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도움 없이 버티어내기

by Hyuntae Kim


진단을 받고 식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가 장애가 없었더라면 굳이 부탁이나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우리의 일상생활도 장애진단하고 상관없이 전처럼 돌아가야 하고 그 위에 장애아이의 가족으로서의 삶이 덧대어졌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편견을 깨야 한다. 그리고 극복을 해야만 한다. 이전의 내가 잘나서 혹은 사회에서 잘 나가는 게 현재라 해도 그건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이 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이의 부모로써 창피, 부끄러움 이런것들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헌데 나 스스로는 이것을 이겨낸다 해도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이것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주변의 시선, 꿈의 좌절, 이러한 것들이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더욱 고립시킨다. 혹시 항구에서 배를 타 본적이 있는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던 배는 어느 순간 순탄치 못하다.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세서 멈춘게 아닌 배 자체의 고장으로 인한 멈춤 같은 것이다. 칠흑같은 바다 위 한 가운데 고장나 서 있는데 멀리서 보이는 불빛들은 못 본척 지나가는 것 같고 혹 누가 물어본다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그 자체도 고립의 원인 바로 외로움의 시작이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것 아마도 내 안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장애에 대한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씩씩하게 살아가려 마음을 다 잡아도 갑자기 심연 저 안에 가두어 놓았던 나의 자아가 생각이 나면 “ 난 누구” 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 지고 가야 하는 짐이 더 무거운지도 모른다. “ 난 이렇게 힘든데” “저들은 왜 즐거워보일까“ 사실 사람들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유독 그들보다 내가 불행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아픔을 공

유하고 정보를 나누며 서로를 다독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쩜 외로움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헌데 내가 사는 세상 아니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는 나를 이해해 줄 어떤 이도 없다. 어쩜 온전히 내가 지고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외롭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혼자 낳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배우자도 자세히 그 외로움을 모른다. 장애를 키우면서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로 사회적 교류 그룹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 서로를 잘 이해 줄 것 같은나 이 자폐라는 장애에게는 등급이 있다. 이 등급에 있어서 부모의 대화 상대 그룹도 바뀐다. 자폐에는 마일드,(MILD) 모더레이트,(MODERATE) 시비어(SEVERE) 이렇게 세 분류가 있는데 최근에 나오는 학계나 연구에 의하면 프로파운드(PROFOUND)를 추가해야 한다고 하며 프로파운드 자폐

가족들 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분류적으로 이야기 하는 이유는 부모들 조차 다른 등급의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마일드의 장애를 키우는 부모는 모더레이트에 관심이 덜하고 모더레이트 의 사람들은 시비어에 관심이 덜하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아이들이겪고 있는 장애에만 온 힘을 쏟아도 힘든데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어쩜 버거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다. 자폐장애 가정의 경우 역시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관심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나의 관심사에 외에는 다른 이들에게 까지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어쩜 그래서 더 외로운지도 모른다. 나의 문제, 나의 아이의 문제에만 중점을 두니 그 외에는 다른 사람의 일이 되는 것이다. 설사 관심이 있다 해도 삶에서 그 비중은 현저히 낮다. 이 외로움은 평상시에 항상 나 외로운 것 같아 하며 살지는 않는

다. 어느덧 문득 찾아온다. 삶이라는 것이 어떠한 일의 연속인데 그 평범함을 유지하며 살려 애를 쓰는데 그것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물질적, 심리적, 정신적 노력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변수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최근에 라이딩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 위하여 라이더를 구하는 엄마의 모습, 누군가의 삶도 바쁜데 우리 아이의 일이어서 더 애를 쓰는 모습 그래 거절당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 누군가에게 그 애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헌데 장애를 가진 부모들은 이 부분이 너무 어렵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 더욱이 그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혹은 친구에게는 부탁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그렇다. 이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고는 상관이 없다.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면, 나의 아이가 갑자기 불쌍해지고 나 스스로에게도 죄책감이 든다. 그것이 외로움이 라는 감정적 단어가 알려주는 나의 처지이다. 누구도 장애를 키우는 가정에 자율적으로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헌데 누군가 도와줄게 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마음에 쌓여 있던 답답함이 터지는 것 같은 시원함이 올 때도 있다. 이 말을 듣는게 그렇게 어려운가? 아니 하는게 어려운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거나 요청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그 경계선을 넘지 못하

여 장애 아이를 키우는 우리는 외로운 것이다. 아이 때문이라도 이것을 감내해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외로움도 고독이라는 단어로 포장을 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외로움 조차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삶은 아이와 나 자신이 살아내야 하기에 외로움이 방해가 된다. 심적으로 외로움을 가지는 것은 얼마든지

부모로써 감당해 낼 수 있다. 헌데 도움이라는 단어 앞에서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다. 라는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 앞에서의 외로움은 버티기가 힘들다. 어쩜 이미 어깨에 지고 있는 짐이 힘들어서 일 수도 있다. 그렇기때문에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다른 색깔이다. 오늘도 이 외로운 싸움을 해내고 있는 같은 자폐 부모님들 혹은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말하고 싶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라고 말이다. 외로움을 이겨내며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당신은 충분히 멋있는 부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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