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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Aug 25. 2021

내 아기에게 장애가 있다면

임신 20주차의 기록

태아의 성장은 어느덧 20주 중반을 맞이했다. 임신기간은 보통 총 40주니까, 딱 절반 정도를 지나온 셈이다. 18주 정도부터 뱃속의 꿀렁거림이 느껴져서 '혹시 이게 태동...?'이라고 생각했던게 맞았다. 설사 때문에 배가 아플 때 뱃속이 꿀렁이는 느낌을 아시는지? 딱 그런 느낌에서 아프거나 찌르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을 제외한게 내가 받은 태동의 첫 인상이었다. 뱃속이 계속 꿀렁거리는데, 그 꿀렁임이 뒤쪽의 장기나 항문으로는 연결되지는 않는, 그런 산뜻한 꿀렁거림이랄까? 20주가 되니 태동은 단순한 꿀렁거림에서 좀 더 발전해서, 태아가 손이나 발로 내 배를 차는게 느껴진다. 배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똑똑 노크를 하는 것 같아서 귀엽다. 너도 바깥 세상이 궁금하지? 얼른 나와서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니?


태아는 내가 누워있을 때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내가 누우면 뱃속의 공간이 좀 더 여유로워져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특히 자기 직전에 태동이 엄청 느껴져서 남편에게 내 배에 손을 올려보라고 했더니 그도 똑같이 움직임을 느꼈다. 다만 처음 한두 번은 느꼈는데, 그 이후로는 태동이 계속 있다가도 남편이 배에 손을 올리기만 하면 잘 안 움직여서 '벌써부터 말 안 듣는거냐'며 남편은 조금 투덜거렸다.


지난 5월 5일 수요일, 태아와 함께 맞이한 어린이날에는 20주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매번 가던 의사 오피스가 아니라, 큰 대학 병원의 전문 sonographer가 진행하는 검사였다. 초음파만 무려 한 시간 동안 보면서 태아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전신이 아직 손바닥 크기에 불과한 태아를, 심장을 비롯한 각종 장기, 뇌, 부위별 뼈 등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초음파 검사와 NIPT 검사(산모의 혈액에서 추출한 DNA로 태아의 다운증후군 여부를 스크리닝하는 검사. 미국에서는 흔히 Harmony Test 라고 한다)에서 한 번도 이상소견을 받은 적이 없던 터라, 나와 남편은 이번 정밀 검사에서도 딱히 걱정이랄게 없었다. 검사 내내 팔 다리를 활발하게 움직이는 태아 덕분에 오히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뱃속에서도 저렇게 움직여대는데 배 밖으로 나오면 어련할까, 기대에 부푼 걱정에 잠기기도 했다.


문제는 검사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우리를 기다리게 하더니 급기야는 의사가 상담을 하자고 나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젊은 인도계 선생님은 나의 임신 경력과 우리 부부의 기본적인 건강 상태, 양쪽 부모님의 건강 상 특이사항 등을 한참 물어보더니 본론을 꺼냈다. 요지는 임신 20주 초음파 때 체크하는 목 뒤 세포 길이(Nuchal Fold)라는게 있는데 (임신 13주 이전 초음파 검사 때 체크하는 목 뒤 투명대(Nuchal Translucency)와는 다른 것) 정상 수치는 6mm 미만인데 내 뱃속 태아의 수치는 7.5mm라는 것이었다. 이 길이가 정상수치를 벗어난 경우에는 다운증후군을 비롯해 여러가지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발달장애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원한다면 양수검사(Amniocentesis)를 고려해보라고 했다. 이미 NIPT 검사 때 다운증후군, 터너증후군 등에 대한 선별검사가 이루어졌고 '저위험군'으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다시 양수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양수검사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산모의 배에서 양수를 일부 추출해내어 그 속에 떠다니는 태아의 세포로 염색체를 검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99.9%의 확률로 백여 가지의 유전성 질환 유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진단 (diagnostic) 검사이며, 초음파나 NIPT로 진행되는 선별 (screening) 검사보다 훨씬 정확도가 높다고 했다. 다만, 아기집을 직접 건드리는 침습적인 (invasive) 검사이기 때문에, 1% 미만의 확률로 조산이나 유산의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 태아의 경우, 이전 선별 검사들에서 이상소견이 없었고, Nuchal Fold 길이 이외에 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기 때문에 안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은 정말 작지만, 그래도 이 문제 때문에 남은 임신기간 내내 밤잠을 설치게 될 것 같다면 검사를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다운증후군 등의 장애가 있는 태아의 경우에는 뇌 주변 물혹(cyst)이나 심장 쪽 문제가 같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만일에 하나라도, 양수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다운증후군이나 다른 유전적 질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의 질문에 의사는 그건 부모의 신념이나 판단에 달린 문제이며, 부모가 원할 경우 임신중절 시술을 진행해줄 수 있다, 다만 뉴저지에서는 24주 이상된 태아를 대상으로 한 임신중절은 불법이며 양수검사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주가 소요되므로, 양수검사를 원한다면 1-2주 이내에 진행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환자 상담경험이 많이 없어서 긴장한걸까, 아니면 본인이 전달해야하는 소식이 스스로에게도 조금 버거웠던걸까.


마침 같은 날 오후에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의 검진도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그에게 이와 같은 결과를 전했다. 우리는 '양수검사가 꼭 필요하다' 혹은 '굳이 안 해도 된다'와 같은 좀 더 확정적인 소견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은 'soft marker 이기는 하지만, 그 쪽에서 검사를 추천한 상황이라면 나도 검사를 하지 말라고 할 수 는 없다' 라는 애매모호한 답변 이외에는 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양수검사 이전에 필요한 Genetic counseling 관련 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예약을 잡아보라고 했다.


그날 오후 내내 나와 남편은 고민에 빠졌고, 일단 카운슬링까지는 받아보자 싶어서 바로 다음날로 예약을 잡았다. 예상은 했지만 카운슬링 자체는 다소 뻔한(?) 정보 전달 수준의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검사가 꼭 필요하다 아니다에 대한 명쾌한 결론은 내려주지 못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산모의 자율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카운슬러가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부분이긴 하지만, 도대체 어떤 원칙을 가지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건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양수검사를 하자니 부작용이 걱정되고 (최악의 경우 유산), 양수검사를 하지 않자니 혹시라도 태아가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그래서 그걸 산전에 발견하지 못할 경우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부담과 시련이 되어버릴 것은 아닌지가 걱정이었다. 그나마도 미국이기 때문에 이런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 같은 것마저 느꼈다. 한국에서는 올해부터 낙태죄가 폐지되기는 했지만 아직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해주는 체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장애아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고, 내가 장애아의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무서웠다. 그리고 그로 인해 파급될 여러가지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과 부담에 대한 상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 장애를 가진, 혹은 장애아를 둔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몇 초 동안 나의 삶을 그들의 삶에 대입해보며 절망했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고 프로세스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였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전에는 머리 속에서만 합리성을 가지던 단어가, 손에 단단하게 잡히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낙태죄는 진작에 폐지되었어야 마땅했다. 태아는 세상 밖으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산모의 신체에 의지해서 잉태되고 성숙하는 생명체다. 임신 과정 내내, 그리고 출산 과정에서도 여성은 수많은 몸의 부정적인 변화와 통증, 때로는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임신을 전적으로 중단하는 결정에 대해 - 그 결정이 어떤 이유나 필요에 의해 도출된 것이든 상관없이 - 국가나 특정집단이 범죄나 살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권 침해다. 사실 뉴저지에서 24주를 기점으로 낙태를 합법/위법으로 나누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태아의 성숙도는 산모나 태아마다 다른데, 23주 6일차까지는 임신중절이 허용되지만, 24주 0일차부터는 안 된다는 점이 우습다. 임신 사실 자체를 늦게 알게 되거나, 태아의 건강상 문제나 기형 문제가 임신 중기 이후에 발견되거나, 임신기간 중에 산모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결과적으로 나와 남편은 양수검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돌아오는 월요일에 바로 예약을 잡았다. 월요일 1시가 예약이었는데, 주말 내내 계속 고민하면서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취소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 주 금요일과 주말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토요일 하루는 먹고 싶었던 음식(한국식 중국집의 탕수육과 볶음밥)을 먹고 새로 이사한 집의 고장난 오븐을 수리하는데 필요한 부품을 보러 다니느라 하루종일 밖에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정신을 다른데 두고 있길 정말 잘했던 것 같다), 나머지 시간 동안은 한국 맘카페, 미국 맘카페, 구글, 유튜브 등 인터넷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양수검사와 Nuchal Fold에 관한 온갖 자료와 논문, 경험담 같은 것들에 파묻혀 있었다.


월요일 오후의 양수검사는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양수를 체취하는 절차 자체가 워낙 간단하다. 그냥  뽑듯이 주사기를 배에 꽂아 양수를 뽑아내고,   주사 바늘에 태아가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양수검사가 끝나고 나서는 Micro Array 검사(한국에서는 '미세결실'이라고도 부르는데, 양수에서 추출한 태아 세포의 염색체를 양수검사 때보다 훨씬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염색체의 미세한 이상을 관찰하는 검사다. 양수검사에서 확인하지 못하는 수백가지 종류의 유전질환의 유무를 확인   있다)까지 진행할 것인지 말지를 두고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끝나지 않는 고민과 리서치의 반복이었다. Micro Array 검사의 경우, 이미 양수를 채취한 상황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건강 상의 리스크는 없고 다만 비용이  백만   든다는 단점이 있을 뿐이긴 했지만.


남편은 목 세포 길이 하나가 길게 나온 것 말고는 아무 이상 징후가 없는 태아에게, 양수검사와 Micro Array 검사를 운운하면서 어떻게든 문제점을 찾으려고 하는 병원 측의 태도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태아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은 아주 아주 작을 뿐인데, 마치 문제가 이미 명확하게 존재하고, 다만 발견되고 정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것 마냥 치부되는게 싫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남편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건 아니지만, 진짜 문제가 있을지 없을지는 그 확률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들을 선택지로 제시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가 그런 선택지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는 것은, 어쩌면 장애아의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이기심이 지금 내 뱃속에 있는 태아에 대한 소중함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뱃속에서 꼼지락대고 있는 태아의 움직임이 느껴지면 내 이기심에 나도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그 이기심이 차가운 진심이기 때문에 스스로 아닌 척 부인할 수가 없다.


여러가지 고민과 남편과의 대화 끝에 도달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양수검사든 Micro Array 이든, 현재 존재하는 그 어떤 첨단의 검사를 다 동원해도 태아의 기형 여부나 앞으로 태아에에 있을 그 어떤 신체적 결함, 건강 상의 문제를 다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설령 그 모든게 예측 가능하다고 해서 좋은 것도 결코 아닐테다.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 내가 가장 애정하는 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에서 이 문제는 이미 너무 훌륭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번에 내 태아에게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애는 자폐증 같은 선천적인 발달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소아암이나 백혈병 같은 난치병에 걸릴 수도 있고, 특정 장기나 관절이 약해서 매달 병원에 다니며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자, 내 이기심하고 태아의 건강하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독립변수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더 나아가서는 태아의 '건강' 자리에 태아의 '성격'이나 '재능' 같은 변수들도 얼마든지 대입 가능하겠다는 사실도. 또 지금 하는 고민과 리서치와 의사결정의 패턴이, 출산 이후에도 계속 (어쩌면 더 자주) 반복될 것이라는 점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아아, 이건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숙명같은 것일까.


아무래도 부모가 되는 기쁨보다는 부모가 되는 슬픔을 더 먼저,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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