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아버님이 쓰러지셨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급성 뇌출혈이었는데, 소위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첫 한두 시간 동안 응급실에 가는 것을 놓치셨다. 결국 뇌출혈이 일어나고 한참 후에야 119가 호출되었고, 아버님은 정신을 잃은 채로 병원에 실려가셨다.
우리가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아버님이 응급실에 실려가시고 나서도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먼저 어머님에게서 남편에게로 전화가 왔고, 회사에 있던 남편은 급히 집으로 가는 중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아빠가 쓰러지셨대. 나 지금 공항 가려고. 여권 챙기러 집에 가고 있어."
남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화요일 오전이었고, 나는 그날 오후에 있을 미팅 자료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였다. 멍하게 하얘진 머릿속에서 그리다 만 각종 차트와 슬라이드들이 떠다녔다. 어찌 된 일이냐고 자초지종을 묻는 나에게, 남편은 본인이 낼 수 있는 가장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뇌출혈이래. 같이 일하는 사람이랑 다투시다가 혈압이 좀 높아지셨나 봐.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고 그래서 직원들이 응급실 가보시라고 했는데, 괜찮다고 안정제랑 혈압약이랑 드셨다네. 나중에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실려가셨대. 일단 나 바로 한국 가려고. 여보. 나 공항까지 가는 동안 티켓 좀 알아봐 줄래?"
뇌출혈? 응급실? 아버님이? 날벼락같은 이야기였다. 마침 그날 밤에는 한국에서 놀러 오는 남동생이 우리 집에 도착하기로 되어있었고, 남편과 나는 그 전 주말부터 동생이 머물게 될 공간을 꾸미고 놀 계획을 세우는 데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주말에 시부모님과 안부를 묻는 통화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비행기 티켓을 검색했다. 한 시간 동안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되뇌며 각종 티켓 예매 사이트와 항공사 홈페이지들을 들락거렸다. 애틀란타에서 서울로 바로 가는 직항 비행기는 이미 출발 시간이 한 시간 안쪽이라 예매하기엔 너무 늦었다. 여차저차 경유 티켓을 사고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 티켓 예매했어. 진짜 나 같이 안 가도 되겠어?"
남편은 이미 공항으로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여보 회사 일도 있고, 일단은 나 혼자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남편의 말에서 어쩐지 굳은 결의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같이 가겠다고 떼를 써야 하나. 같이 갈 수 없으니 오후 미팅 준비를 마저 해야 하나. 여권 말고 다른 것도 잘 챙겨갔을까. 급해도 여벌 옷은 싸가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팀장 급의 변호사가 다가왔다. 같이 미팅 준비 작업을 하던 동료였다. 나에게 맡긴 발표자료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가, 버벅대며 말을 끝까지 잇지 못 하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오십 대 중반이 넘은 그도 몇 달 전쯤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장인어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결국 며칠 뒤에 운명하셨다. 내 이야기를 대충 전해 들은 그는, 일단 하던 거 내려놓고 집에 가라고 말했다. 팀장도 이해해줄 거라고. 나는 멍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집에 가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작업 중이던 슬라이드 몇 장을 집착적으로 마무리지었다. 그 순간 나에게,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온전한 현실이라는 것을 가장 단호하고 정확하게 보여주던 건 그 슬라이드들 뿐이었다.
# 2.
연말 휴가 동안 찾은 한국에서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님을 마주했다. 의식이 차츰 돌아오는가 싶었는데 다시 또 상태가 나빠져서, 아버님은 일반병실과 중환자실을 번갈아가며 옮겨졌다. 표정이 사라진 아버님의 얼굴은 십 분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진이 빠졌다. 눈이 감겨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얼굴에서는 아무 표정도 의미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덩달아 멍해진 표정을 하고 다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산다는 게 뭘까. 산다는 게 뭘까. 문장에 앞에 도돌이표라도 찍힌 양 같은 질문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병원 안의 세계와 병원 밖의 세계는 너무 달랐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병원 안에서는 축 처진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병원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은 다시 웃고 떠들고, 분개하고 슬퍼했다. 뭐든 다 열심이었다. 일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커피도 술도 마시고. 이런 일 저런 일에 스트레스 받고, 즐거운 대화에 까르르 웃고. 그러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면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크게 기뻐할 일도 없었지만, 크게 슬퍼할 수도 없었다. 내 앞에 누워있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그 옆 침대에 누운 환자도, 그 맞은편에 누운 환자도 다 안타깝고 서러운지라, 한 번 울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통곡을 해도 못 끝낼 테니까. 그냥 조용히 보호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길 뿐이었다. 그러다가 또 문득, 산다는 게 다 뭘까, 되뇌어지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하루 이틀은 고사하고,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을 고통과 눈물을 견디며, 공부하고, 돈을 벌고, 집과 살림을 장만하고, 자신을 꾸미고, 본인이 지지하는 가치를 열렬히 주창하고 실행하기 위해 애쓰는 걸까.
종교에 강한 믿음을 가진 한 친구는 삶은 여행이라고 말했다. 사후에 있을 궁극의 낙원에는 아픔이나 질병, 슬픔도, 늙음도 없는데, 그 낙원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마땅히 시험받아야 하고, 우리가 짧게 머물다 가는 이 삶이 곧 그 시험이라고. 매일을 신의 뜻에 따라 즐겁게 여행하듯 살면 되는 거라고 했다. 종교가 없는 또 다른 한 친구는, 인간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주어진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것 밖에 없으니, 결국 각자가 삶의 의미를 원하는 대로 정의해서 살면 되는 거라고 말했다. 그 누구도 '삶의 의미는 A이다'라고 남에게 강요할 수 없으니까, 그냥 각자 끌리는 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는 말이다.
오랫동안 나는 삶의 원동력이 '사람'과 '사랑'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유년기에 해리포터를 읽은 탓이다.) 그렇게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가족 간의 조건 없는 사랑, 친구와의 깊은 우정, 연인 간의 뜨거운 사랑 같은 것들은 너무 극명해서 말할 것도 없고, 새로 알게 된 사람과 마음이 잘 맞을 때 느끼는 기쁨, 옆 집 사는 아줌마의 다정한 인사, 길에서 스쳐가는 낯선 사람의 선한 모습을 목격했을 때 북받쳐 오르는 감정, Humans of New York 같은 매체에 게재되는 인터뷰들을 읽고 들으면서 느끼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랄까, 인간 개개인의 삶에 대한 숭고함 같은 것들은 언제나 나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충분히 사랑하면서 사는 게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사람과 사랑을 잃었을 때, 그 사랑의 깊이만큼이나 커다란 고통과 아픔이 덮쳐 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이고 잔인한 고통이다. 나는 아직 부모를 잃어본 적도, 친구나 연인과 사별한 적도 없다. 고로 나는 아직 그 고통을 온전히 겪어본 일이 없다. 조부모님을 잃으면서 겪은 슬픔이나 시아버님이 쓰러졌을 때의 충격, 그리고 그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부모님과 남편의 마음을 한 발짝 옆에 서서 간신히 가늠해보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조차도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보다 더한 고통이란 어떤 것일지 사실은 상상이 잘 안 된다. 그냥 상투적으로 말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가 아니라, 직접 겪어보기 전 까지는 정말로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는 감정이다.
사랑에 겨워 내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이 온 우주와 다름없다고 느낄 때에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결국에 사랑하는 이는 죽고, 그 슬픔을 온전히 견뎌내다가 종국에는 나마저도 죽는다. 또 누군가는 나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온몸으로 맞으며 견뎌야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끝없이 허무하다. 지금까지의 굳은 신념은 사실 모순 덩어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니면 내가 그 아픔을 다 품으면서까지 사랑을 할 용기는 없는건가.
# 3.
오늘도 나는 일곱 시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간다. 자동차 안의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갑다. 회사에 도착하면 커피를 마시고 아침도 간단하게 챙겨 먹으면서 이메일을 확인한다. 한두 개 보면서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열두 시. 밖에 나가서 점심을 맛있게 사 먹는다. 최근엔 인도식 완두콩 수프에 꽂혀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그걸 먹는다. 다시 오피스로 돌아와 동료와 몇 가지 간단한 논의를 하고, 회의에 들어가거나 요청 들어온 일들을 처리한다. 퇴근하고 나면 요가 스튜디오에 부지런히 가서 운동을 한다. 호흡하고 땀 흘리면서 저번보다 나아진 내 몸 상태와 동작을 확인한다. 나마스테. 조용한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챙겨 먹는다. 가끔 테이크아웃을 해오지만 웬만하면 바깥 음식은 덜 먹으려고 노력한다. 예능 프로를 보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고,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책 몇 장을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 보면, 아버지가 살해당한 뒤 우여곡절을 겪던 주인공 카프카가 (도서관 사서의 도움으로) 혼자 깊숙한 숲 한가운데 있는 집에서 은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끔 도서관 사서가 장을 봐서 먹을거리를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카프카 혼자서 며칠씩 지낸다. 규칙적으로 맨손체조를 하고 밥을 차려먹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요즘엔 나도 모르게 '그때 카프카의 기분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것도 아니고, 인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력하지도 않다. 오늘을 차분하게 부지런히 살고 있고, 즐거운 순간들도 있다. 나쁘지 않다. 좋다고 말할 수 있나? 음. 꽤 괜찮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시간을 때우면서 지내는 것도 아니고 알차게 보내려고 하는데, 충만한 느낌이 없다. 삶에 대한 의지와 생기로 가득찬, 상큼한 과즙같은 어떤 것. 크게 실수하지 않지만 크게 잘 하는 일도 없이, 무난하게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사실은 두렵다. 어떻게 살고 싶고, 어디로 나아가고 싶은지 방향성이 없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일 년 뒤의 나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정신은) 어디쯤에 가 있을까. 소설 속 카프카는 꿈에서 사모하던 여자랑 마침내 섹스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맺어졌던 것 같은데 (아닐 수도. 몇 년 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애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것도 다 성장의 양분이라면 좋으련만. 일 년 뒤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이불킥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 존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