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둥글둥글하지만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세 아해들의 쿠바 여행
이번 쿠바 여행 때는 나의 오랜 소중한 친구 정과 함께 했다.
그리고 정의 오랜 친구인 섭도 함께 했다.
나와 섭은 초면인 사이였으나, 우리는 금새 친구가 되었다.
나와 섭은 정의 갑작스러운 쿠바 여행 제안에 "예쓰"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둘 다 백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정과 섭과 나는 모두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다. 이 점은 이번 여행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였다.
누군가 특정 장소나 물건이나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때, 아무도 옆에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았다.
셋 다 밥도 천천히 먹는다. 온전히 내 속도로 밥을 먹을 때, 일행 모두가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식사를 끝내는 경험은 거의 처음이었다.
우리는 너무 느긋한 나머지, 어느 아침에는 바깥에서 노동절 기념 행사 퍼레이드에 온 거리가 음악 소리와 사람 소리에 난리 부르스가 났는데도, 누구 하나 일어나서 내다볼 생각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늦잠을 잤다. (지금도 다시 생각하면 웃기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기념일이 노동절인데 우리에겐 잠이 더 중요했다.)
(* 내가 직접 느낀 쿠바 노동절 분위기는 이 이상 이야기할 수가 없으니, 대신 기사 참고: http://en.granma.cu/cuba/2018-05-01/minute-by-minute-2018-may-day-celebrations)
정과 섭과 나는 성격이 둥글둥글한 한편, 각자가 원하는걸 주저하지 않고 잘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걸 먹고 싶다, 저길 가고 싶다 같은 것들을 각자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어서 서로가 원하는걸 더 쉽게 들어줄 수 있었다. 또, 내가 생각지 못한 경험들을 친구들 덕분에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우리 셋의 여행 스타일이 나는 가끔 웃겨서, 사소한 순간들을 기록해 보았다.
여행 짱! 여행친구 더 짱!
하바나에서 트리니다드로 이동하는 중, 휴게소 안의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정과 섭은 피자를 시키고 나는 샌드위치를 시켰다.
피자 사이즈에 맞는 접시가 없었는지, 샌드위치용 오목한 용기에 피자가 올려져 나왔다.
피자의 가장자리가 테이블에 닿을 듯 말 듯 위태로웠다.
정: 우와! 플라스틱 포크랑 나이프도 주네. 완전 fancy 해.
섭: 우와! 짱 맛있어요! 쿠바 음식 이 정도면 맨날 먹을 수 있겠는데?
나: ...?! 이토록 기준이 낮고 이지고잉한 너네 무엇...?
다섯 시간의 이동 끝에, 드디어 트리니다드 숙소에 도착했다.
정: 아니, 여기 차 타고 오는데 경치가 계-속 똑같은거야. 계속 나무 밖에 없고.
나: 아... 좀 아무것도 없긴 하지.
(너무 지루하고 특색 없었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정: 너무 좋더라. 멍 때리기 진짜- 좋았어.
나: ...?! 이 반전의 긍정적 피드백 무엇...?
섭: 누나들, 팩 하세요.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정과 나: 땡큐~
다음 날 밤.
섭: 누나들, 팩 냉장고에 넣어놨어요.
정과 나: 오, 고마워~
다다음 날 밤.
섭: 누나들, 제발 팩 하세요. 빨리 해서 배낭에 짐 좀 줄이게...
정과 나: ㅋㅋㅋ
덕분에 여행 내내 집에서도 안 하는 1일 1팩을 하였다.
정과 나: 섭아, 우린 쿠바에서 꼭 살사 댄스를 배워보고 싶어.
섭: 그래요, 전 아무렴 상관 없어요.
이튿날 저녁, 우리는 까사에서 스파르타 스타일의 살사 댄스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1번에서부터 6번까지의 살사 동작과, 스페셜 무브인 '레게통'을 가르쳐 주신 후,
랜덤으로 각 번호를 외치시며 우리가 그 번호에 맞는 동작을 바로바로 추도록 훈련시켜 주셨다.
섭: (흥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트리니다드에서 이틀 밤을 묵은 까사가 조금 지겨워져서 같은 지역 내의 다른 숙소로 옮겨가고 싶은 우리들.
주인 아줌마 오니디아(Onidia)에게 어떻게 말을 할지 고민한다.
정: 어떻게 말해야 하지?
나: 너무 어렵다... 까사를 바꾸려고 하는건 우리의 지나친 욕심일까?
정: 생각해봤는데... 그냥 오니디아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섭: 맞아요. 우리는 여행자니까. 여러군데 다녀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아마 그러라고 할 것 같아요.
나: 그래. 그럼 있다 꼭 말해보자.
(잠시 후 오니디아와)
우리들: 오니디아, 우리 내일 체크아웃 하고 싶어요. 아침에 몇 시까지 나가야 해요?
오니디아: (안타깝다는 듯이) 와아이? 두 유 니드 어 땍시? 웨어 알 유 고오잉?
우리들: 우리 트리니다드 비에야 쪽에서 묵으려구요. 거기에서도 한 번 지내보고 싶어서요.
오니디아: (돌변한 목소리로) 왓??? 유 해브 투 스테이 윗 미 히어!!! 유 아 마이 빠밀리! 잇츠 익스펜시브 인 비에야! 와..왓..! 유 돈 라이크 히어? 디스 하우스 베리 뷰티풀?!
결국 우리는 트리니다드를 떠날 때 까지 오니디아 집에서 머물렀다.
택시를 불러주고 다음 숙소를 예약해주는 모든 오니디아의 과도한 친절함이 어딘지 당황스러웠는데,
그 모든 서비스가 중개 수수료 때문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깨달았다.
물론 그 수수료는 우리가 추가로 내는 것이었다.
트리니다드 구시가지는 매우 경사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그 좁은 비탈길을 따라 상인들이 천막을 쳐놓고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우리도 각자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 중 갑자기 스콜성 소나기가 미친듯이 쏟아지는데.
나: 이거 말고 다른 색깔 식탁보도 좀 보여주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물이 안 빠져서 점점 물이 찼다. 신발을 벗어든다.
섭: 이 흰 셔츠는 얼마예요?
발목까지 물이 찼다. 물살이 거세진다.
나: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네...
섭: 이 흰 바지는 얼마예요?
주변 천막의 상인들이 하나 둘 옆 건물로 대피한다.
정도 그들을 따라 누군가의 집 안으로 피신한다.
나: 좀만 더 깎아주시면 안 되요?
결재를 마친 섭도 피신한다.
나: (거대한 물살 속에서 쓸려 내려온 기념품을 획득한다.) 득템!
어쨌든 다 먹는다.
하바나의 말레꽁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 곳엔 유난히 호객 행위를 하는 뮤지션들이 많았다.
쉬고 있는 관광객들에게 무작정 뮤지션들이 다가와 연주와 노래를 시작한 후 끝에 팁을 요구하는 식이다.
정: 음? 섭이는 어디 갔지?
나: 어? 저기...
섭: (통기타를 맨 긴 머리 아저씨 앞에서 수줍은 그루브를 타고 있다.)
정과 나: 헐... 쟤 아저씨 거절 못해서 들어주고 있나봐.
아저씨는 오직 섭을 향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하는 아저씨 등 뒤로 무심한 표정의 관광객들이 지나간다.
섭도, 아저씨도, 서로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섭: 아저씨가 제 이름까지 넣어서 노래 불러 줬어요.
정: 무슨 노래였을까?
나: 사랑의 세레나데 같은 거.. 아니였을까?
Vegas Grande라는 폭포까지 등산을 한 후, 수영과 휴식 후에 다시 산을 내려오는 길.
집에서 서식하는 벌레들이 너무 싫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섭: 쥐는 좀 불쌍하다. 피카츄잖아요.
정: 어 진짜? 피카츄 내 최애 포켓몬이야.
나: 어, 난... 야돈! 야도란으로 진화할 때 너무 귀여워. (* 참고: https://youtu.be/1nWmdIkN4jY)
정: 섭이는?
섭: 전 이브이요.
정: 아. 이브이 졸귀.
섭: 이브이 진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정: 지금 이거 이십대 후반의 대화인 것 실화임? 우리 엄마가 들으면 진짜 한심해 하겠다.
나: 삼십대 후반에도 계속 할 듯. ^^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