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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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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Mar 18. 2018

꿈과 기억

사적인 이야기들

#1. 꿈


지난 밤에 두 가지 슬픈 꿈을 꿨다.


하나는 꿈 속에서 자고 일어난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는데, 얼굴에 깊은 주름과 움푹하게 파인 모공들이 가득해서 절망하는 꿈이었다.

거울 앞에 망연자실하게 서서 아 진작에 관리를 시작할걸, 이제 망했네,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을 했다.

다행히 현실에서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그렇게까지 심한) 주름은 없었다. 워낙 건성인 피부를 가진 탓에 주변이 조금만 건조해도 쉽게 피부가 처지긴 하는데, 거기다 이제 노화가 급격히 진행된다고 생각하니 피부와 주름에 대한 고민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남편이 사라지는 꿈이었다.

한국에 가있는 남편이 6개월 만에 드디어 다시 미국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방에서 자다 일어난 나는 남편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실로 나와보니 남편은 이미 깨어 있었고, 나는 왜 벌써 일어났냐 물으며 그 옆에 엎드려 누웠다. 남편은 오랜 비행 탓에 몸이 찌뿌둥하다고 이야기했다. "어깨 마사지 좀 해줄까?" 라고 내가 물었고, 남편이 "그래" 하면서 몸을 돌려 누웠다. 마사지를 해주려고 몸을 '영차' 하고 일으켰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남편이 사라졌다. 

현실에서 자고 일어나 옆을 돌아봤는데, 역시나 남편은 거기 없었다. 아침까지 슬픈 느낌...



#2. 기억


몇 달 전에 지인의 #MeToo 글을 본 적이 있다. 피해자의 심경 고백에 나까지 너무 속상했지만, '세상에 진짜 더러운 놈들 많구나. 갈 길이 멀다' 생각하고 넘겼다.

며칠 전 밤 침대에 누워 여러 가지 잡생각을 하다가, 과연 나는 한 번도 성적 수치심을 느낀 적이 없었나? 하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중학생 때 겪은 일 한 가지가 생각났다. 한창 아침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던 때의 일이었다. 학교에 등교하기 전에 50분 정도 원어민 선생님과 소그룹으로 영어회화를 하는 수업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학원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술집, 노래방, 식당 같은 것들이 많았다. 어느 날 아침에 어떤 술이 덜 깬 것 같은 아저씨가 혼자 걸어가는 나를 향해 "보지!" 라고 소리쳤다. 처음에는 그냥 혼잣말을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무시하고 지나가자 계속 내 등 뒤로 "야! 보지! 보지!" 외치는 거였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가는 행인도 없었고 학원까지는 아직 몇 분 더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혹시 그 아저씨랑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닥쳐 이 개새끼야"를 날릴 배짱은 더더욱 없었다. 뛰어서 도망가면 더 빨리 뛰어서 쫓아올까봐 티나게 뛸 수도 없었다. 걷는 둥 뛰는 둥 하며 최대한 잰걸음으로 학원까지 와서야 한숨 돌리고 식은땀을 닦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학원을 계속 다녔는데, 매일 학원 갈 때 마다 그 아저씨가 또 있을까봐 매일 아침 경계 태세로 걸어다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 길만 지나가면 그 때 그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서늘했다.


한 번 생각이 선명해지자,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인턴할 때 남자친구(현 남편)랑 저녁을 먹고 같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손을 잡고 있었던가 팔짱을 꼈었던가. 그런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어떤 술 취해서 맛탱이가 간 젊은 백인 남자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무책임하게 술을 마시는 놈들이 문제다) 대뜸 우리한테 대고 "Can you show me how Asians fuck?" 라고 묻는거였다. (그 뒤에 한 두 마디 덧붙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남) 1.5초 동안 버퍼링 중이다가, 방금 내가 엄청난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 저 미친 새끼가?!" 라는 한국말이 먼저 나왔다. 영어로 욕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Hey what did you just say?" 까지 밖에 못하고 그 뒤로는 남자친구가 총 맞는다고 그냥 가자고 해서 결국 분을 삭이며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했다. 그 때 그 새끼에게 뻐큐를 날리지 못한게 천추의 한.


그리고 나서 내 기억력은 절정에 이르러 마침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 평생 다녀본 학원이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영어학원이 전부인데, 초등학생 때는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을 번갈아가며 다녔었다. 학원을 다니면 좋은 점이 학원 버스로 학교까지 등하교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그래서 학원 원장(= 학원 버스 드라이버)이랑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미술학원 원장이 남자였던 곳을 다니고 있었는데, 학원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 앞이었나? 아무튼 인적이 드문 곳에서 원장이 내 볼과 귀에 뽀뽀를 하면서 몸을 더듬었다. 너무 어렸던 때라 어디를 만졌다거나 무슨 말을 했다거나 하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지하게 기분이 나빴던 기억은 선명하다. 싫다고 하고 그 장소를 벗어났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에 학원을 그만뒀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게 성추행이라는 자각을 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터라 그 일을 엄마한테 말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그 일을 다시 떠올려보니 억울함과 분노를 주체를 할 수가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겨우 열 살 전후였을텐데. 미친 개새끼. 더러운 아동 성추행범 새끼. (저 욕쟁이 아닙니다) 학원 원장이라는 새끼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을 성추행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결국 나는 그 날 밤 몇 시간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잔 데다, 미술학원 원장 새끼의 야비한 얼굴이 계속 떠올라서 그 다음 날까지 회사 일에 집중을 못 했다.

 


꿈도 기억도 우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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