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자폐 진단

먹구름이 다가온다

by Hyuntae Kim

아이를 갖고 나면 많은 가정들이 꿈을 꾼다. 태교부터 낳는 과정까

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아이의 성별은 무엇일까? 태명을

무얼로 지을까? 하며 부모 둘 사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산달이 가까

올 수록 아내는 무거워 하고 또한 아이의 용품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상상들을 하며 아이의 출생을 예비한다. 아이 침대, 아이

이불, 기저귀, 장난감 등 어릴 때 이후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2세에

게 해준다는 기쁨으로 여기저기 쇼핑을 하고 둘러본다. 이러한 기

쁨의 준비기간 동안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바로 아이의 장애이다.

(물론 노산인 경우, 장애 진단을 미리 받기도 한다) 많은 가정이 아

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것은 사실 그들의 계획이나 꿈 속, 상

상 속 에도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장애는 더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

히 우리 집처럼 큰 아이가 장애가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엄마

들의 촉이 확연히 아빠들의 촉보다 좋다. “아이가 이상한 것 같아,

안 뒤집어,” 어른들 말로는 조금 늦을 수 도 있으니 기다려보자 그리

고 또 다시 두어달이 지났다. 12개월이 지나도 안 뒤집는다. 이건 큰

아이를 키워본 경험으로 확실히 다른 상황이었다. 소아과 의사를

만나고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서 몇 달을 기다리던 중에 아이가 뒤

집고 걸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도 전에 아이가 아이의 이름에

반응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그 당시 우리집의 관심은 아

이가 걷느냐 안 걷는냐 였다. 갓난아이일 적 아이는 눈을 보고 웃기

도 하고 이름을 부르면 꿈벅거리기도 했기에 이름에 반응 하지 않

는 다는 것은 아이 발달 리스트에는 없었다. 헌데 아이가 걷기 시작하

는데 까치발로 걷거나 서있고, 호명에 반응하지 않고 반신반의 하

면서 소아 신경발달 전문의를 만나러 갔다. 전문의는 아이를 놓고

20여분도 채 안돼서 아이가 자폐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 순간 검은

먹구름이 덮치며 우르릉 쾅쾅 머리를 진동 시키고 검은 먹구름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뒤덮어 버렸다. 깜깜해진 머릿속 충격이 커서일

까, 멍하니 앞차를 응시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예전

오락실에서 자동차 게임을 하는 듯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마치

꿈을 꾸는 듯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버린 어쩜 원치 않는 삶으로 엔

터(Enter)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복합적이 기분 어

떤 큰 사고나 재해를 입은 것은 아닌데 어느 순간 나의 모습은 보이

지 않았다. 게임을 하듯 집으로 돌아온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 자폐아이를 진단 받았을 때의 느낌이나 순간은 다른 부모들 역시

내가 겪은 것과 사뭇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부정하고 싶고, 받아

들이기 어려운 현실, 그렇다고 아이가 다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도 아

닌데 “장애” 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어 버

렸다. “장애” 라는 현실을 의도치 않게 부딪히게 된 당신, “ 넌 참

잘 할 수 있어” 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도전이 되고 힘이 들

수 있겠지만 “ 당신, 잘 해 낼 수 있습니다.” 라고 누군가 이야기 해

주었더라면 지금 보다 더 잘 했을 것 같았다. 막상 아이가 장애 진단

을 받고 나니 세상에 혼자가 된 것 이었다. 이 길을 가 본 이들이 있

다는 것은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치료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

한 후부터 나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나간 이들이 있다는 것을 또한 그

들도 과거의 그들의 삶에 이러한 갈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아이가 장애 진단을 받고 어둔 먹구름에 가려져 살 수 만은

없었다. 부모로써 무언가를 해봐야 했다. 미국은 장애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리저널 센타(각 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에 장애 등

록을 해야 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양육에서 큰 차이점은 하지

않아도 아니 필요치 않았던 일들을 둘째아이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신경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장애 진

단, 장애 아이 등록 치료시설 탐방 및 치료시설 찾기등 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찾아가야 했다는 것이다. 진단을 받고 우리에게 찾

아온 첫 번째 벽은 많은 에이전트하고 딜(Deal)하는 것이었다. 소셜

워커(사회복지사) 우리 애를 위한 어떤 옵션들이 있는지 또한 그 옵

션들은 선택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 아이의 진단 서류를 이메

일로 보내고, 그들의 응답을 기다리고 하는 시간에 부모의 마음은

어쩜 타들어가는지도 모른다. 이때가 제일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

다. 생각지도 못한 길을 더듬더듬 거리며 걷고 있다는 사실, 그 걸음

을 놓치면 아이의 삶에 해가 될까봐, 한 걸음씩 더디더라도 찾아가

는 무지한 부모의 발걸음 그리 무겁고 더딘지 답답한 시간이었다.

가끔 들려오는 “네 아이는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고 하면, 무엇

을 준비해야 하는지 거기는 어디 즈음에 있는지, 접해본 적 없는 생

소한 용어들과 싸움, 인터넷을 뒤져보고 그 용어의 뜻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 단어 자체가 우리 아이한테 어떤 의미인지 등 나의 무

식함과 무지함을 질책해야 했다. 아이가 장애가 없었더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일, 그러나 지금부터는 감당해야 하는 긴 여행의 자리

에 서 있어야 했다. “왜 그리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없었던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한 번도 심도 있

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 자신을 스스로 책망해 보기도 했다.” 하

나 둘 씩 셋업이 되어가고 있다. 치료 의료 복지혜택, 사회보장제도

에 가입하는 일 등등이 끝나고 나니 어느 새 시커먼 먹구름이 걷혀

가고, 내 눈에는 뜨거운 해를 가려주는 썬글라스가 얹혀져 있었다.

어쩜 선글라스는 나를 감추는 수단이었을 수도 아님 세상이 그리

만만히 보이지 않는 상징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이나 색감은 아이가 장애를 받기전과 같지 않았다. 다른

느낌 분명 난 다른 이들과 같은 세상을 보는데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안다. 부자와 가난한자의 세상이거나 권력자와 비 권력자의 세상이

아니라 , 딱 두 부류의(장애와 비장애) 세상으로 나뉘었다. 아마도

내 눈에 씌여진 선글라스는 내가 보는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라고

주어졌던 것이다. 아이의 장애 진단은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을 바

꾸었다. 좀 짙은 색상이 덧대어지고 다른 곳이 아니 한곳만 보도록

시선이 고정이 되어지는 느낌이랄까? 아이의 필요를 채우는 데에

만 시선과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 아니가 싶다.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이 과정을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혼란스럽고 어지

럽고 혼자 버려진 “왜 나한테 혹은 우리 가족에게?” 이 질문을 하면

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억장이 무너짐에도 다시 맘을 잡

고 세상을 보더라도 이전의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과 다름을 발견

하게 된다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읆조려 보이긴 했어도 피부적으로

느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진단 이후로 세상은 더 잔혹한 곳

임을 더 깊게 깨닫게 되었다. 간혹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사람

들만 보면 살만 나는 세상이라 느낄 수도 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

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 하지

만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더불어 살기에는 비장애인들이 그

들 옆에 살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미국도 마찬가지임) 대놓고 뭐라 하지 않지만 눈치를 많이 준다.

밥 먹으면서 옆의 테이블을 누가 신경을 많이 쓰나, 그러나 아이가

소리치고 외계언어로 말을 하면 우리가 그곳을 떠 날 때 까지 쳐다

본다. 그 아이도 외식을 하는 사회적 경험도 하여야 하는데 그들의

시선으로 인하여 부모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든다. 아이의 잘못도

부모의 잘못도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잘 모르는 사회, 나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다른 이를 불쌍하게 취급하거나 혹

은 관심이 없는 사회, 그 사회안 에 사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하

여튼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벽과 마주서야 만 하

는 일이다. “넌 참 잘할 수 있어” 우리 스스로에게 격려 해야 하는 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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