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블레스 유(Bless you). 재채기를 하면 어디선가 축복이 들려와. “행운을 빌게.” 민망한 상황에서도 미소 짓게 되는 말이지. 이 말의 시초를 찾아볼까? 전염병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교황은 3일간 참회 기도를 올렸고, 죽어가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며 다 같이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라고 할 것을 명했다고 해. 전염병이 잦아든 후에도 사람들은 그대로 말하게 되었대. 일상 언어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천 년의 말인 거야. 코비드 팬데믹을 겪고 나니 다르게 들리지 않니?
그러니까, 행운을 만난 적 있니? 혹시 잡지에서 별자리가 있는 페이지를 먼저 보니? 신문은 오늘의 운세 서비스를 종료하기 힘든 이유가 있대. 독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기 때문이라더라. 듣고 싶은 말이 있나 봐. 믿고 싶은 거겠지? 어느 날 사람들로 붐비는 광장에서 지나가는 말을 듣게 됐어. “야, 운수 좋은 날이라는 소설도 있잖아. 당첨될 것 같아!”라는 거야. 허어…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의 결말을 모르나 봐. 있잖아, 문학잡지 릿터에서 색다른 접근을 봤어. 소설가 김이설이 아내의 시점에서 다시 쓴 ‘운발 없는 생'이야. “나는 답답했다. 운이 왜 필요한가. 열심히 일하고 착실히 모아 어떻게든 살면 되지. 꼬박꼬박 하루벌이의 절반이 넘게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주제에, 그마저도 벌이가 적은 날은 옴팡 다 쓰고 들어오기를 예사로 알고, 날씨 탓을 하며 나가지 않는 날이 달에 반은 넘었다.”라는 구절을 읽었어. 그러고는 좋은 운수를 다시 생각해 봤어. 그래서 행운이 뭔데?
난 행운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기적을 바란 적은 있어. 바랄 수는 있는 거니까. 기적은 사실 조그마한 실천들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것 같아. 내게 행운이라면, 그건 추억이야. 고립된 적이 있지만, 사진첩과 생생한 기억 덕분에 지낼 수 있었거든. “넌 나의 행운이야.”라는 말은 참 낭만적이지? 그래, 사람이 행운이 될 수도 있는 거야. 행운, 만난 적이 있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