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때 아빠의 아빠가 사주셨다는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한다.
적갈색 나무 책상 위에 초록색 부직포 천이 깔려 있고 그 위로 맞춤 유리가 올라가 있다.
책상과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단층 책장에는 아빠가 30대 때 보던 영어 공부 책부터 내가 고등학생 때 쓰던 중국어 책까지 다양하게 꽂혀있다. 내가 쓰다만 익숙한 암기노트도 있다. 한 번 펼쳐본다. 아빠가 빼곡히 무언가를 적어놓았다. 30년 넘게 가전회사에서 일해온 아빠가 품질관리 관련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며 만든 정리노트다. 또 다른 노트를 펼쳐본다. 아빠의 독서정리 노트다. 자기계발서나 투자관련 서적이 주인 것 같다.
나는 그 위에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최신형 노트북을 올리고 일을 시작한다.
손이 책상 유리에 닿을 때 마다 차가워서 흠칫 놀란다.
엄마는 거실에서 티비 볼륨을 낮춘다.
잠시 후 열린 방문 틈으로 살금살금 걸어들어와서 내게 "과일 좀 갖다줄까?" 묻는다.
10대가 되어서나, 20대가 되어서나, 30대가 된 지금도, 나는 늘 방에서 무언가 중요한 걸 하고 있고 엄마는 밖에서 나를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한다. 나는 속으로 '이거 하나도 안 중요한건데' 생각한다.
다음 날 책상 위에는 두 장의 길쭉한 스포츠 타월이 깔려있다. 나의 손과 손목은 더 이상 차가울 일이 없다.
그 위에는 독서대가, 그리고 그 위에 노트북이 올려져있다. 나의 목은 더 이상 구부정할 일이 없다.
독서대의 각도를 조절하려 뒤쪽을 살펴본다. 지지대가 부러져서 본드로 고정되어 있다. 오직 한 가지 각도만 제공하는 독서대다. 오직 한 가지 방향만 바라보는 두 사람을 생각한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을만큼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와 무게에 몸을 배배 꼬다가 삐죽이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지난 겨울 2개월 간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회사의 배려 덕분에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한국 시간에 맞춰 재택근무를 했다.
결혼을 한 뒤로 줄곧 미국에 있었고,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에도 1주일 내외의 짧은 일정으로 오갔기 때문에, 친정 집에 그렇게 오래동안 머무르며 일상을 보내는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출근하시는 아빠를 배웅할 때의 새벽 공기 냄새와 엘레베이터 소리, 방에 있다가 거실에 나가면 거기에 엄마가 있다는 감각은 20년 동안 인 박여있던 거라 익숙하면서도, 10년도 넘게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낯설었다.
다시 중고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참 오묘했다. 아직 철없는 10대 딸로 돌아간 것 같아서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감정과, 어리광을 피우기엔 이미 그 시절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져버렸다는 걸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내 이성이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연결될 수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느낌.
아마 부모님에게도 익숙하게 낯선 두 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제 나도 대략 한 달 뒤면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
아직은 누군가의 '엄마'라는 존재로 죽을 때 까지 산다는게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의 엄마는 첫 아이인 나를 가졌을 때, 그리고 나를 낳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도 내 아이에게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받은 (그리고 여전히 받고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과 애정을 물려줄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고 부담과 회의만이 가득하다.
나는 아직 그렇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슴은 커녕, 머리로도 알지 못한다.
일단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걸까.
부모에게 받을 사랑을 갚을 길은 오직 내 자식에게 내리사랑을 주는 방법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