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씨발!”
스무 살의 나는 욕을 내뱉었다. 아빠한테,
사내놈들끼리 서로를 친근하게 부르는, 그런 욕은 아니었다. 뭔가 일이 틀어졌거나 가슴 답답한 일이 생길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탄사 같은 혼잣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내뱉은 욕은, 그것은 분명, 실로 엄청난 ‘적의’를 품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한 친구가 다른 한 친구의 멱살을 붙잡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던 그 얼굴. 나는 그런 얼굴을 하고 아빠를 노려보았다. 욕을 내뱉었다.
순식간에 눈앞이 번쩍하더니 내 왼뺨이 뜨거워졌고 나는 다시 노려보았다. 아빠를,
그때는 몰랐다. 화가 난 아빠의 얼굴은, 화가 났을 아빠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날, 아빠는 뭔가 좀 신경질적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지만 아빠는 사소한 일로 잔소리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날은 정리되지 않은 집안 물건들, 현관 여기저기 널브러진 신발들이 거슬린다고 했다. 신는 것 하나만 남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은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집 밖으로 내던져졌다. 물건들이 하나씩 내던져질 때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아빠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언제 끝날까. 아빠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집안에 있는 우리에게 신경질을 냈다. 듣기 싫은 소리, 아픈 소리들이 우리의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급기야 물을 틀어놓고 씻는 동생에게 물을 낭비한다고 꿀밤을 쥐어박았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씨발!”
그 날이었다. 분명, 그 말 하나였다. 내가 아빠를 잃어버린 순간은,
내가 어릴 때, 추운 겨울이 되면 아빠와 나는 캥거루였다. 아빠는 항상 잠바 속에 나를 넣고 다녔다. 엄마의 품속만큼이나 아빠의 품속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어도 춥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아빠와 나는 등산을 자주 다녔다. 가끔 내가 힘들어서 천천히 가면 아빠는 나를 목마에 태우고 험한 산을 바람처럼 내달렸다. 너무 빨라서 멀미가 날 정도였다. 약수터에 도착하면 아빠는 늘 내가 먼저 물을 마시도록 했었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엄마 몰래 나에게 용돈을 주곤 했다. 엄마한테는 용돈을 몇 천 원씩 받곤 했는데 아빠는 단 한 번도 천 원짜리는 꺼낸 적이 없었다. 아빠는 내게 꼭 친구들과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했다.
아빠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는 내 농구공을 들고 나에게 집 앞 골목에서 농구를 하자고 했다. 아빠는 나에게 이것저것 뭔가 물어봤지만 나는 주변 시선이 부끄러웠고 내 공이 농구장이 아닌 이런 땅바닥에 닿는 것이 거슬렸다. 별다른 대답이 없어도 아빠는 나의 농구는 20여분이나 계속되었다.
내가 처음 핸드폰을 샀을 때, 아빠는 가장 반대를 하면서도 나와 함께 핸드폰 매장에 갔다. 나는 점원에게 싸고 적당한 걸로 달라고 했지만 아빠는 제일 좋은 걸 사줬다. 내 친구들이 모두 흑백에 단음 벨소리였을 때, 나는 일곱 가지 색깔과 네 가지 화음이 있는 핸드폰을 갖게 되었다. 핸드폰을 가진 사람은 우리 식구 중에 나 하나뿐이었다.
수능을 망치고 풀 죽은 얼굴로 밥상에 앉았었다. 별 이야기 없이 조용히 밥을 먹는데 아쉬움을 담은 모진 말 한마디가 아빠의 입에서 삐져나왔다. 나는 그대로 집을 나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교복 안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열몇 장을 찾았다.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나를 귀찮아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도 아빠를 사랑하지 않았어.
그런데 한 번, 딱 한 번 아빠를 잃어버렸는데
나만 몰랐던 거야.
잃어버리고 나서야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