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 모르는 순간 찾아오는 건지도 몰라.

by HYUN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란 한스 라트의 장편소설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 나의 어긋난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고야 마는 신기루처럼 말야.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책장을 뒤졌어.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홀연 생각이 났어. 언니에게 이 책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말야. 신은 갑작스레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만 같아. 신께 절규하고, 간청하는 사람은 극단의 상태에 신을 찾게 되지. 침착하게 책을 찾기 위해 집중하던 난, 이내 울렁거렸어.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니. 책이 아니라 되찾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과 같이, 되찾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거야.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명하기 전 ‘신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란 물음을 남겼다고 해. 멍하니 앉아, 분명한 답을 찾으려 애써봤어. 인간은 보고 싶은 것을 다 볼 수는 없는 거지. 존재감이란 무엇일까? 소중한 사람의 존재감은 실존과 실재를 넘어선다고 생각해. 견고할 수밖에 없는 거지. 신은 모르는 순간 찾아오는 건지도 몰라. 열이 펄펄 끓던 아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을 때와같이 말야. 까만 밤에 아이의 머리맡에 하얀빛이 내린 거야. 그럴 때면 모든 게 감격 그 자체지. 그런데 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참혹한 형벌을 받은 것 같았어. 그럼에도 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어. 난 필요할 때만 신을 찾았으니까. 어느 순간에도 생명을 품어주길 여전히 바라지만 말이야. 신이 주신 기회를 알아채지 못한 나에게 떨어진 최후통첩이었을까. 신을 등진 나에게 천지개벽을 보여준 것일까.


앞서 찾은 책에서 볼테르는 말하지. “신이 없더라도 우리는 신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라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대목이야. 행운, 불운, 기회, 위기를 불러내는 것은 누구일까?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의 믿음은 어디에 가 있을까?


신께 빌게. 너만은 내게 오래도록 함께 있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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