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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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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Jun 27. 2018

환상의 약


사건의 시작은 지난 주말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목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마른 침을 몇 번 삼켜도 칼칼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적어도 최근 이 년 간은 한 번도 감기를 앓은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럴까. 침대에 걸터 앉아, 어제 낮부터 오늘 새벽까지의 내 컨디션과 주변 환경들을 하나씩 복기해 보았다.      


하나, 갑자기 잠자리가 바뀌었다. 주말 동안 집이 아닌 남편 회사 근처의 숙소에서 묵기로 했는데 어제가 이 숙소에 도착한 첫 날이었다. 어제 덮고 잔 이불이 평소에 덮는 것 보다 훨씬 얇긴 했는데. 평소 온도보다 낮아서 몸이 놀란건가?

둘, 어제 낮에 보니 실내 온도가 자동으로 조절되고 있는 것 같던데. 간밤에 에어컨 바람이 너무 셌나?

셋, 숙소에 누가 상주하고 있는게 아니라서 그런지 냄새도 나고 청소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집 안의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셨나?


날은 더운데 부은 목 때문에 차가운 음료를 마음놓고 마실 수가 없었다. 코도 조금씩 막혀와 숨쉬기가 불편했다. 머리는 무거워지고 두통도 생기는 것 같았다. 풍선에 바늘 구멍 난 것 마냥, 이 조그만 불편함으로도 꾸준하게 스트레스는 쌓여 컨디션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편은 내 말을 듣자마자 감기약을 먹을 것을 권했다. 당장 감기약이 없으니 집에 가기 전까지 타이레놀이라도 한 알 먹으라고 했다.

외할머니와 이모들 손에서 만들어진 각종 차와 즙과 한약을 먹으며 자란 나는, 늘 약보단 음식과 차가 더 좋은 치료제라고 생각했다. 타이레놀은 생리통이 있을 때도 왠만큼 아픈게 아니면 안 먹으려고 노력하는 약인데 이깟 목 부은 것 때문에 먹을 수야 없지, 생각하며 남편의 말을 그냥 넘겼다.


오후가 되어도 내 목구멍 안쪽은 여전히, 고양이 털 한 뭉치가 걸린 것 처럼 묵직하고 답답했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났을 때는 붓기가 가라앉기는 커녕 오히려 더 올라와, 목젖까지 부은 느낌이었다.


드디어 주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주말 내내 '집에 가면 무물 끓여 마셔야지' 생각하고 있던 나는 집에 도착해서 냉장고부터 뒤졌다.

'무물'은 '무말랭이차'의 준말이다. '무물'은 표준어도 아니고 사투리도 아니다. 그냥 예전부터 우리 집에서 엄마아빠가 쓰던 줄임말이다. 엄마아빠의 엄마아빠들도 그냥 예전부터 그렇게 불렀을까? 어쨌든 나와 동생들은 그냥 예전부터 무말랭이차를 '무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무말랭이차'는 말 그대로 무말랭이를 차로 우려서 마시는 거다. 흔히 반찬으로 먹는 무말랭이 김치의 그 무말랭이다. 다만 무말랭이차는 잘 마른 무말랭이를 여러번 덖어야 한다는 점이 일반 무말랭이와 다르다. 잘 덖은 무말랭이는 짙은 흙갈색 빛을 띈다. 특유의 향도 있고 씁쓸한 맛도 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한 잔 다 마시고 나면 저도 모르게 "한 잔 더..." 말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 중독성은 깊고 구수한 맛 때문인 것 같다. 덜 볶아져서 말그레한 색깔의 무말랭이에는 그런 향취가 없다.


우리 집 냉동고에는 여러 번 잘 볶아져 좋은 빛을 띄는, 봉다리에 코만 갖다대도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무말랭이가 한 봉지 있었다. 그건 지난 겨울,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캐리어에 넣어가라고 챙겨준 것이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엄마한테 잊지 말고 챙겨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동생과 서울에서 자취를 할 때부터, 우리는 감기 기운이 으슬으슬하게 있거나 날이 쌀쌀하게 찬바람 불 때에는 꼭 무물을 끓여 마셨다.

무물을 한 주전자 끓이면 작은 원룸이 금방 습한 온기로 가득찼다. 물을 한껏 빨아들여 탱탱 불은 무는 원래 크기의 다섯 배 정도로 커졌다. 분명히 처음엔 주전자에 무가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우리는 의아해하며 맛이 덜 빠진 무를 재탕 삼탕해서 우렸다.

구수하고 꼬릿한 차 향은 짧은 시간 안에 우리들의 영혼을 지방의 부모님 집으로 데려다 놓았다. 과일 값 걱정 없이 아침저녁으로 과일을 양껏 먹을 수 있는 곳.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었는데 빨래도 청소도 요리도 다 되어 있는 곳. 차 한 모금에 마음이 평안해졌다.

무물을 마시면 무엇보다 감기 걱정이 없어서 좋았다. 감기 기운이 조금 돌 때는 찻물을 계속 들이키면 하루이틀 사이에 컨디션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감기 몸살은 딴 세상 사람 이야기였다.


2년 전에 미국으로 이사올 때에도 나는 덖은 무말랭이를 한 움큼 싸왔었다. 어느덧 다 차로 마셔버리고 없어서 이번에 한국 온 김에 또 싸가야지 생각했다.

내 짧은 부탁에, 손이 큰 우리 엄마는 김치 냉장고에서 커다란 봉지 하나를 꺼냈다. 못해도 3리터는 족히 될 양이었다. 그 안에 잘 마르고 볶아진 무말랭이가 가득 들어있었다. 엄마는 그 큰 봉지를 다 나에게 넘겨주려 했다.


"이제 외할머니도 안 계시니까 이거 만들어줄 사람도 없다. 마지막이니까 다 가져가라."


엄마의 말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짧고 굵다. 너무 짧아서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데, 나중에 다시 곱씹어보면 너무 굵어서 쉽게 소화하기 힘든 말들.

잠깐의 실랑이 끝에 원래 엄마가 주려던 양의 17분의 11 정도만 받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무말랭이를 캐리어에 넣어 올해 1월 중순 쯤 미국에 돌아왔다. 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미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한 애틀란타에는 딱히 '한파'라고 불릴 만한 날씨도 없었다. 덕분에 무말랭이는 한동안 냉동실에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4월 말이 되어 나와 남편은 뉴저지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 센터를 부르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옮기다보니 챙길 것들이 꽤 많았다. 식품류는 거의 다 버리거나 나눔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추려서 가져왔다. 물론 냉동실의 무말랭이는 꼭 필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냉동, 냉장이 필요한 것들을 두 개의 아이스 박스에 나눠 담았다.


우리가 아이스 박스 하나를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이사를 완료하고도 일 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이스 박스 안에 채워 넣었던 얼음들은 이미 다 녹아서 미지근해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박스는 육수용 건조 식품들 위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크게 상한 음식은 없는 것 같았다. 밀폐 포장된 무말랭이도 그 안에 같이 있었다. 일 초라도 빨리 냉동실에 집어넣으면 지난 일 주일 간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무모하게 기대하며 얼른 식품들을 냉동실로 옮겼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부은 목을 붙잡고 냉동실에서 꺼내온 무말랭이가 바로 그 무말랭이다.

구수하고 꼬릿한 냄새는 예의 그 냄새 그대로다.

크게 한 꼬집 집어 물에 넣었다. 한 꼬집만 더 넣어볼까. 그런데 아뿔싸.

물에 띄우니 한 달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게 보인다. 뭔가 작고 하얀 것들. 동글동글하게 옹기종기 모인 것들도.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물을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엄마와의 실랑이 끝에 양 조절에 성공한 나머지 무말랭이들도 통째로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햇빛에 바싹 말린 무말랭이를 여러번 마른 불에 덖어낸 뒤, 잘 우려낸 차로 부은 묵을 달랜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플라스틱 통에 든 종합 비타민 한 알만 간단하게 삼키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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