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는 얻는 게 아니라 창작하는 것일지 몰라.

자유

by HYUN

죽지 못해 사는 일을 그만두려 해. 누가 시켜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내야 하는 거니까. 나를 주저앉히는 것도, 일으켜 세우는 것도 다 나니까. 내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일을 쉬이여기지 않을래. 이번 장에서는 개인에 집중해 보기로 해. ‘나'는 ‘너'이기도, ‘그녀'는 ‘나'일 수도 ‘너'일 수도 있는 거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 되어 보는 거야. 나는 정녕 자유로울 수 있을까? 네게 자유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까?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게 해방이라면, 자유는 주체적인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갈망해도 자유를 얻을 수 없다면, 자유는 얻는 게 아니라 창작하는 것일지 몰라. 작가는 자유의 범위를 넓히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유를 만끽하기 어렵기도 해. 그래서인지 직접 경험을 말하기가 쉽지 않네.


언제고 처음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고통이 있어. 길들지 않는 자가 진정 자유인인데 말이지. 그 무엇도 나를 길들일 수 없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물음만 가득한 나에게 휴가를 주고 싶어. 나를 위한 자유 여행을 선물할래. 잠시 잠깐의 외출 같은 여행도 좋아. 외딴곳 혹은 붐비는 곳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거리낌 없는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영화 ‘챌린저스'는 스포츠 경기만큼 치열한 관계 안의 욕망을 노출하더라. 일인칭 카메라 구도는 주도적 여성의 시점인 거야. 홍보 문구 중 “Her game. Her rules.” “그녀의 게임. 그녀의 규칙."이란 말이 있어. 물론 자유와 방종을 혼동하면 안 되겠지? ‘청년들이 자유를 귀하게 여겼으면' 하신다는, 소설가 이호철의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말야.


너는 지금으로부터 자유로워, 자유로이 살아갔으면 해. 오직 하나, 자기 소유인 자유를 맘껏 움직여 봐. 너바나 ‘네버마인드' 음반에 수영하는 아기 사진처럼, 배움 없는 몸짓이 만드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거지. 부자연스럽게 얽매이지 말고, 고유한 힘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의 모습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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