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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Aug 09. 2021

연초의 서프라이즈

임신 5주차의 기록 (1)

연말연초에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친구, 가족들과 임신/육아에 관해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대뜸 본인의 임신 출산 육아 계획을 밝혀왔다. 21년 몇 월에 임신을 해서 22년 몇 월에 출산을 하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것인지, 방학 기간은 또 어떻게 붙여서 활용할 것인지 (친구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에 대한 소상한 타임라인을 짚어가며 향후 1-2년 간의 계획을 밝혔다. 친구와 친구의 배우자와 '왜 아기를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2세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 속이 조금 시끄러웠다. 


가족끼리 새해 목표를 나누는 자리에서 "올해 목표는 손자 보는 것"을 운운하는 아빠 때문에, 부모님과는 본격적으로 '왜 2세를 낳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아빠는 '합리적인 논리로 2세의 필요를 설명하려는건 바보 같은 짓이다'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 왜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나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속이 답답해진 나는 엄마에게 의견을 내보라고 요청하였으나, 엄마는 '애기가 하나쯤 있으면 귀엽잖아~'와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당최 귀여운 티라고는 더 이상 남아있지가 않은 막 30대에 접어든 딸과 해병대까지 다녀온 24세 헬스장 중독 아들을 앞에 두고 중얼거렸다. 남동생은 '왜? 누나 임신하게?'와 같은 반응이 전부였다. 우리 가족의 대화 패턴은 베드민턴으로 치면 차례대로 공을 주고 받는 랠리 식의 토론이 아니라, 그냥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스매싱만 해대는 식이었다. 그래도 부산 생탁 막걸리의 힘을 입어 나름대로 아주 흥겨운 설전이었다. 그 설전은 '아이는 아빠의 실수와 엄마의 방심으로 태어나는 것' 이라는 아빠의 명언을 끝으로 싱겁게 종결되었다.


5년 만에 전화로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까지도 이런저런 인사말을 나누다가 '식구를 늘릴 계획은 없는지' 물어보셨다. 이쯤되면 임신 계획에 대한 질문은 모든 삼십대 초입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특히 기혼 여성들이) 꼭 한 번씩 거쳐가는 관문 같은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전혀 식구를 늘릴 계획이 없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나도 전혀 설득을 할 생각은 없지만"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어떤 점이 좋더라 하는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아빠의 끝없는 '손자 갖기 목표'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나는 아빠에게 '자식은 절대 낳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친구나 다른 지인들에게도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 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으나, 실상은 몇 달 전부터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사실 조용히 임신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솔직한 나의 심정은 '생생안생', 생기면 생기고 안 생기면 안 생기는거지 뭐, 이런 정도였던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연유는 다소 복잡하고 개인적인데, 간추려 말하면:


(1) 불과 1.5년 전에 제거한 난소 물혹이 또 너무 커져버려서 인생 3번째로 복강경 전신 마취 물혹 제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2) 의사선생님은 임신을 아예 안 할게 아니라면 빨리 출산을 해버리고 난소를 제거하는게 물혹 증상의 근본 해결책이라는 소견을 주셨고, (출산이 젊은 여성들의 각종 호르몬 질환 - 생리 불순, 난소낭종, 다낭성 증후군 등 - 에 가장 효과적인 자연치유책이라는 말은 이전에 한국의 대학병원 교수에게서도 여러 번 들은 바 있다)

(3) 정말 난소를 떼내어버리고 평생 자녀를 낳을 수 없게 되는 상상을 하니 조금 억울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고,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출산과 육아를 감당하기에는 도저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고,

(5) 이 마음의 준비라는 것은 평생을 기다려도 완성되지 않을 것 같고,

(6) 5년 전이나, 지금이나, 5년 뒤나 계속 똑같은 마음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면, 그렇다고 평생 소신있게 딩크로 살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 지금 낳아도 되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7) 그게 뭐 원하다고 가져지나. 일단 피임은 하지 않되 적극적으로 임신을 계획하지는 말아야겠다,

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방심하고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내 소변이 묻은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어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진짜 임신이라고?" 라는 당황스러운 외침이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은 자세에서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심지어 한국에 있던 두 달 동안에는 남편과 내가 각자의 본가에서 지내느라 잠자리를 같이 한 횟수조차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물론 피임을 안 해놓고서 임신에 경악하는 이 모순적인 나의 상황이 나도 좀 한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임신이 될 줄이야. (당시 르완다에서 청소년 성교육 관련 프로그램 일을 하던  내 여동생은, 나의 이런 독백을 듣더니 "그게 바로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강조하는 메세지야. 피임을 안 하면 임신이 되는게 당연한 거라고." 라는 일침을 날렸다.) 


사실 임신 테스트기 이전에도 몸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걸 알려주는 몇 가지 징조들이 있었다.

(1) 생리 주기도 아닌데 생리 하루이틀 전에 찾아오는 경미한 복통이 거의 일주일 정도 지속되었다. 아픈 위치나 느낌이 딱 생리 전 증후군인데, 5일 이상 그 통증이 지속되는게 조금 이상하게 생각됐다.

(2) 자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만히 있는 와중에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임신 초기증상 중 하나에 '미열'과 '오한'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열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체온을 안 재어봐서 모르지만, 미열이 오르기 전에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3) 기절하듯이 잠을 잤다. 사실 이건 한국-미국 시차 때문인지 임신 초기 증상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복통이 있던 시기에는 하루에 꼬박 10시간씩 잤다.


이런 징조들을 예민하게 느낀 나는 곧장 달러트리(우리나라로 치면 다이소 같은 곳인데, 모든 물건이 1불이다)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 두 개를 사왔다. 물론 여전히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1월 20일 수요일 아침에 첫 번째 테스트기를 사용했다. 아침 첫 소변으로 검사해야 가장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는 상식쯤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테스트는 했는데, 막상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받아들고 있으니 뇌의 모든 기능이 마비된 기분이었다. 비몽사몽의 상태로, 팬티를 내린 채 변기에 앉아, 손에 소변이 묻은 것도 모르고, '이게 뭐지...?' 생각했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테스트기를 달러트리에서 싸구려를 사와서 오류 확률이 너무 높은건가' 였다. 완벽한 현실 부인이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우리 아빠 올해 목표 이루셨네'.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현실을 부인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자가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가게 되는 길로 생각이 접어들었다. 바로 초현실적인 존재를 찾는 것. 신이시여, 삼신할미시여, 지금 지구에는 인류가 초포화 상태인걸 모르시나요. 굳이 내가 한 명 더 안 낳아도 인류는 늘어나고 지구는 고통받는데... 전 아직 이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는데요. 저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이 것은 누구를 위한 서프라이즈인가요.


두 번째 테스트기를 사용하기까지는 이틀치의 용기가 더 필요했다. 남편은 다음날 바로 다시 한 번 더 테스트를 해보라고 종용했지만, 나는 사실은 전혀 잊어버리지 않았으면서도 겉으로는 깜빡한 척을 하며,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아침 첫 소변을 이미 봐버렸네. 내일 해볼게~" 라고 어설픈 연기로 다음날, 그 다음날까지도 '임신'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려 애썼다. 그러나 날카로운 두 줄의 이미지는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거였다. 결국 다시 테스트를 해봤는데, 우습게도 두 번째 테스트기에는 실제로 오류가 있어서 아무 줄도 그어지지 않았다.  결국 다시 약국에서 더 비싼 테스트기를 사와서 오후에 재시도를 했다. 결과는 다시 두 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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