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빨갛게 반짝이던 사과가 색이 변했어. 지난 일이라고 해서, 없던 일이 될 순 없잖아. 제멋대로 발설하는 건, 분노를 배설하고야 마는 거야. 되돌릴 수 없더라도, 늦었더라도… 반드시 사과는 해야 해. “미안해. 할 수 있는 말이 이 말뿐이어서 미안해.”라고 할 뿐일지라도 말야. 상대를 헤아리려는 사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 자신에게 처한 어려움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과는 얄궂은 방책일 뿐이야. 어느 누구에게도 면죄부를 줄 수는 없어. 사과하기 전에 인정해야 하는 거야. 적어도 염치란 걸 알아야지. “미안해란 말이 더 싫겠지만, 미안해.”처럼 반복적인 사과는 지겨워. 모른 척할 수 없는, 크나큰 간극이 이미 벌어진 걸 왜 모르냐는 말이야. 지금까지, 사과에 관한 나의 하소연이었어.
때론 불편하기까지 한 사과 말고, 사과 같은 미소가 지어지는 그림 이야기를 해볼까 해. ‘사과가 쿵!’이라는 다다 히로시의 어린이책이 있어. 숲속에 커다란 사과가 떨어지자, 동물 친구들이 나눠 먹어. 동물 친구들의 다양한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책이야. 사각사각, 야금야금, 냠냠냠 등의 의성어가 있거든. 그림을 떠올리니 다시 반짝이게 되었어. 사과는 조형 언어로 다양하게 표현되기도 해.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이 대표적이야. 뉴턴의 사과와 달리, 중력을 거스르고 녹색 사과가 사람 얼굴 앞에 붕 떠 있어. 자화상이기도 한 그림 앞에서 관람자는 당연한 것의 역설을 보게 돼. “무엇을 의미하느냐?”라는 질문에, 작가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고 해. 이 작품은 비틀스와 애플컴퓨터에 영감을 줬다고도 알려졌지. 숨겨진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을 자극하기 때문일 거야.
마그리트 그림 속 사과에 가려진 표정을 상상해 봐. 변색한 사과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야. 언니가 매 순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내 사과를 받아 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