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는 나중에 가라.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갈 수 있겠어요.

by 조은결

어머님이 산티아고는 충분히 준비해서 나중에 가라고 하셨다.

나중은 기약이 없는 말이다.

몇 년 전이었다면, 알겠다고 대답해 놓고 혼자 울고불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어머님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이들도 많이 컸고, 그때는 방학이 아니고 학기 중이라 어차피 하루 종일 학교에 가 있으니, 애들 아빠가 할 일은 별로 없다고 말씀드렸다.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아마 못하셨을 것이다.

애들 아빠한테도 왜 어머니께 일러바쳤냐고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남편이 이미 너그럽고도 적극적으로 결정해 준 일이다. 나는 몇 번이고 그 결정에 대해서 확인을 했고, 그랬기에 마음을 키워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결혼 후 자기의 양말 한 켤레조차 빨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 인생의 시간을 가져다가 1.5배의 시간을 살았고, 주는 나도 그게 옳은 건 줄 알았다.
난 0.5의 시간 중 또 0.3 정도는 아이들에게 바쳤으므로, 나에게는 늘 0.1~0.2 정도만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저 수치도 너무 후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랜 시간, 나에게 내가 없었다.

그걸 깨달은 후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었다.
여전히 내 삶의 대부분은 가족이고, 가족에게 주고 남은 시간에서 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산티아고 순례는 너무 중요하다.

어머님이 가지 말라고 하시니, 나의 결심이 오히려 견고해짐을 느낀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이든, 며느리에 대한 걱정이든, 도와주시지 못하는 어머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든, 이번엔 정중하게 고이 되돌려드렸다.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더 멋있어진 모습으로 사랑하는 이들 앞에 설 것이다.

중2 딸에게 “할머니가 엄마 산티아고 가지 말래!”라고 했더니,
“그럼 몰래라도 가!”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내가 내 돈으로 가는데, 왜 몰래 가니? 당당하게 가야지!”라고 말한다.

딸에게 고맙다. 올 때 명품 향수라도 사 가지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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