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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Oct 22. 2017

옥자는 죽어서 삼겹살이 될까?

육식과 채식에 대한 넓고 얕은 고찰


#1.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까?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까, 라는 질문은 꽤 오랫동안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내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각종 다큐멘터리, 책, 영화 등을 통해서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현대 축산업의 실태에 대해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거니와, 가까이에서 채식을 권하거나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도 했다. 평소의 내 입맛만 따져봐도 굳이 채식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선뜻 육식을 끊어내는 선언을 하기에는 무언가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입맛을 그대로 닮았다. 고기의 기름진 맛 보다는 해산물의 개운한 맛과 채소의 아삭한 맛을 더 좋아한다. 같은 된장찌개를 놓고도, 남편은 차돌박이가 들어간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기어코 바지락을 넣고 끓인다. 고기 바베큐를 해먹을 때도 쌈 채소나, 아니면 같이 구워먹을 버섯, 양파 따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고기'란 원래 맛있는 채소들의 맛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해주는, 감초 역할을 맡은 조연에 가깝다. (이 부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사실 좀 궁금하다. 남편은 절대 공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워낙 먹을게 없던 시절엔 단백질 보충을 위해서 메뚜기도 먹고, 쥐 고기도 먹었다는데, 이제는 영양 보충을 위해서 고기를 먹는 시대는, 적어도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경제 수준만 놓고 봤을 때는, 꽤 오래 전에 지나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고기 사묵겠지~"라는 철 지난 유행어가 반증하듯이, 값비싼 한우나 스테이크를 사먹는게 아니면 이제 고기를 먹는다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치킨은 국민 야식이고, 삼겹살집은 골목마다 하나씩 있다. 간단하게 점심 한 끼를 사먹을 때도 고기 안 들어간 메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우리는 특별히 '고기를 먹는다'는 인식 없이 단순한 소비의 대상으로 육류를 섭취하고 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한국에 놀러온 채식주의자 영국인 친구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식사메뉴를 찾느라 꽤 고생해야 했다. 혹자는 '비빔밥 먹으면 되지 않나?'라고 쉽게 말하지만, 막상 먹으려고 보면 비빔밥 한 그릇에도 다짐육이 들어가있거나 고추장에 볶은 소고기가 포함되어 있거나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채식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2. 내가 채식을 고민하는 이유


사실 우리가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최소한 고기 섭취량을 줄여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자극을 받은 문제는 과도한 고기 섭취가 심장병, 당뇨병, 비만, 암 등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다. 고기 섭취를 줄이면 더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보고는 차고 넘친다. 인간의 치아는 육식동물이 아닌 소나 말,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는 딱딱한 견과류를 씹기 위함이며, 인간의 소화 장기는 육식동물과는 달리 매우 긴데 이것은 채소의 질긴 섬유질을 충분히 소화시키기 위함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간의 신체구조는 육식보다 채식에 더 적합하다는 말이다. 본인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 즉, 순수한 이기심의 발현으로 말미암아 -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급격하게 증가한 현대인의 고기 소비가 사실 다른 개도국에 대한 환경적, 경제적 착취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기준 아마존 산림 파괴 원인의 80%를 차지한 것이 '소 사육'이었다고 한다. 소에게 먹일 풀을 기르고 소를 키울 목장을 짓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산림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또, 유럽연합 국가들의 브라질 산 소고기 수입량은 1990년 40%에서 2001년 74%로 늘었다. 현재 브라질은 세계 최대 소고기 수출국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소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와 1, 2위를 다투며, 그 다음은 호주, 미국 순이다.) 과거 제국주의를 통한 주요 수입 품목이 설탕과 커피였다면, 지금은 거기에 소고기가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자본주의와 자원 분배의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착취는 계속되고 있고,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종국에는 본인들이 살아가는 터전마저 망가뜨리게 되는 것은 해당 수출국의 몫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크기의 우리에 갇혀 평생을 살다가 도살 및 가공되는,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축산업의 실태도 모르는 척 하기 어렵다. 알 낳는 기계처럼 노동하는 암탉이나, 알을 못 낳기 때문에 병아리 때 부터 감별되어 도살당하는 수탉, 소위 마블링이라고 일컫는 지방질을 늘리기 위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변주된 형태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까지 등장했다. 미자가 마침내 '그들(자본주의)'의 게임에 맞는 방식으로 옥자를 구해내고 당당하게 도살장을 걸어나오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예상치 못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어린 소녀 미자는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애완 돼지 옥자를 구해냈다. 하지만 옥자가 겪은 것과 똑같은 위기와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생명체들이 수백 마리, 수천 마리,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많은 관객들이 아마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오늘 저녁 삼겹살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3. 채식으로의 점진적인 접근


그러나 선뜻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육식보다 채식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아직 완전한 '채식주의자(vegetarian)' - 비건(vegan)은 고사하고 - 가 될만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체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 들어서 일단 시도해 보고 있는 것이 'eating less meat', 즉 고기를 덜 먹는 것이다. 치킨 샐러드를 먹을 때 치킨 대신 연어나 병아리콩을 먹고, 점심 때 팀 회식으로 햄버거 집을 가면 버섯이나 콩으로 소고기 패티를 대체한 베지버거를 먹고, 한식집에 가서는 목살김치찌개 대신 해물순두부찌개를 먹는 식이다. 대신 정말 고기가 먹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땐 가끔씩 고기를 먹는다.


쉑쉑버거에 가면 남편은 소고기 패티, 나는 버섯 패티를 먹는다


이 시도를 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고기를 별 생각 없이 먹어왔던가 하는 것이다. 고기의 맛과 영양분이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메뉴에 있으니까 먹었다. 내가 일주일에 얼마만큼의 고기를, 얼마나 자주 섭취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자각해본 일이 없었다. 불과 몇 백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그 것도 살코기를 매 끼니마다 먹는다는 건 일반 대중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텐데, 지금은 고기 없는 식단을 먹기 위해 일부러 신념이 담긴 선택을 해야 한다는게 아이러니다. 


남편이 치킨을 사와도 윙 한 조각으로 만족하고, 좋아하는 일본 라멘집에 가서 차슈가 들어간 돈코츠 라멘 대신 채소 육수를 기본으로 한 야사이 라멘을 먹고, 돼지국밥집에서는 황태국밥을 시켜 먹는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렇게 먹어도 충분히 (어떨 때는 고기가 들어간 것 보다 더) 맛있고, 지금까지 왜 나는 '고기가 없는' 옵션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가에 대해 스스로 의아하게 된다. 같은 값에, 아니면 일이천 원 더 보태면 고기가 들어간 걸 먹을 수 있는데, 굳이 고기가 없는 걸 먹으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던게 큰 것 같다.



#4. 끝나지 않는 고민


그런데 또 고기를 끊고 채식을 하는게 앞서 언급한 모든 문제점들의 만능 해결책이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인 채식에도 맹점이 있다. 오히려 무지한 채식주의자가 개인의 건강과 식품 산업 전체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10년동안 채식주의자였다가 지금은 정육점 주인이 된, <Ethical Butcher (윤리적 도살자)>라는 책의 저자 Berlin Reed는 말한다.


흔히 '콩 고기'로 대표되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고기 대체제들은 대부분 가공식품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다. 이런 식품을 자연적이고 건강한 음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건강을 챙긴답시고 엄마가 끓여준 백숙을 포기하고 콩으로 만든 통조림 캔 수프를 먹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고기 대체제들은 대부분 유전자 조작 식품의 대표격인 콩과 옥수수를 기본 원료로 만들어진다. 소의 우유 대신 두유를 마신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게 아니라는 말이다. 잘못된 방법의 채식은 유전자 변형을 비롯한 기형적인 농축산업의 문제에 가담하거나 이를 더 악화시키는 꼴이 될 수 있다. 대형 식품 기업들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와 비합리적인 음식 생산을 지지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식품 산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형적인 현대의 식문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 보다, 선택의 제한이 있더라도 건강하고 합리적인 먹거리를 지지하고, 음식 산업의 판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윤리적인 육식주의자가 나을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윤리적인 육식주의자는 본인이 먹는 고기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사육 및 도축되는지 충분히 알고 고기를 먹는 사람을 말한다. 실제로 Berlin Reed는 본인이 고기를 도축/정육하기 전에, 해당 농가를 찾아가 가축들이 인간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좋은 사료를 제공받고 있는지 등을 충분히 파악하고, 심지어는 도축 전의 동물과 교감까지 한다고 한다. 공장형으로 사육 및 도축당한 뒤 컨베이어 벨트에서 포장되어 나오는 고기가 아닌,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육 및 도축당한 고기만 먹는거다. 이 방식을 위선이라거나 합리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뭐가 좀 더 좋은 방식이냐고 물으면, 그에 대한 대답은 각자에게 달렸다.



#5. 의식적인 육식과 채식


음식은 더 이상 단순히 개인의 건강에만 관련되는게 아니라, 환경, 경제, 정치, 윤리라는 광범위한 문제와 얽혀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이다. 고기 하나를 두고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먹으면 또 어떤 종류를 얼마나 먹어야 하나, 끝도 없이 담론을 펼칠 수 있다. 역시 이런 문제에 정답은 없고, 결국 스스로가 본인에게 가장 잘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취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


채식주의자를 보고 '너는 까다롭게 왜 고기를 안 먹냐'고 눈치주는 것도, 육식주의자에게 '너 때문에 죽는 동물들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채식주의자가 되더라도, 채식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잘못하면 식품 산업의 문제점들을 단순히 외면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채소를 일절 거부하는 헤비한 육식주의자가 되더라도, 다른 식생활의 선택지가 어떤게 있는지 알고 나서 적극적인 육식을 선택하는게 가장 멋진 방법이 아닐까.



<참고 자료들>

http://ethicalbutcher.blogspot.com/

http://www.whyeatlessmeat.com/

http://globalforestatlas.yale.edu/amazon/land-use/cattle-ranching

http://www.greenpeace.org.uk/how-cattle-ranching-chewing-amazon-rainforest-200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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