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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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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Sep 09. 2016

Emidio’s Restaurant

July 19, 2016

그녀의 레스토랑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창가를 따라 길게 줄지어 배치된 작은 2인용 테이블에는 손님들이 드물게 앉아 있었다. 예약을 하고 찾아오는 너댓 명의 단체 손님들은 항상 창가가 끝나는 지점, 가게 가장 깊은 곳의 모서리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반투명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정오의 햇빛이 모서리 자리까지 미치지 못해도 단체석은 유쾌한 웃음 소리로 빛났다.


“How are you?”

익숙한 외지 억양으로 그녀는 내게 물어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제법 단단해보이는 체구의 여인. 무릎 밑으로 살짝 내려오는 미디엄 길이의 무채색 미니 도트 원피스에 단정한 플랫 슈즈. 레스토랑 서빙 일로 부지런히 단련되었을 팔뚝을 부드럽게 감싸는 밝은 녹색 가디건. 약간의 잔머리는 흘러내릴 수 있도록 관대하게 묶인 섬세한 황갈색의 포니 테일. 환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 위로 가느다란 선들이 드리워져 그녀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그녀는 20년 전 포르투갈에서 왔다. 남편과 뉴욕에 살면서 두 남매를 낳아 키우다가, 무슨 연유에선지 애틀란타로 거취를 옮겨 몇 년째 가족들과 유로피안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유럽인 특유의 영어 억양과 완전한 미국인이 아니라는 사회적 신분에, 내 절친한 오스트리아인 친구의 머리색을 닮은 그녀의 머리칼에 나는 다정함을 느꼈다. 신혼여행의 여독이 가시기도 전에 남편의 직장이 있는 미국으로 호기롭게 따라온 나는 벌써 한 달째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곳저곳 표류 중이었다. 미국 상가들의 광활한 주차장과, 냉동 패티만큼이나 차가운 패스트푸트점 직원들의 무관심과, 어느 식당에서나 따라다니는 네모나고 길다란 감자튀김과 하인즈케첩과 코카콜라에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모국에서는 언제나 나를 말 없이 위로해주던 나무와 하늘과 노을도 이 곳에서는 모두 생경했다. 나무들은 지나치게 키가 높았다. 꽤 먼 발치에서 바라볼 때에도 목을 뒤로 꺾어야 꼭대기를 쳐다볼 수 있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은 인공 색소처럼 짙고 선명했다. 태양의 홍염을 그대로 흩뿌려놓은 양 형광으로 불타오르는 주황. 진노란색으로 번져가던 빛은 북쪽에 이르러 차가운 분홍으로, 보라로, 파랑과 남색으로 이어졌다. 그 색들은 의아할 정도로 선명했다. 지난 25년 간 가장 당연하게 의지해온 피사체들이 낯선 빛깔과 기운으로 다가왔다. 어제는 한없이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이 오늘은 돌연 차갑게 입을 다문 낯선 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음식이 담긴 흰 접시가 커다란 금색 플레이트 위에 놓여졌다. 따뜻하고 끈적한 소스에서 상큼한 레몬향이 감돌았다. 조심스럽게 소스를 먼저 한 입. 레몬향은 생각보다 은근하게 입 안에서 퍼졌다. 고소한 버터가 레몬향을 부드럽게 감싸, 너무 시지도 너무 느끼하지도 않게 균형이 잡혔다. 연어는 수비드 공법으로 조리를 했는지 속이 골고루 잘 익었는데도 식감이 부드럽고 촉촉했다. 레몬 버터 소스는 연어와 환상적인 궁합을 보이며 계속 입맛을 당겼다. 소스에 섞인 케이퍼를 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입 안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한여름 해질 무렵 뜨듯하게 데워진 해수욕장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즐기는 불꽃놀이 같았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빈 잔에 계속 물을 채워주는 고마운 그녀에게, 나는 포르투갈 음식은 처음 먹어보지만 꼭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음식에 사용되는 모든 빵과 소스는 (심지어 케첩까지도) 식당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라며 기뻐했다. 서로의 출신과 배경에 대해 의례적으로 묻고 나서, 그녀는 본인의 아들이 뉴욕의 산부인과에서 갓 태어났을 때를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아들이 태어났을 때, 다들 중국 아기가 아닌가 생각했어. 찢어진 눈에 작은 코. 나랑 남편 중 어느 쪽도 아시아계 혈통은 없었기 때문에 우린 무척 의아해했지. 그 때 산부인과 담당의사가 중국 남자였는데, 남편은 혹시 그 중국인 남자가 애 아빠 아니냐며 농담하곤 했어. 그런데 말이야, 혹시 모르지. 내 조상들 중에 아시아 사람이 있었을 수도. 포르투갈 사람들은 개방적인 마음을 가진 편이라 다른 인종과의 결혼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거든.”


“You never know.”

문득, 그녀는 내가 본인의 조카와 꼭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베네수엘라에 살고 있는 내 조카도 너처럼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그리고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고. 어쩌면 정말 너희 둘에게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주 먼 옛날 너와 나의 선조는 동일 인물이었거나, 혹은 판의 경계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을 했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내 조카의 웃는 얼굴이 너의 얼굴과 그렇게 꼭 닮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우리가 한 핏줄이고 마침내 한 가족일지 모른다는 거대한 우주와 같은 말을, 동쪽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레몬 버터 소스와 연어를 앞에 두고 앉은 내게, 서쪽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20년을 기다린 그녀가 자신은 의도하지도, 의식하지도 못한 다정함으로 건네왔다. 어쩌면 우리는 오래 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이 곳으로 왔고, 그 순간에 마침내 서로를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날 내가 먹은 포르투갈 음식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집밥이었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시는 음식과도, 시골집 마루에 앉아 먹는 향토 음식과도 완전히 다른 모양, 다른 맛이었지만, ‘집밥’이란 단어가 아니고서는 그 음식을 설명할 수가 없다.


다음 번에는 남편과 함께 오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에 올라탄 순간, 다른 날 같았으면 내 몸 속의 온도가 한낮의 복사열로 뜨겁게 달궈진 차 안의 온도에 못 미쳐 몸서리를 치거나 긴 한숨을 내쉬었을 그 순간, 나는 내 마음 속 온도가 그 후덥지근한 차 안의 온도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느꼈다. 모네의 그림 속에서 본 듯한 뭉클한 뭉게구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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