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하고 싶어. 자꾸만 그 사실을 잊게 된 거야. 계속하여 일했기 때문에 직업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내 직업은 꾸준히 버티고 하는 일이야. 눈 뜨면 무조건 하는 일련의 행위야.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럽지만, 음 이탈이 나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거야. 매체와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다 보니, 한정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더라고. 전업 작가란 표현은 고리타분해. 그래 난 예술가야. 우리나라에서는 작가 스스로 예술가라고 하지 않기도 하더라? 홍대 예술병 같은 비하도 아니고,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 내 전시를 보고 예술 기획자가 한 말이 있어. 시각 예술을 한다고 소개했는데, 매우 다양하다고. 그 말은 내게 열린 생각을 갖게 했어. 그래, 잘하는 걸 다 해보려고 해.
사장이나 통장 말고 작품에 헌신할 수 있어, 감회는 복잡해. 나의 ‘직업 세계’도 다양했으니까. 직업이 곧 능력이라고 하는 사회는 괴상해. 거기다 퇴사를 권하는 사회 풍조가 생긴 모양이야. 권고사직 말고, 주변에 흔한 권유 말야. 퇴사가 준비된 자들은 조용히 알아서 떠나.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조언이란 게 퇴사밖에 없는 건지. 자기 환상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 필요한 거야. 퇴사 선택권을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 돌려줘야지. 난 가끔 직업의 타이틀이 빠지면 남는 게 뭐가 있을지를 생각해.
정신이 번쩍 나는 시간과 공간을 알려 줄게. 동대문 시장, 자정 12시를 넘긴 때야. 다른 곳은 그 시간대엔 우범 지대야. 반면 이곳은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로 넘쳐. 빠르지만 정확한 그들 속에서 안정을 느껴. 동시에 생의 의지를 다지게 되는 거야. 청년의 빛 같은 시간과 열정에 빚진 사람이 많아. 허먼 멜빌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사랑받는 문장이 있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에 빠지지 않겠다는 거야. 너의 빛을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기를 바랄게. 우린 진짜배기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