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기

by 현스

여행할 때 찍었던 사진을 봤다. 여행이 일상이 될 무렵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크기도 줄었고 이국적인 풍경과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의 모습도 내가 특별한 곳에서 일상을 벗어나 있구나라는 느낌을 더 이상 주지 않았다. 호스텔 침대에서 일어나면 늦은 밤 파티로 각국의 여행자들이 침대에 드러누워 있고 달갑지 않은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아침을 먹을 때면 시리얼이나 빵 조각, 차를 한잔 앞에 두고 멍을 때리며 주변에서는 영어나 스페인어 혹은 소리로도 구별할 수 없는 자기들 나라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한 귀로 흘러 들어와 다른 귀로 흘러나갔다. 모두가 일상을 벗어나 있는 그때 대화는 무례한 것이 아니었다. 쉽게 인사하고 쉽게 얘기를 나누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인정되는 시간.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수영장 옆에서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거나, 같이 음식을 해 먹거나,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새로운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잘 보냈다’고 셀 수 있는 시간. 그러니까 이런 이국적인 시간 조차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때, 여행 온 한국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 보게 된 내 모습은 이미 그들과 달리 호기심 잃은 눈과 나른함을 넘어선 게으른 일상 패턴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난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사실 한국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일은 따로 있다. 애초 계획은 케언즈에서 발리, 발리에서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거였는데 얼마나 머물지 못 정해서 아웃 티켓을 예약하지 않았었다. 길게 여행하는 만큼 시간에 쫓기는 것도 늘어지는 것도 싫어서 여행지에 도착한 뒤에 다음 계획을 정하는데, 문제가 거기서 생겼다. 아웃 티켓이 없었다. 체크인을 하려는데 아웃 티켓을 요구했고 나는 순간 ‘아차’했다. 지금까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넘어간 거였구나. 쓰지도 않을 티켓을 예약하며 돈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거짓말도 좀 해가며 상황을 설명하며 넘기려 했지만 내게 요구하는 것은 발리에서 나가는 아웃 티켓 단 하나였다. 하는 수 없이 스카이스캐너에서 최저가로 발리에서 나갈 수 있는 티켓을 예약하고 보여줬더니 그건 기간 때문에 인정 안된다고 했다. 전에 없던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 일은 내가 준비를 못한 것이기 때문에 풀 곳이 없었다. 한쪽에는 짜증 가득 섞인 눈과 한쪽은 그냥 보내달라는 도움의 눈으로 빤히 직원을 보고 있으니 싱가폴로 가는 페리가 있다고 가장 저렴한 거니까 거기서 예약하라고 했다. 욱하는 마음에 케언즈 시내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면 생전 처음 봤지만 지인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선의를 베풀어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를 만나서 내가 느끼는 답답함과 엄살을 풀고 싶었다.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지 짧게 봐도 강렬한 사람이 있고 오래 봐도 흘러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전자였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바닥 치는 전투력으로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하려는 시간을 생각하니 이미 실랑이는 다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획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내 배낭보다 10배 정도는 커 보이는 어두운 그림자를 데리고 발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고 도착한 우붓, 예상과는 다르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친 마음을 알아주는 듯 좋은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곳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돌아보면 공항에서의 일은 지금까지 여행하며 겪었던 일 중에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긴 여행으로 인해 내가 많이 예민해져 있었구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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