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래?"

경영에세이 -「역할책임과 결과책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조직의 위험」

by 박현수
민준은 마지막 숨을 모았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흡입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의 삶 전체, 그의 원칙, 그의 우정, 그리고 배신당한 신뢰를 응축하여 쏘아 보내는 마지막 한 발의 탄환이었다. 폐가 터질 듯한 압박감, 당장이라도 열릴 것 같은 후두의 경련을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억눌렀다. 그의 마지막 생명력이었던 그 공기는, 성대를 통과하며 정교하게 깎이고 다듬어져 명료한 음절이 되었다.그것은 절규가 아니었다.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물의 표면을 가르며 진우의 고막에 꽂히는 저주였다."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래?" - "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래?" 중에서


무너진 댐, 그리고 책임의 무게

물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통제실에서 강민준이 친구 박진우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래?"—은 단순한 절규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종류의 책임이 충돌하는 순간을 압축한 하나의 선언이었다.


진우는 댐 건설의 역할책임(responsibility)을 맡고 있었다. 그에게는 안전한 구조물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었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권한과 자원이 주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달랐다. 예산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 지질 보고서를 조작하고, 친구의 신뢰를 담보로 거짓말을 쌓아 올렸다.


민준의 마지막 질문은 이제 진우에게 결과책임(accountability)을 요구하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친구의 죽음에 대해, 그가 설계한 재앙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이것은 더 이상 업무상의 역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져야 할 도덕적 빚에 대한 추궁이었다.


소설 속 진우가 겪는 고통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그는 역할책임을 저버렸지만, 결과책임에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역할책임과 결과책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조직의 위험


회피의 심리학: "그것은 제 담당이 아닙니다"

3년 전, 우리 회사에 새로운 CTO가 합류했다. 이력서는 화려했다. 우리 회사의 기술적, 과학적 분야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였다. 첫 몇 달간은 그의 전문성에 감탄했다. 복잡한 프로젝트 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세밀한 업무 분장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드러났다.


"이 부분은 마케팅팀 소관이니 제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요구사항이라 저희 역할책임 범위를 벗어납니다."

"팀원 A가 담당하는 영역이니 그쪽에 문의해주세요."


그는 역할책임의 경계를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실패할 때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역할 범위 밖에 서 있었다.


더 교묘한 것은 그의 언어였다. "우리가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묻는 순간 "그것은 제 전문 영역이 아닙니다"라고 빠져나갔다. 연대의 언어로 포장된 회피였다.


회피자의 전형적 패턴: 집단책임의 함정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한 표현은 "어떻게 책임질려고 그래?"였다. 듣기에는 겸손하고 협력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심리학자 Darley와 Latané의 연구가 보여주듯, 책임이 확산될수록 개인의 행동은 감소한다.


"모두의 책임"은 종종 "아무도의 책임"을 의미한다.


그는 이 심리적 원리를 교묘하게 활용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개인의 결과책임을 희석시켰다. 성과가 나오면 "팀워크의 결실"이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의 기여를 은근히 어필했다.


더 문제적이었던 것은 그의 소극적 리더십 전파였다. 신입 팀원들에게 "섣불리 나서지 말고 정확한 역할 범위 내에서만 행동하라"고 조언했다. "월권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며 위축시켰다.


조직 감염: 소극성의 바이러스

6개월이 지나자 팀 분위기가 변했다. 이전에는 "이것도 해볼까요?" "저쪽도 지원해드릴게요"라는 목소리가 자주 들렸다. 이제는 "정확히 어디까지가 제 업무인가요?" "그건 누구 담당인지 확인해주세요"라는 질문이 늘어났다.


소극성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 사람의 회피적 태도가 팀 전체의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특히 신입 팀원들은 그의 행동을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학습했다.


브레네 브라운이 말했듯, 취약성을 드러낼 용기가 없는 조직에서는 방어기제가 문화가 된다.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책임 영역을 좁히고, 도전하는 대신 안전한 영역에만 머물려 한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결과에 대한 소유권 의식의 붕괴였다. 프로젝트가 성공해도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실패하면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치부했다. 누구도 결과를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단의 순간: 제거의 비용

1년 반이 지나 상황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큰 프로젝트 하나가 완전히 실패했고, 그는 여전히 "모든 이해관계자의 소통 부족"이라는 진단만 내놓았다. 구체적인 개선책을 묻자 "전사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또다시 책임을 확산시켰다.


그날 밤,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조직의 건강을 위해서는 때로 절단이 필요하다는 것. 짐 콜린스Jim Collins가 말한 "옳은 사람을 버스에 태우고, 잘못된 사람을 버스에서 내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체감했다.


하지만 제거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는 법적, 절차적 허점을 교묘하게 활용했다. "제 역할책임을 다했는데 왜 문제시하느냐"며 반박했다. 기술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는 수행했으니까.


6개월간의 지루한 과정이 필요했다. 새로운 KPI 설정, 결과책임 범위 명확화, 그리고 끝없는 문서화 작업. 회피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단순히 금전적 비용이 아니라, 팀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의 신뢰 자본이 소모되었다.


정화 이후: 책임의 재정의

그가 떠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역할책임과 결과책임의 명확한 구분과 정의였다.


역할책임(Responsibility)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

주어진 권한과 자원 내에서의 최선의 노력

과정과 절차에 대한 충실성

다른 사람과 공유하거나 위임 가능


결과책임(Accountability)

최종 성과에 대한 개인적 소유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응 의무

결과에 대한 설명과 개선의 책임

위임 불가능한 개인적 약속


핵심은 두 책임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라는 인식이었다. 역할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만이 결과책임을 질 자격이 있고, 결과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문화: 소유권의 회복

변화는 점진적이면서도 확실했다. 신입 팀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이 구분을 명확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회피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것은 제 담당이 아닙니다" → "제가 직접 담당은 아니지만,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 "제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되,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외부 요인 때문입니다" → "외부 변수가 있었지만, 제가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언어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인식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졌다.


사이먼 시넥의 통찰: 안전한 환경에서의 책임

사이먼 시넥은 "리더십은 지위가 아니라 돌봄"이라고 했다. 진정한 리더는 팀원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우리가 회피자를 제거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심리적 안전감을 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실수할까 봐, 월권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봐 위축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 팀에서는 "실패"를 다르게 정의한다. 역할책임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학습이다. 반면 역할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아담 그랜트의 기버 철학: 집단 성과의 개인적 소유

아담 그랜트는 조직에서 가장 성공하는 사람들이 "기버(Giver)"라고 했다. 흥미롭게도 기버들의 특징은 개인적 성과보다 집단적 결과에 관심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거한 사람은 정반대였다. 집단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개인적 위험 회피에만 집중했다. 진정한 기버라면 집단의 성과에 대해 개인적 소유권을 느꼈을 것이다.


현재의 풍경: 튼튼한 팀의 조건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일단 해보자"는 문화의 회복이다.


역할책임의 경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행동의 한계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이 되었다. 모든 팀원이 자신의 역할 이상을 시도하고, 그 결과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갖는다.


실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시도, 더 빠른 실패, 더 신속한 학습이 일어난다. 차이는 실수의 빈도가 아니라 실수에 대한 태도에 있다.


조직 진화의 법칙: 책임의 성숙도

우리가 경험한 과정을 돌아보면, 조직에는 책임에 대한 성숙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단계: 역할 중심 단계

"내 일만 잘하면 된다"

명확한 업무 분장과 경계 설정

안전하지만 소극적


2단계: 회피 전략 단계

책임의 개념을 회피 수단으로 활용

집단책임을 내세워 개인책임 희석

위험하고 독성적


3단계: 통합 책임 단계

역할책임과 결과책임의 균형

개인적 소유권과 집단적 성과의 조화

건강하고 도전적


우리 팀은 이제 3단계에 안착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회피하는 사람을 방치하는 것이 조직 전체를 2단계로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무리: 메아리가 된 질문의 의미

강민준의 "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래?"는 여전히 울린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역할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되, 결과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우리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되, 회피를 용납하지 않겠다.


우리는 개인의 성과를 추구하되, 집단의 결과에 주인 의식을 갖겠다.


책임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것이다. 진정한 책임감은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를 준다. 그리고 그 용기가 개인과 조직을 모두 성장시킨다.


우리 팀에는 더 이상 강민준이 던진 그 절망적인 질문을 받을 사람이 없다. 대신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오늘 어떤 책임을 다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는 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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