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상상의 날개를 달아, 날아올라.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어. 그 누구도 될 수 있어. 나의 상상은 막연한 공상으로 그치기도 하고, 작업의 줄기를 이루는 구상으로 연결되기도 해. 상상은 항상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게끔 하는 거야. 더 큰 날갯짓을 할 수 있게 격려해 준 마음을 난 잊지 않았어. 다양한 상을 재생시키고, 창작하는 힘을 기대하면서 말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에서 “픽션을 읽어본 경험의 부재가 엘리트 과학도를 광신도로 만들었다.”라고 해. 일본의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목소리를 들은 소설가의 견해야. 참상은 전쟁터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어. 통상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있으면,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야. 논리와 상식의 범주 밖을 상상조차 못 하는 거지. 삶에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인 거야. 픽션(허구)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간접경험 하게 해. 실제 경험만큼 귀중한 거지.
상상력이 버티는 힘을 길러준다는 사실을 아니?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는 나를 여러 번 불러냈어. 저자는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감금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었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의 깜빡임만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해. “난 왼쪽 눈 말고도 마비되지 않은 게 둘 있다. 나의 상상력과 기억이다.”라는 그의 말은 내게 엄청난 울림을 주었어. 오래전 나의 일기를 꺼내 보니 이런 구절이 있더라고. “지난날을 회상할 때면 가마득하다. 그럼에도 추억과 상상력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라고.
막다른 길에서 구해낸 상상이야. 정독도서관에서 문학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어. 독서는 나의 숨을 곳이었고, 마음 둘 유일한 곳이었어.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었지. 물론 책을 펼쳐볼 시간조차 없을 때도 있잖아. 그럴 땐 상상을 하는 거야. 아주 사적인, 사사로운 전개가 가능한 상상의 세계로 널 초대할게. 현실에 잘 살다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