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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Feb 22. 2017

나의 아줌마 친구들


뜨겁고 습한 작년 여름이었다. 수변 공원을 산책하다 마주친 젊은 남녀들의 와하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신혼 생활을 시작한지 불과 몇 개월이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길게 늘어진 공원은 카약, 튜브, 모래사장과 비치볼, 수영복을 입은 이삼십대 젊은 남녀들로 천진하고 어지러웠다. 애틀란타의 여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햇빛은 따갑고 공기는 습했다.


타국에서 이사온지 몇 달 되지 않은 나에게 지인이라고는 남편과 남편의 상사 내외, 그리고 남편네 옆 회사의 몇몇 남편 친구들 뿐이었다. 남편의 상사와 그의 아내인 현정 언니는 삼십대 중반의 다정하고 좋은 분들이다. 다만 집 안에서 혼자 노는걸 좋아하는 현정 언니의 성격 탓에 내가 실제로 그녀를 만나는 횟수는 한 달에 한 번이 채 되지 않았다. 돌이 갓 지난 아기가 있어 마음 편히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 마저 쉽지 않았으므로, 선뜻 그녀에게 약속을 청하기가 꺼려졌다. 남편 옆 회사의 친구들은 까를로스라는 스페인 친구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었다. 까를로스와 그의 아내 노에미, 그리고 이들의 소개로 알게 된 몇몇 커플들끼리 모여 몇 번의 주말 저녁을 함께 했다. 유쾌한 사람들이었고 우리를 기꺼이 집으로 초대해 음식과 마실 것을 내어주었다. 함께 맥주와 젤로샷을 마시며 여름 레포츠를 즐기기도 했지만, 어쩐지 나는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2010)>의 메리가 되어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영화 간단 요약)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들 속에서 나는 혼자 부침을 반복했다. 끝없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한 번씩 숨을 헐떡이며 수면 위로 떠오르면 아직 살아있다는 행복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그런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해하면서도 도리가 없었다. 지난 3년 간 혼자 회사와 집을 오가는 고독한 일상에 힘겹게 적응해온 그에게 지금까지의 유일한 돌파구는 하루 한두 번 유선으로, 또는 몇 달에 한 번씩이나마 직접, 나와 만나는 일이었다. 그가 겪은 전철을 나는 유난히 힘들게 통과하고 있었고, 그는 나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더 열렬히 쏟는 것 외에는 특별한 처방을 알지 못했다. 주말의 꿀 같은 데이트 동안에는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지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주중에는 퇴근 후 집에 가만히 앉아 쉬는 남편이 못견뎌웠다. 예민해져 더 서럽고 외로웠다. 그래서 또 싸웠다. 싸운 뒤에는 혼자 1톤쯤 되는 추를 달고 바닥으로 내려가 쓸쓸함을 삼켰다.


외로움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 내 용기가 허락하는 범위 내의 여러가지 시도를 동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몇몇 모임에도 나가보고, 아트 센터에서 하는 드로잉 세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참석했다. 요가 스튜디오에도 등록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났으나 각자 나름의 안정된 생활 반경과 테두리가 있었고, 과연 내가 그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의심스러웠다. 그 의심은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도무지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는 영어가 도움될 리 없었다. 남편과는 늘 한국어로 대화하므로, 쓸 일 없는 나의 영어는 늘 생각이 없었다. 가끔씩 가게의 점원이나 식당의 웨이트리스가 건내는 다정한 눈웃음과 인사 한 마디에 국가와 언어를 초월한 사랑과 연민을 느꼈다. 그렇게 넉 달이 지났다.

(사실 그 사이에 워싱턴 DC, 캘리포니아, 쿠바 등 여러 군데 많이 돌아다녔다. 따지고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혼자 노는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갈 때 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깊은 만남이 생겼다. 일전에 동네 도서관에서 했던 <Paint Like Matisse> 클래스를 통해 몇 명의 아줌마들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난데없이 본인 소개를 하며 커피 한잔을 제안한 테네시 아줌마 덕에, 클래스가 끝난 후 대여섯 명의 여자들은 동네 카페에 둘러 앉았다. (기특하게도 내가 어떤 커피숍에 갈지 제안하고 모두에게 길을 안내했다. 혼자 노는 동안 동네의 왠만한 카페는 다 섭렵했기 때문.) 각자의 출신과 배경, 도시에 대한 인상이나 깨알 같은 생활 꿀팁들을 공유하며 몇 시간 수다를 떨었다. 특히 런던 아줌마와 테네시 아줌마는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 애쓰던 참이었으므로, 둘이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고는 초면에 "Oh! I am gonna hug you!"를 외치며 매우 호들갑을 떨었다. 이미 외로움 만렙을 찍었던 당시의 나는 'Yeah, I've been there.'를 중얼거리며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일 주일에 한 번씩 함께 점심을 먹거나 동네 구경을 다녔다. 종종 한두 명의 사람들이 더해지거나 빠지거나 했지만, 테네시 아줌마, 런던 아줌마,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만남을 지속해 나갔다.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동네 친구였다. 동네 친구란 모름지기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도 아침에 갑자기 연락해서 함께 점심을 먹을수 있어야 하며, 정리가 완벽하지 않은 집으로 초대해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두 아줌마 모두 65년생으로 우리 엄마와 동갑이므로 '친구'라고 부르기 참 어색하지만, 달리 그들을 묘사할 단어가 없다. 그녀들에게는 나만큼 나이를 먹은 자녀도 있다. 몇몇은 직장을 다니고, 몇몇은 대학생 또는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다. 문화적 배경으로 보나 평소 관심사로 보나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지만, 이 지역의 새로운 입주민이라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낮 시간 동안에 고정된 일과가 없다는 점 때문에 우리 셋 사이에는 급격하게 공감대와 유대감이 만들어졌다. 한두 달이 지난 후에는, 할로윈, 크리스마스, 누군가의 생일 등 웬만큼 특별한 날에는 서로의 남편 및 가족들까지 다같이 모여 시간을 보낼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테네시 아줌마 - 사실은 미네소타 출신 - 앤마리는 우리들 사이에서 '폴리아나'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 폴리아나에 대한 설명) 오죽하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우리에게 트럼프의 긍정적인 면을 역설하며 정치 개혁을 염원했다. (물론 그 '긍정적인 면'이란 '트럼프는 정치에 새롭게 입문한 사람이니 여러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정도에 불과해서, 트럼프에 대한 이성적 비판과 감정적 분노로 가득했던 우리에겐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스스럼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 정다운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 정말 미국인스럽다' 싶다가도, 그녀의 정다움이 몇 번의 인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옆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연륜으로 단련된 지혜와 노하우란 이런 것이구나' 끄덕이게 된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자신을 위해 쇼핑을 할 때는 무조건 싼 것만 찾다가, 동네 할로윈 파티에서는 어린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며 집 앞에 핫도그 스탠드를 차려놓고 음식과 음료를 공짜로 나눠주는 씀씀이는 전세계 엄마들의 슈퍼파워를 느끼게 한다.


런던 아줌마 허짓은 냉철하고 분석적이지만, 동시에 로맨틱하고 기분파인 캐릭터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동안인데다, 생각하는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이 젊고 도전적이라 때론 오십 대가 맞나 의심스럽다. 애틀란타로 이사오기 직전까지 영국 메이 총리 밑에서 정부 소속 법률가로 일한 대단한 경력을 가졌지만 내면은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 2016)> 같은 사랑을 꿈꾸는 감성 소녀인 덕분에, 나는 그녀에게서 취직 면접에 대한 조언도 받으면서 동시에 어반 라이프에 대한 그리움-우리가 사는 동네는 애틀란타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교외 지역이다-이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 영화 감상, 미국인은 왜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가 따위에 대한 잡수다를 나눌 수 있다. 발랄하게 노래하고 춤 추는 그녀의 모습은, 흥부자로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부부의 눈에도 엄청난 에너자이저다. 그러나 가끔 인간극장 뺨치는 본인의 경험담 내지 고민을 이야기할 때의 그녀는 사뭇 의연하다 못해 초연하기까지 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생의 풍파를 겪으면 저렇게 의젓해질 수 있는걸까 처연해진다.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기자 생활의 안정감과 리듬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커뮤니티 또는 일종의 그룹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유대감은 나에게 생각보다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세 명이 모여 뜨개질을 하거나 근황 업데이트를 하는 일은 물론이고, 세 부부가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며 트럼프에 대한 격한 논쟁을 벌이고, 미식축구 경기를 보거나 Burns Night을 맞아 시를 낭독하고, 각지에서 모여든 열다섯 명의 식구들이 장작불 앞에 동그랗게 둘러 앉아 음료를 홀짝이며 음악을 듣는 시간들이, 따뜻하고 고소한 페이스트리처럼 한 겹 두 겹 쌓여갔다. 물론 이 시간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별히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충분히 위로 받았다. 아마 나의 아줌마 친구들 역시 비슷한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다른 세대의, 다른 배경을 가진 아줌마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조금 더 특별하다. 그녀들의 아줌마스러운 수다는 어디에서도 얻지 못하는 간접적인 인생 경험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아줌마(?)인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필터 없이 보고 들을 수 있다. 예컨대, 올바르게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이라든가, 다 큰 자녀를 대학교/직장 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보낸 엄마의 쓸쓸한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결혼과 이혼, 출산과 양육, 싱글맘 혹은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재혼 가정의 어려움과 즐거움 같은 것들. 기쁜 일은 더 기쁘게, 슬픈 일은 조금 덜 슬프게 견뎌내는 삶의 지혜들. 내 인생의 멀지 않은 곳에서 곧 일어날 수많은 사건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상상하며, 나의 오십 대는 어떨까,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문득 그려보게 된다.


다가오는 여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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