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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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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Sep 10. 2017

미국에서의 첫 정규직 이야기

아무도 엔딩을 예측할 수 없는 나의 커리어 패스

애틀란타에 산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첫 육 개월은 그 어느 때보다 느리게 지나갔는데, 후반 육 개월은 언제 어떻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후딱 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 만나고 싶다, 사람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싶다, 했었는데. 요즘은 제발 집에 가만히, 진득히,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이랑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게 이런걸까.


집에서 혹은 요가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낮 시간을 때우던 첫 육 개월 동안, 회사로 돌아가기는 싫은데 집에 가만히 있기는 또 심심해서, 이것 저것 시도해보다가 옷 가게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었다. 작년 12월 중순 쯤, 미국의 대목 중의 대목인 크리스마스 특수가 시작되면서부터 매장에 나갔다. 집 바로 앞에 있어서 걸으면 15분, 운전하면 5분만에 갈 수 있는 매장이었다. 일종의 주상복합 같은 야외 쇼핑 상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애틀란타에서 절친 중 하나인 영국 아줌마가 우연히 그 단지 내에 살아서, 일 시작하기 전이나 끝난 후에 같이 시간 맞춰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을 시작한 당시는 겨울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다른 직원들 중에서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많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사귀었다. 매장 안의 다른 직원들이랑 수다도 떨고,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의도치 않게 영어 회화 연습도 했다. 손님이 찾는 선물을 골라주거나 코디를 도와주면서 기대하지 않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고, 다행히 손님들이 내 도움을 고마워해줘서 점장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다. 파트타임을 그만둔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도 생겼다.


하지만 몇 개월 안되서 곧 일이 질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기업 브랜드 매장이었으므로, 점장을 비롯한 매니저들의 역할은 본사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서 매주 상품 디스플레이와 세일 포스터 따위를 재배치하는게 다였다. 아마도 자영업 매장은 챙겨야 할 일의 범위가 많이 다르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본사에서 결정되어 내려오는 구조에서 일은 너무 단순했고, 단순노동이 반복되면서 무료함은 증폭됐다. 점장을 비롯한 매니저들은 '매출을 올린다'는 생각 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 같았다.


직업이 여럿이거나 개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 - 퍼스너 스타일리스트, IT회사 개발자, 뮤지컬 배우, 싱어송라이터 등 - 은 본업과 부업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놓고, 돈이 안 될지언정 '본업'을 하면서 자아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특별한 취미랄게 없는 점장 아줌마와 일부 매니저들의 삶은 '어떻게 이 일만으로 건강한 정신이 깃든 삶이 유지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조로워 보였다. 이런, 조금은 오만한 생각을 했다.


신상품이 들어와도 다 거기서 거기 같고, 다른 가게에 쇼핑을 하러 가도 사고 싶은 물건보다는 상품 정리 상태나 매장 데코레이션에만 신경이 쏠리면서, '아, 출근하기 싫다' 라는 생각이 격렬하게 사무칠 때 즈음, 매장의 작은 사건으로 인해 매니저 자리 하나가 비게 되었다. 그리고 점장 아줌마는 나에게 그 매니저 자리를 맡을 것을 제안했다. 그 때가 올해 4월 중순이었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기 싫은 일인건 확실한데, 그래도 이 곳에서 만들어낸 나름의 작은 성과니까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참아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일단 'OK'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다음주에 바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매니저 포지션을 제안받은 시기와 거의 동시에 회사 한 군데에서 면접을 보러오지 않겠냐고 이메일이 왔다. 옷 가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곳저곳 이력서를 뿌렸었는데, 그 때 넣었던 한 군데였다. 그 회사에 지원하게 된 것도 조금 특이했다. 남편이 일하는 회사는 한국 본사의 미국 법인인데, 미국 법인은 규모가 작아서 남편과 남편의 사수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이 미국 법인과 함께 사무실을 쓰면서, 기술 협력도 하고 가끔 클라이언트도 공유하는 미국 협력사가 있는데, 그 협력사에서 일하던 미국인 아저씨를 통해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가 대학까지 나온 고학력자인데 미국에 건너와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듣고, 본인이 주워들은 구인 정보를 나에게 전달해준 것이었다. 자기가 사는 동네의 이웃 주민이 행정직을 뽑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별다른 설명이나 정보도 없이 이메일 주소 하나를 보내주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이메일 주소로 이력서를 보냈다. 잘 받았니 어쩌니 하는 답장이 없어서 미련없이 잊고 있었는데, 4개월 만에 갑자기 'Hello, we had to put this recruitment on hold but I'm now actively looking. Are you still interested in the position?'이라는 간결한 두 문장으로 인터뷰 제안이 왔다. 이메일 주소에서 유추한 회사 이름 말고는 어떤 부서에서 사람을 뽑는지, 어떤 포지션의 사람을 뽑는지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회사를 구글링하고 메일 발신자의 이름을 링크드인에서 찾아내 약간의 정보를 조사해갔다.


알고보니 이 회사는 광물을 채굴하고, 그 광물들을 각 산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회사였다. 영어로 들어도 한글로 들어도 뭔지 잘 모르겠는 물질들을 캐고 가공해서 판매한다. 도자기를 구울 때 쓰는 다양한 종류의 흙, 건물을 마감할 때 쓰는 대리석, 물감이나 페인트의 색을 내는 안료, 종이, 플라스틱, 화장품, 유리, 철강 등 일상생활에 쓰이는 거의 모든 물건의 원재료가 이 회사가 판매하는 주요 상품이다. 고열과 고압력을 버틸 수 있는 산업용 자재와 접착제 같은 것도 만든다. 여기까지가 (4개월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내가 파악한 회사의 산업군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본사가 있고, 50개 이상의 나라에 지사가 있는, 생각했던 것 보다 큰 회사였다.


그 많고 많은 산업들 중에 하필이면 광물 캐는 회사라니. 참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면접을 본 부서는 더 생뚱맞았다. 지적재산권을 관리하는 법무팀이었다. R&D 부서 내의 각 연구소에서 개발해낸 새로운 물질이나 사용법을 검토해서 특허를 등록하고, 각 국가의 법인들이 상품을 판매할 때 필요한 상표를 등록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나에게 면접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글로벌 지적재산권 법무팀의 최고 보스였다. 땅딸막한 체구의 그녀는 인도계 사람 특유의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이 포지션을 뽑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역할을 정의하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팀이 커지면서 내부적으로 업무를 보조할 사람이 필요해졌고, 능동적으로 일을 만들고 해결하면서 같이 성장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트렌드에 민감한 IT/마케팅/스타트업 업계의 젊고 빠릿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개발자/디자이너/마케터들과 일하다가, 갑자기 광물 캐는 회사의 지재권 법무팀에서 변호사들이라니. 정말 눈꼽에 낀 먼지만큼도 관심 가져본 적이 없는 산업과 업종이었지만, 그 포지션을 셀링하는 빅 보스의 아우라가 너무 컸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어머, 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일 하면서 배워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포지션은 나와 핏이 정말 잘 맞을 것 같다고 열심히 어필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사람을 설득하는 노련한 변호사의 기술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처음 해보는 일은 늘 즐겁다. 내가 몰랐던 분야의 일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고, 지구의 땅덩어리만 큰게 아니라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국가와 법률, 과학과 기술로 지어놓은 세계도 참 크구나, 깨닫는 순간의 기분도 좋다. 같은 사무직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밥 벌어먹는 방법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이 우스워서 혼자 피식, 하고 콧바람을 낸다.


어떤 일이든 처음 해보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같은 영어 단어도 법률 용어로 쓰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용어들이 너무 많았고, 법무팀 내에서는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인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도 많았다. 모르는데 다 아는 척을 할 수도 없고, 아는 척을 한다고 해서 모르는게 가려지는 것도 아니었다. 노트 한 권을 갖다놓고 앞 부분은 특허와 상표에 대한 지식을, 뒷 부분은 모르는 영어 단어들의 리스트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당연한 것을 나만 모른다는 사실이 예전에는 민망하고 막막한 기분을 들게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그게 뭐예요?"라고 되물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묻는 것도 계속하면 또 민망해진다.) 다행히 같은 팀원들이 점잖고 친절한 사람들이라, 나의 무식에 비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일반적인 특허 등록 절차와 글로벌 규범들에 대해 배우고, 한국에 특허낼 때는 우리가 어떤 로펌을 쓰나 구경도 하면서 어느덧 만 4개월을 지나왔다. 이제는 지재권계의 초보적인 법무사 일을 할 수도 있고, 영어로 된 각종 문서와 합의서/계약서들을 빠르게 읽으면서 핵심을 파악할 수도 있다. 살면서 언제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르겠지만, 특허를 등록하는 일반적인 절차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할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류 종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믿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특허와 상표 따위를 다루는 분야는 그런 점에 있어서 최절정에 있는게 아닐까 싶다. 온종일 실체가 없는 개념을 다루기 때문에 종종 '이게 다 뭐하는 짓이람' 하는 생각도 여러번 한다.


다행히 내가 팀에 기여하는 바도 없지 않다. 과거의 IT 컨설팅 경험이 대부분의 사무직에서 요구되는 일반적인 스킬들을 거의 최대치로 만들어준 덕분이다. 목적에 맞게 이메일을 쓰거나 엑셀/파워포인트/워드를 빠릿하게 다루는 스킬부터 시작해서, 조직 내의 업무 프로세스를 파악하는 능력,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능력 같은 것들은 어느 직장에서나 계속해서 요구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이런 훈련이 많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산업의 일을 배우는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 보다 훨씬 수월했다. (최근에 새로 들어온 주니어 변호사가 출근 이주째에 눈물 쏟는걸 보고 더 심각하게 깨달았다.) 업무를 파악하고 나니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할지가 보였고, 다행히 보스가 (변호사 치고는) 아주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 업무 효율을 위한 개선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최근에는 보스로부터 'IP Legal 팀의 COO'라는 기분좋은 칭찬도 받았다.


어쨌든 지금 할 일은 잘 하고 있는데, 사실 앞으로를 생각하면 걱정이 많다. 특허 변호사는 법률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적인 분야에도 전문가들이라 진입 장벽이 워낙 높다. 아마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미국은 대부분의 특허 변호사들이 과학/공학 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지재권 법무사를 전문적으로 해보자니, 똑같은 일을 평생 반복적으로 해야한다는게 적성에 안 맞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자기계발을 하는 건, 취미 생활에서나 찾아야 하는 닿지 못할 가치인걸까.


내 커리어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건지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지만, 매일매일 칼퇴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사실이 일단 감사하다. 커리어를 너무 YOLO 마인드로 (a.k.a. 제멋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뒷일이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만, 뒷일을 다 계산해서 나아간다고 해서 그 계산대로 모든게 다 맞아떨어지지도 않을테니, 그런 걱정은 조금 덜 할란다.


얼마전엔 법무팀 직원들이 다같이 방탈출 게임도 했다. (법무팀은 지재권 법무팀 + Commercial 법무팀 으로 나뉘어져 있다.) 방탈출 게임은 처음 해봤는데 넘 어렵고 재밌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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