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좀비물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는 좀비물을 특히 좋아한다. 좀비는 겉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인간 고유의 이성이나 감정은 없다. 오히려 진짜 인간들에게 해만 끼치는 존재다. 영화의 스토리 설정 상 좀비 바이러스 해독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좀비가 인간으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래서인지 좀비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종 악(惡) 그 자체로 표현된다. 덕분에 사람들은 생각 없이, 다시 말해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좀비 죽이는 장면을 즐길 수 있다. 전반적으로 피 튀기는 살육 장면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J는 바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뎅강뎅강 챱챱 탕탕 죽이는 장면들이 J에게는 일종의 힐링인 듯 하다.
J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정의한다. 실제로 J는 유명 미술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소위 '포텐 넘치는' 젊은 작가다. 아티스트 J가 좀비물 못지 않게 즐기는 또 다른 영화 장르는 호러물이다. 살면서 본 호러물이라고는 전설의 고향이 전부인, 그마저도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봤던 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어투로 도대체 왜 그런 걸 보냐고 묻자 J는 생각보다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호러물의 핵심은 귀신 자체에 있는게 아니란다.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을 살짝 비틀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관객들을 이끄는게 묘미라나 어쨌다나.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은 시각과 상상력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하는 J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J는 내 남편의 동생이다. J와 내 남편은 두 살 차이고, 나의 생일은 J의 생일과 남편의 생일 중간 쯤에 있어서, 우리는 사실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상호 간의 위계질서 같은 것은 없었을, 우연히 동시대에 청춘을 살고 있는 또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J와 나 사이에는 '존댓말'이라는 한국어의 특성에서 비롯된 1차적 언어 장벽과 '시댁 식구'라는 2차적 문화 장벽이 존재한다.
사실, 1차적 언어 장벽은 우리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는 점 덕분에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다. 가령, 우리 둘 사이에 한국어를 못 하는 누군가가 끼여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영어에는 '~요' 라든지 '~니다' 같은 표현이 없기 때문에 영어로 이야기하다 보면 존댓말의 장벽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한국어로 대화할 때는 내가 9개월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J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존댓말을 쓴다. 가끔 이런 언어적 불공평이 J에게 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딱 그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는게 서로에게 좋은 면도 있는 것 같아서 아직까지 J에게 말을 놓으라고 종용하지는 않았다.
2차적 문화 장벽의 경우에는, 애초에 장벽 같은 것을 세우지 않으려 서로가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나도 J도 남편도 시부모님께서도, 온 식구들이 다같이 '격의 없이' 지내기를 바라고 있어서 실행이 비교적 순조롭다. 물론 '격의' 라든지, '최소한의 예의' 같은 말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라 늘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가장 못난 모습까지 다 보여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힘을 쏟는다. (그렇다. 내가 J에게 방금 자다 일어난 몰골로 씻지도 않고 "배고파. 밥 먹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내가 외모를 단장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혹시 모를 마음 속 장벽을 없애려는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다.)
J는 두 달 전 대학원을 졸업했다. 동시에 2년 간 살던 집에서도 나오게 되었다. 새로운 도시에서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이 주 간의 공백 기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J는 그 전 까지 나와 남편의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나와 J는 결혼 전후로 종종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왔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식구들이나 친구들이 함께 있었고, 그나마도 일주일 이상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남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는 일개미가 되어 있었고, 반면에 나는 한 달째 백수에 가까운 상태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J는 자연스럽게 나의 생활 패턴에 합류했다. 남편과 셋이 보내는 저녁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나와 J가 단둘이 보내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J는 나와 결이 잘 맞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취향도 관심사도 성격도 꽤 많이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좋다/싫다' 또는 '옳다/그르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므로 오해 없길 바란다. 다만, 다름을 받아들이는 당사자들은 서로를 탐색하고 알아가는데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J와 나의 경우도 그랬다.
'천천히 내 속도대로' 가는게 중요한 나에 비해, J는 불도저 같다. 정해진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나는 몇 번이고 멈춰서서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고, 이 목적지 말고 다른 방향의 장소를 갈까 다시 고민한다. 중간에 과정이 좀 험난해지면 무작정 발 뻗고 앉아 (혹은 드러누워) 길게 쉬기도 한다. 그게 몇 주, 몇 달, 어쩌면 몇 년이 될 때도 있다. 그에 반해, J는 목적지가 정해지면 일단 간다. 기회비용 같은 것은 J의 사전에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일상의 사소한 (그렇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결정들에 있어서는 그렇다.
J가 처음 뉴저지의 우리 아파트로 들어온 날, J는 마음이 급했다. 본인이 이사 나올 때 챙겨온 각종 선반과 액자를 어디에 어떻게 달지, 아직 가구 배치가 덜 된 우리 집을 어떻게 꾸밀지,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용암처럼 쏟아냈다.
"우리 이 선반을 여기다 다는게 어때요?"
"이 그림 가지실래요? 집에 걸면 예쁠 것 같은데."
"TV는 어느 쪽에다 두실 거예요? 배치가 좀 애매하긴 하네요."
"식탁은 이렇게 창가에 두는게 어떨까요? 지금 위치는 좀 산만한 것 같아서요."
"소파도 조만간 사실거죠?"
한동안 지내보다가 필요에 따라 천천히 물건을 들일 생각이었던 나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음... 고민이네. 어디에다 달지."
"아... 예쁘네."
"아니, 거기는 에어컨이 있어서... 좀 그런데..."
"어... 그래 그것도 좋네. 일단 그렇게 두다가 불편하면 또 바꾸지 뭐."
"응... 좀 지내보다가. 싸고 괜찮은게 있으면 사려구. 아직 소파를 살지, 러브싯을 살지, 소파베드를 살지 모르겠네? 그냥 암체어나 흔들의자 같은 걸 몇 개 살까 싶기도 하고."
그 다음 날에도 J의 독촉은 계속 되었다.
"우리 저기 창가에 달 선반 오늘 사러 갈까요?"
"화장실에도 수건걸이를 하나 더 달아야겠던데요?"
"씽크대 위에 컵 전용 선반을 다는건 어때요? 설거지 하고 바로바로 올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화분 사러 가실래요?"
하지만 나의 뚝심도 만만치 않았다.
"글쎄. 아직 달지 말지 결정을 못 해서. 선반 가격이 어느 정도 하려나?"
"아... 나도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흠...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여기 바로 옆에 콘센트가 있어서 위험하지 않을까?"
"화분 사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더라구."
사흘째 까지 꾸준히 나를 설득하던 J는 나흘째 되던 날부터 잠잠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J의 열정을 꺾어버린 것이었을까? 그럴 의도는 아니였는데. 괜히 빚진 마음이 들었지만, 머릿 속을 뜨겁게 달구던 용암 분출이 멈추니 내 마음에도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로부터 일 주일이 지난 후, 내가 "우리 여기 달 선반 사러 가자."고 이야기했을 때 J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에, 선반 하기로 하셨어요? 저는 안 다는 줄 알았는데..."
"일단 길이만 재고 가서 한 번 보지 뭐. 너무 비싸면 안 하구."
선반을 사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그러나 서로 다른 마음가짐을 한 채, 우리는 나란히 홈 디포(Home Depot)의 목재 코너에 도착했다. (홈 디포는 건축 자재나 인테리어 도구 등을 파는 미국의 대형 소매업체이다.)
대형 DIY 매장에 가면 나는 늘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목재가 다 거기서 거긴줄 알았는데 종류가 참 다양하네. 선반은 생김새도 쓰임새도 어쩜 이렇게 많지. 아아, 이 많은 손잡이들과 장판과 벽지를 보아라. 천장에 매달린 각양각색의 전등 갓은 또 어떻고. 각종 자재와 공구들을 창고처럼 진열해놓은 매장 특유의 까칠함에 한 번 기가 눌리고, 찾는 물건의 수많은 세부 옵션들에 또 한 번 압도되었다. 내심 '아 그냥 선반 달지 말까'라는 생각을 질금거리고 있었단 사실을, J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냥 집에 갈까, 라는 문장이 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J는 가게 점원을 불러세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며 선택지를 좁혔다. 나는 조용히 말을 삼키고, J의 응원에 힘입어 하나 둘 구매 결정을 내렸다. 어쨌거나 J의 추진력 덕분에 우리는 당당하게 필요한 목재를 고르고, 고른 목재를 사이즈에 맞게 절단하고, 그 외에 필요한 받침대와 나사 등을 사서 매장 밖을 나왔다. (만세!) 선반 설치는 남편이 도맡아주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선반이 탄생했다. 창틀을 길게 연장시킨 형태의 선반이라 햇빛이 아주 잘 든다. 홈 디포에서 같이 사온 화분도 올리고, 바닥에서 뒹굴던 화병용 도자기들도 자리를 잡아주었다.
불도저 같은 성격에 걸맞게 J는 호불호도 꽤 뚜렷한 편이다. 우선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극명하다. 전반적으로 튀김, 돈까스, 짜장면, 김치전, 해물파전 등 기름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고, 오이, 파프리카, 수박, 참외, 메론 등을 격렬하게 싫어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아무리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만들어낸다. 하루는 J가 떡볶이에 김말이를 먹자고 했다. 냉장고에 떡볶이 재료는 있었지만 냉동 김말이는 없었기에 나는 난감한 색을 표했다. 이에 J는 별 일 아니라는듯, 김말이도 만들어 먹으면 되죠,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김말이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게 되었다. 새우 튀김이나 고구마 튀김은 그냥 원재료에 튀김옷을 입혀 튀기면 끝인데, 김말이는 당면을 비롯한 속재료를 미리 익히고, 김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속을 채워 모양을 내고, 마침내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는 것 까지 해야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곱게 자른 김의 한쪽 끝에 밀가루 물을 묻혀 돌돌 마는 J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진으로도 남겼다.
J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반응이 극과 극이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뻔 했다며 열광하는 작품들이 있는 반면, 너무 별로라며 치를 떠는 작품도 있다. 나는 그런 J를 바라보며 종종 '좋긴 한데 그렇게 눈물이 날만큼 좋은가' 혹은 '별로긴 한데 그렇게 비난할 만큼 별론가'하는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어떨 때는 같은 농도의 감동이나 실망을 강요받는 기분이 들어서 J와 함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게 은근히 부담스러울 정도다. J는 점수 계산이 가능한 볼링, 농구 같은 스포츠들은 좋아하지만, 요가나 수영 같이 혼자 연습하는 운동은 열 번 권해도 안 넘어온다. 보드게임이나 카드놀이, 포켓볼 같은 것에 내기라도 걸면 끝날 때 까지 집착적으로 집중한다. 때때로 J는 너무 단순해서, 나와 남편은 J를 만족시키기란 정말 쉽다고 놀려 먹는다.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는 J는 사실 A형 인간이다. 본인의 고백에 따르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는 편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혹시 자신의 말을 기분 나쁘게 들을까봐 걱정이 많다. 그래서 말 끝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게 습관처럼 굳었다. J는 또 매우 섬세하다. 어떨 때는 남편과 비교될 정도로 그렇다. 미술하는 자의 손길이 대부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손끝이 야무져서 무슨 일을 하든 더 깔끔하게 세심하게 한다. 벽에 그림을 거는 일이나, 설거지 후 뒷정리 같은 것들은 아주 마음에 쏙 든다. (여담이지만, 남편의 설거지는 내가 뒷정리를 한 번 더 하게 된다.)
J는 아마 결혼이 아니었으면 완벽한 남이었을, 사회에서 우연히 만났다 하더라도 서로 딱히 관심 가지지 않았을 인물이다. 남들이 보기엔 얼핏 불편할 수도 있었을 남편 동생과의 2주 간의 동거는 사실 나에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이다. 나와 내 대다수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J의 성격은 그간의 나의 귀차니즘과 부족한 끈기를 되돌아보게 했다. J가 일을 시작하기 위해 새로운 도시로 떠나고 나서, 나는 집에 4개의 추가적인 선반 및 벽걸이를 달고, 3개의 그림을 더 걸고, 1개의 가구를 새로 사고, 꽤 많은 물건들의 배치를 바꾸었다. 지난 주말에1박 2일로 잠시 우리 집에 놀러온 J가 몇 주만에 집이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새삼스러워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게 다 니가 나에게 남기고 간 흔적이란다. 너도 이제 좀 요가를 시작해보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