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나는 하루에 대여섯 잔의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 한 잔, 출근 후에 문서 덩어리를 마주하며 한 잔, 식사를 하고 나서 시원한 커피 한 모금, 그리고 이어지는 수업, 수업, 내가 움직이는 사이사이 얼마나 많은 한 모금들이 있는지……. 이 정도면 하루에 물 한잔 마시지 않고도 살아가기가 충분하다. 내가 이렇게 하도 커피를 마셔대니까 그걸 지켜본 여학생이 신기한지 물어본다.
“선생님은 어쩌다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게 되셨어요?”
“음, 글쎄? 선생님은 예전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자판기 커피도 잘 안 마셨거든.”
“그런데 커피, 왜 이렇게 좋아하세요?”
“그건 습관이지.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좀 아픈데 물이나 녹차보다는 커피가 괜찮더라고.”
“에이, 그게 뭐야. 시시해.”
“아……. 아직 말, 안 끝났는데?”
“…….”
“커피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커피를 처음 마시게 된 건 예전에 만났던 선생님 여자 친구 때문이었어.”
“오오올~”
“시끄러워. 서로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오래 데이트할 수는 없었고 주로 카페에 갔는데 나는 그게 별로 안 좋았어.”
“왜요? 나는 카페 좋은데?”
“아, 남자들은 그런데 잘 안가. 작정하고 마시면 두 모금 만에 끝나는 음료 따위에 몇 천 원씩 쓰는 걸 나는 이해 못했거든. 여자 친구가 가자니까 간 거지 혼자 가거나 남자 친구들이랑은 절대 안가.”
“아, 그렇구나. 네 뭐”
“이해는 한 거니? 뭐 어쨌든 나는 음료가 나오면 나오자마자 바로 사라지는데 여자 친구는 한참을 홀짝거리면서 마시더라구. 뭐 향은 좀 좋은데 조금 마셔보니까 쓰고, 신맛도 조금 있는 것 같고 그랬어.”
“그게 커피?”
“응, 맞아. 커피였어. 여자 친구는 항상 커피를 주문했어. 나는 단것만 찾아먹었는데 점점 그것도 싫증 나더라고. 너무 단 걸 마시니까 속도 좀 느끼하고 내가 시킨 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도 좀 그렇고…….”
“아까웠구나! 선생님의 몇 천원이 순식간에 사라지니까!”
“아니, 뭐 그것도 그건데 흐허헛. 꽤 오랜 시간 같이 카페에 있는데 나만 빈 빨대를 물고 있는 게 신경 쓰였어. 밥 같은 걸 생각해봐. 네가 남자 친구랑 같이 밥을 먹는데 남자 친구가 자기는 다 먹었다고 먼저 나가버리면 기분 좋겠어?”
“커피랑 밥이랑 같아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중요한 건 내가 먼저 다 마시고 난만큼 나는 여자 친구랑 뭔가 함께하는 기분이 아니었어. 같은 공간에 있다 뿐이지 같은 걸 하는 건 아니다 이거야.”
“아, 쌤! 뭔가 알 거 같아요.”
“그렇지? 그래서 나도 그 후론 커피를 시켰어. 내 앞에 커피가 있으니까 알겠더라고. 왜 여자 친구가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지.”
“왜요? 왜요? 뭔데요? 분위기? 향?”
“아니, 더럽게 맛없어서……. 이걸 끝까지 마시려면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더만?”
“앜 뭐야~”
“그래서 좀 맛있게 먹어보려고 설탕도 넣어보고 시럽도 넣어봤어. 한 일 년 정도 그렇게 마시니까 내가 적응이 좀 되었나 봐. 시럽이나 설탕 없어도 잘 마시더라구. 예전에는 커피를 그냥 콩 볶은 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여자 친구를 만나지 않아도 어느새 나 스스로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더라.”
“오오~ 그럼 이렇게까지 마시게 된 건 그때부터?”
“음. 그런가?”
“에이 그럼 예전 여친 때문에 마시게 됐다고 그러지 뭐 이렇게 길게 말해요!”
“아, 하고 싶은 말은 이제부터야. 내가 커피를 마시게 된 건 예전 여자 친구 때문이 맞아. 그런데 말야. 비록 지금은 헤어졌지만 사랑은, 아니 모든 인연은 그 흔적을 남겨. 선생님이 고양이를 키우거든? 오늘도 그랬는데. 내가 출근하려고 문 앞에 서면 고양이가 나를 못 가게 붙잡아. 내가 떼어내려고 고양이를 들면 내 팔을 붙잡고 안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써. 여기 좀 봐. 이거 다 고양이가 긁은 거야.”
“아, 아프겠다.”
“사람도 기억도 다 똑같은 거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기억들은 그 흔적을 남겨. 지금은 그 사람 얼굴도 흐릿하지만 쌤한텐 커피가 묻었잖아. 아마 그 후로 만난 어떤 여자 친구에겐 내가 묻은 커피가 묻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뭐 다른 뭔가가 묻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너나 나나 누군가의 흔적이 묻었다는 거, 그리고 너 또한 누군가에게 향기든 뭐든 남길 거야.”
“아, 선생님 저도 지금 커피가 묻은 거 같아요.”
“그래? 내 이야기가 꽤 인상 깊었나 보다?
“아뇨 진짜 커피, 저기 물티슈 좀 주세요.”
“어, 그래.”
잃은 것은
지난 것은 향기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