아무리 좋아도 팀원의 마음가짐과 역량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비전은 공허한 그림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한 배를 탄 사람이 끝없이 배에 난 구멍만 걱정하며 물을 퍼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는 애초에 항해를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었습니다.
결단을 내린 후, 저는 어렵지만 그 공동 창업자께 정중히 작별을 구했습니다. 당장은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핵심 인재 한 명 없이 우리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가슴 한켠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 팀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기술 역량뿐만 아니라 태도와 가치의 적합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다행히 뜻을 같이하는 분을 모실 수 있었고, 팀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회의 테이블에선 더 이상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 같은 말 대신 "한 번 해보길 잘했네요!"라는 말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실패가 나타나도 이전처럼 모두가 멈춰버리지 않고, 배우면서 다음 해법을 찾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도 몇 가지 작은 성공 사례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전 공동 창업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 저었던 일들도, 올바른 사람들과 함께하니 하나둘 가능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저는 리더십의 한 단면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을 놓아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동료를 보내는 일이 배신처럼 느껴져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짜 배신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목표를 흔드는 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있음으로써 팀 전체의 미래를 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내린 결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결단이 회사와 팀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이끌거나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전문가에게 팀 구성은 그 어떤 전략보다도 중요합니다. 한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버리고 팀의 가치와 비전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조직은 한 방향으로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배웠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를 붙드는 것은 리더로서의 책임 방기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미련이 아닌 배움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함께 가야 할 길이 있다면,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올바른 사람들과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때로는 그 길에 맞지 않는 이를 내려주고 보내주는 것이 배려이자 리더십의 용기임을 깨달았습니다. 제 귀에 맴돌던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라는 문장은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경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을 반면교사 삼아, 저는 앞으로 "분명 잘될 거라고 믿습니다"라는 말로 우리 팀의 미래를 열어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