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잃어버리다. #04

잃어버린 것,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by 기린이다


서울로 처음 왔을 때, 우리 집은 조그만 슈퍼를 겸한 집이었어. 뭔가 세련된 그런 슈퍼는 아니야. 큰길로 나가면 정말 슈퍼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슈퍼들이 몇 있었지만 우리 집은 정말 조그만 구멍가게였지. 대신 집 앞에는 꽤 커다란 평상이 있었어.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은 우리 가게에 와서 채소를 다듬거나 전기 코드를 연결하는 소소한 부업들을 하곤 했지. 가게는 작았지만 늘 사람이 많은 곳이었어. 나도 그 평상에 누워서 수박이며 과자들을 먹는 게 참 좋았어.

그런데 우리 집은 다 좋은데 화장실이 문제였어. 너무 옛날 집이라 그런지 화장실은 마당을 가로질러 건물 뒤쪽 으슥한 곳에 있었지. 게다가 그건 재래식 화장실이었어. 친구들은 거길 ‘똥간’이라고 불렀지. 거긴 냄새도 심하고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질 수도 있는 그런 화장실이었어.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게 제일 싫었어. 가능하면 참았다가 며칠에 한 번씩만 갔지. 아무리 배가 아파도 꾹 참고 말이지.

어느 날 나는 배가 너무 아파서 쓰러졌어. 다리를 쭉 펴지도 못할 만큼 너무 아팠어. 울며 불며 엄마를 불렀지만 배가 너무 아파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어. 가게 밖에서 아주머니들과 야채를 다듬고 있는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거야. 나는 이대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죽는 거라고 생각했어. 너무 아프고 너무 무서워서 잔뜩 웅크린 채로 한없이 울었어. 그때, 방 안으로 엄마가 들어왔어. 뭔가 찾으려고 잠깐 들어온 거였는데 내가 웅크리고 울고 있으니까 크게 놀랐나 봐. 나는 엉엉 울면서

“엄마, 배가 너무 아파.”

엄마는 아픈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어.

그때, 나는 4학년인가 5학년쯤 되었을 거야. 슬슬 키가 자라기 시작해서 엄마랑 키가 비슷했어. 몸무게도 엄마랑 비슷했을 거야. 엄마는 그런 나를 업고 병원으로 뛰었어. 나는 더 이상 애가 아닌데 엄마 등에 업혀서 병원에 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 조금은 부끄러웠어. 엄마는 중간중간 나를 고쳐 업고 계속 뛰었어.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않고 계단을 3층까지 뛰어 올라갔어. 엄마는 병원에 도착해서도 나를 내려놓지 않았어. 급한 일이라고, 내 아들 죽는다고 바로 의사에게 날 보였지. 얼굴에 땀을 가득 수놓은 채로 말야.

병명은 ‘변비’였어.

관장약 하나로 쉽게 해결이 되더라구. 아, 똥을 못 싸도 사람이 이렇게 괴롭구나 하는 걸 이때 알았지. 병원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데 문득 걱정이 됐어.

‘나는 신발도 없는데 집까지 어떻게 가지?’

엄마는 나를 업고 집으로 걸어갔어.

“엄마 나 맨발로 가도 돼.”

“아이고, 우리 아들 이제 안 아프면 됐어.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그렇게 나를 업고 숨이 턱에 찰 때마다 괜찮다고 했어. 아프지 않으면 됐다고, 괜찮다고.

뱃속에 오랫동안 묶었던 게 사라져서일까. 엄마한테 들은 괜찮다는 말 때문일까. 엄마의 등은 매우 포근했어. 그날, 내가 엄마 등에 업혀있었을 때, 큰길을 지나느라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쳤을 텐데 나는 엄마의 따뜻한 등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그 먼 길에서 기억나는 건 그것 하나야.

지금, 몇 번의 이사를 다니고 나서 화장실은 이제 집 안에 있어. 재래식도 아니고 물을 내리면 엄청 잘 내려가. 옛날처럼 꾹꾹 참았다가 화장실을 가는 일도 없고.

변비는 이제 안녕~

나는 이제 괜찮은데 엄마는 가끔 아파. 크게 아픈 건 아닌데 힘들거나 어지러워서 링거를 맞는 일이 종종 있어. 나는 그럴 때마다 늘 그때가 생각나. 나도 그때의 엄마처럼 엄마를 업고 병원까지 뛰어갈 수 있을까?

‘엄마, 아프면 말해. 이번엔 내가 업어줄게.’




잊지 못할,

잃어버리지 못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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