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잃어버리다. #2

잃어버린 것,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by 기린이다

오리 같은 닭 두 마리, 닭 같은 오리 한 마리

- 집주인이 더 이상 너희를 키울 수 없대. 미안. (그런데 너흰 맛있었다.)



지금도 그러려나? 예전에는 말야. 해마다 봄이면 초등학교 교문 앞에선 애들이 구름떼처럼 모여서 쉽게 떠나질 못했어. 애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항상 어떤 아저씨가 조그만 박스에다가 샛노란 병아리들을 담아놓고 팔았어. 박스 안에는 병아리들이 콩나물마냥 가득 차 있고 여기저기 삐약삐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란 털뭉치들은 힘차게 꾸물거렸지. 가끔 아저씨가 구경하는 아이들 손 위에 병아리 한 마리를 올려놔줄 때면 애들 입에선 우와 하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졌지. 손 위의 병아리는 그때가 제일 행복할 때였을 거야. 수십, 수백 개의 호기심 가득한, 사랑을 담은 눈망울을 마주한 순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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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손 위에 병아리를 올려놓고 싶었어.



나는 운이 없는 애라서 그런지 아저씨는 단 한 번도 나를 보고는 ‘손 한번 펴봐’라고 말해주지 않았어. 아무리 오래 쪼그리고 앉아있어도 말야.



나는 엄마한테 병아리를 사달라고 졸랐어. 병아리가 너무 갖고 싶었어. 그 샛노란 털뭉치, 조그만 부리로 삐약삐약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하루에 하나씩만 먹는 과자도 이틀에 한 번으로 줄여도 좋을 만큼 말야. 병아리를 사 달라고 조른 첫날은 다행히 깔끔히 거절당했어. 두 번째 날은 꿀밤 한 대를 맞았지. 세 번째 날은 몽둥이로 맞았고 먹던 과자도 뺏겼어. 그래서 네 번째 날은 또 맞을까 봐 입술만 삐쭉 내민 채로 집안 곳곳에(물론 엄마 눈에 띄는 곳) 쪼그려 앉아 나즈막히 ‘병아리…….’라고 중얼거렸어.


입술을 잡아 뜯겼어.



그래도 나는 너무 갖고 싶었어.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아. 엄마한테 실컷 혼나도, 나는 병아리에 푹 빠졌어. 나의 이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나는 저녁 밥상에서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기로 했어. 아니, 아예 국이며 반찬 같은 건 먹지 않기로 했어. 밥도 안 먹고 단식 투쟁을 하고 싶었지만 밥을 안 먹으면 엄마가 걱정하니까 그 정도로만 하기로 했어.


밥도 뺏겼어.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엄마를 이겨낼 수가 없더라고. 그다음부터는 병아리 아저씨가 와도 신나지가 않아. 친구들이 병아리를 사서 동네 곳곳을 누벼도, 그 친구들 틈에 껴서 내 손에 올려놔 봐도 그때뿐, 어차피 못 키울 거니까. 그냥 하루하루 실의에 빠져 살았어.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검은색 봉다리를 나한테 내밀었어. 나는 그 봉다리를 열기도 전에 이게 뭔지 알 것만 같아서 콧구멍이 벌름벌름거렸지. 너무 신났어. 까만 봉다리 속에서는 엄마가 들고 올 때부터 삐약삐약 소리가 났어. 그리고 지금 내가 건네받은 이 순간에도 소리는 멈추지 않고 봉다리는 계속 뿌시럭뿌시럭 거리면서 신나게 꿈틀거렸지. 가만히 봉다리를 두 손으로 열었을 때 나에게 쏟아지는 그 눈부신 샛노란 빛, 태어나서 그만큼 기뻤던 일이 있었던가. 병아리들은 내가 봉다리를 열자마자 튀어나와서 방안 곳곳을 뛰어다녔어.

그리고 바로 한 대 맞았어. 마당에서 키우라고 말야.


방안 곳곳으로 숨은 병아리들. 나는 한 마리 한 마리씩 잡아서 다시 봉다리에 담아야 했어. 그런데 다 잡고 보니까 한 마리가 이상해. 조금 이상하게 생겼어.

“엄마! 얘는 뭐야? 오리야?”

“응”


병아리 두 마리, 오리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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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오리도 사 오신 걸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오리도 귀여우니까. 어쨌든 나는 이 귀여운 생명들이 내게 있다는 거에 크게 만족했어. 동네 슈퍼에서 박스를 구해다가 마당 한켠에 집도 만들어주고 매일매일 모이도 주고 똥도 치워줬어. 그리고 동네 고양이들이 물어 갈까 봐 낡은 새장으로 울타리도 만들었지.


하루하루가 즐거웠어. 매일 쑥쑥 커가는 병아리와 오리는 내 삶의 낙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신기한 일이 생겼어. 이 녀석들이 미쳤나 봐.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야. 원래 병아리는 모이나 물을 먹을 때 고개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삼켜. 오리는 주둥이를 앞뒤로 세차게 흔들고 말야. 그런데 우리 집 애들은 자기가 병아리인지 오리인지 잘 모르나 봐. 어떤 때는 모두 다 주둥이를 앞뒤로 세차게 흔들면서 뭘 먹고 있고 또 어떤 때는 고개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먹어.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거지.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들이지만 어린 나에게 병아리와 오리의 이런 이상한 행동은 이 녀석들이 내게 더욱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게 했어. 세상에 어떤 오리가 병아리처럼 물을 먹고 세상에 어떤 병아리가 오리처럼 모이를 먹겠어. 이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들임에 틀림없지.




어른들은 말했어. 그거 얼마 못가 죽는다고. 아무리 잘 챙겨 봐야 어차피 병들고 연약한 새끼들만 골라서 파는 거라 금방 죽을 거래.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죽는다니. 내 병아리와 오리가 금방 죽는다니.


그래,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죽기 마련이지. 그런 걸 배우기에 딱 적당한 시기일지 몰라. 병아리를 키우는 어린 초등학생이란 건 말이야.



내가 기르던 특별한 아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힘차게 뛰어다니고 곧 날아오를 것만 같던 아이들이 아프더라고.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인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저 엄마를 부르며 울거나 밤늦도록 쌕쌕 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지켜볼 뿐이었지.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내 건강을 나눠줄 수 있다면……. 어린아이들은 보통 이때 ‘죽음’이라는 걸 배우게 돼. 하지만 아쉽게도 혹은 다행히도 나는 생명과 죽음에 대해 조금 늦게 배우게 됐어. 왜냐하면 우리 병아리와 오리는 그 다음날 아침 멀쩡해졌거든.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해. 내가 먹던 감기약(항생제였겠지?)을 적당에 물에 타서 아픈 애들한테 조금씩 먹여서 거짓말처럼 싹 다 고쳐줬어. 큰 병을 이겨낸 덕분인지 얘네들은 무럭무럭 자랐어. 병아리는 어느 새 닭 티가 나기 시작해서 틈만 나면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고 새끼 오리는 제법 굵은 목소리고 꽉꽉 거리면서 물을 채워 놓은 마당 한 구석 욕조에 둥둥 떠다녔지. 곧 있으면 매일 계란 하나씩 낳아줄지도 몰라. 그리고 여전히 나는 학교 갔다 오면 이 녀석들을 억지로 품에 품고 마당 곳곳에서 놀아줬어. 지금 생각하니까 마치 무슨 동화 속 이야기 같아.


그런데 나는 더 이상 병아리와 오리를 키울 수 없게 됐어. 엄마한테 전해 들었어. 집주인이 더럽고 시끄럽다고 치우라고 했대. 이제는 누가 봐도 병아리가 아니라 닭이고 새끼 오리가 아닌 오리가 됐거든. 어른들은 날도 더운데 잘 됐다며 삶아 먹자고 그랬어.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얘네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 그런데 집주인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잖아. 아무리 나이가 어렸어도 그건 알겠더라고. 그렇다고 죽게 둘 수는 없고…….


결국 나는 아빠의 친척이 운영하는 과수원에다가 얘네들을 맡기고 방학 때마다 찾아가는 걸로 합의를 봤어. 그러면 닭과 오리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지금보단 훨씬 넓은 곳에서 잘 살 수 있고 나는 방학 때마다 볼 수 있으니까. 서로 좋은 거 아니겠어? 헤어지는 건 매우 아쉽지만 나는 얘네들을 지켜내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두 아빠 차를 타고 닭과 오리들을 과수원으로 데려다주러 갔지.




과수원은 정말 넓었어. 여기저기 맛있는 과일도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높은 나무 가지엔 기다란 그네가 매어져 있었어. 놀이터에서 타던 그네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재밌었어. 아빠의 친척이라고 하는 사람은 또 나한테 매우 맛있는 죽도 끓여줬어. 토종닭으로 만든 닭죽이라고 했는데 정말 맛있었어. 그릇까지 싹싹 긁어먹었는데…….


과수원에 풀어놨던 우리 닭 두 마리, 오리 한 마리는 어디에도 없었어. 오리를 찾겠다고, 닭을 찾겠다고 집에 갈 때까지 떼를 쓰고 울었지만 찾을 수 없었어. 닭죽을 먹기 전 까지는 있었는데……. 분명히 셋이 같이 있었는데 말야.



집에 오는 아빠 차 안에서 나는 한참을 울었고, 울다 지쳐서 잠들었어. 그리고 그날의 일기엔 이렇게 적었어.

‘닭이랑 오리를 과수원에 맡긴다고 했었다. 아빠는 거짓말을 했다. 애들아 미안해. 너네를 먹어서 미안해. 맛있게 먹어서 미안해.’



그런데 정말 맛있었어. 지금 생각하면 나는 병아리랑 오리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늦게, 그리고 조금 더 세게 ‘죽음’ 혹은 ‘이별’을 경험하게 된 것 같아. 어린 병아리들이 병으로 죽든, 다 커서 식용으로 죽든 결국 뭐든지 죽기 마련이지. 결국 언젠가는 뭐든지 헤어진다는 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두 번째 마무리,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