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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Apr 30. 2020

미국 로스쿨 현장 속으로 3

며칠 전 모의법정 대회가 끝이 났다.

성공적으로 갈무리하여 내년에 있을 국제대회 출전권을 확보하려 했지만 결승 진출에 실패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번 학기 내내 모의법정 대회를 준비하면서 힘에 부칠 때도 많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지만 로스쿨 재학 중 가장 기억될만한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모의법정 대회는 개인전으로 하는 대회도 있지만 대부분 2인 이상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미국인 동기와의 추억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서면을 다듬고 퇴고하고 모의 변론 연습을 수없이 했던 많은 시간들은 결코 헛된 시간들이 아니었다.



저널 활동과 더불어 미국 로스쿨 교과 외 활동의 꽃인 모의법정 대회 분위기와 준비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해보고자 한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지만 모의법정 대회 참가는 리걸 마인드 역량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기 전 한 번쯤은 모의법정 대회 참가를 해보기를 적극 권한다.


모의법정 대회 준비 및 분위기


미국 로스쿨 내 모의법정 대회는 사실 종류가 많다. 학생수가 많거나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로스쿨일수록 많은 모의법정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모의법정 대회는 크게 교내 대회와 교외 대회(미 전국대회 및 국제대회)로 나뉘는데 보통 교내 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팀에 한하여 전국대회 및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학교에 따라서 학생수가 적은 학교일 경우 대회가 아닌 간단한 변론 오디션(Tryout) 형태로 진행되어 국제대회 팀 멤버를 선발하기도 한다.



처음 모의법정 대회를 접하는 순간은 미국 로스쿨 1학년 때이다. 1학년 때부터 보통 Trial Advocacy라는 모의재판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주로 로스쿨 1학년을 대상으로 민사, 형사 사건 관련 모의재판 대회를 여는데 증인신문도 해보고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Objection (이의제기)"를 외치며 상대팀과 공방을 벌일 수 있다. 실제 학교 주변 판사들이 학교에 방문하여 대회 심판을 보게 된다.



대회이다 보니 굳이 원하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특히 로스쿨 1학년생들은 아무래도 1학년 학점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대회까지 참여하는 건 큰 무리수가 될 수 있다. 1학년 학업량이 많고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정말 시간 여유가 되거나 하고 싶은 열망이 크다면 참가해도 되지만 모의법정 대회는 가급적 2학년 혹은 3학년 때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특히 1학년 때 학교에 따라서 변론 수업을 수강해야 하거나 법률 작문 시간에 교수 앞에서 변론 (Oral Argument)을 해보는 경우가 있어 대회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변론 실습을 할 수 있다.



<증인 반대신문 >

피고 측 대리인: "You went there when she got hurt because you were afraid of ~ , didn't you?" ("그녀가 부상당했을 때 거기 갔었던 이유가 어떤 사실을 두려워했던 거 아니었나요?")


원고 측 대리인: "Objection! Speculation" ("이의제기합니다! 추측성 발언입니다.")


판사: "Sustain" ("인정합니다.")


<로스쿨 1학년 모의재판 결승전>


로스쿨 1학년 때 다른 미국인 동기들이 모의법정 대회에서 현란한 변론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경험이었다. 모의법정 대회는 서면도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변론도 준비해야 하는 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다. 1학년 모의법정 대회 전체 최고 변론상을 수상했던 미국인 동기가 당시 나랑 같은 반(섹션)에 속해 있었는데 학부 때 모의법정 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었던 굉장한 내공의 소유자였다.



훗날 과연 내가 미국인들 틈에서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2학년 올라가서는 잘 준비해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모의법정 대회에 도전해 보면서 실제 판사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논리적으로 영어로 변론도 해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내가 재학하고 있는 로스쿨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모의법정 대회 참여 기회가 있었다.

교내 대회로는 Mock Trial (모의재판), Constitutional Law Moot Court (헌법 관련 모의재판), Intellectual Property Law Moot Court (지식재산권법 관련 모의재판),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Competition (국제상사중재 모의재판), Negotiation Competition (협상 모의재판), Government Contracts Competition (정부 계약법 관련 모의재판) 등등 다양한 대회가 있었다.

전국대회 및 국제대회로는 Philip C. Jessup International Law Moot Court Competition, National Veterans Law Competition, Willem C. Vis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Moot, Manfred Lachs Space Law Moot Court Competition, Animal Law Moot Court Competition, National Telecommunications Moot Court Competition, National Moot Court Competition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많다.



평소 국제중재, 국제법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교내 국제상사중재 모의재판 대회에 참가하였다. 워낙 평소에도 국제중재 관련 기사도 찾아보기도 하고 중재법 관련 수업을 다음 학기 하나만 수강하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든 중재 과목들을 수강하게 될 정도로 관심이 많아 대회 참가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



대회는 두 명이 한 팀을 이뤄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최종 결승에 진출한 두 팀 또는 최고 서면상, 변론 가상을 입상한 대회 참가자에 한하여 내년에 있을 Willem C. Vis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Moot (비스무트) 국제대회 출전권이 주어진다. 로스쿨 입학 전부터 이 국제대회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던 나는 한번 국제대회에 나가 전 세계 법학도들과 실력을 견주어보고 싶었다. 비스무트 국제대회는 Jessup 국제법 대회와 더불어 국제법 대회 양대산맥으로 예전에 가수 이소은 씨가 참가했었던 큰 규모의 대회이다. 매년 오스트리아 빈과 홍콩 두 곳에서 열리는데 보통 아시아에 속해있는 로스쿨 팀들은 홍콩대회에 많이 참여한다.



모의법정 대회는 서면작성과 구두변론, 여기에 팀워크까지 모든 면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종합역량테스트에 가깝다. 나중에 로펌 취업을 준비할 때 변호사들이 보통 작문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저널 활동을 많이 인정해주는 편이긴 하지만 모의법정 대회 입상 이력이 있다면 저널 활동만큼 그 가치를 크게 인정받는 편이다. 나는 아쉽게도 입상에 실패했지만 나중에 로스쿨 졸업할 때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활동으로 손꼽을 만큼 모의법정 대회가 주는 경험이 굉장히 컸다.




교내 국제상사중재 대회는 실제 올해 비스무트 국제상사중재 대회 문제 쟁점 몇 개를 선별하여 진행되었다.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하나의 서면을 완성하고 각각의 쟁점에 대해 중재판정부 앞에서 구두변론을 해야 했다. 서면 점수와 구두변론 점수를 합산하여 높은 점수를 획득한 원고와 피고 대리 팀이 토너먼트 승자가 된다. 국제상사중재와 관련성이 있어 보통 크게 국제중재조항 쟁점과 국제물품매매에 관한 UN협약(CISG)과 연관된 쟁점이 주어진다.



나는 저번 학기 때 국제투자법 및 중재 강의를 함께 수강했던 미국인 학우와 팀을 꾸리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 국제 상거래법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익숙한 CISG 쟁점에 관한 서면작성을 하였고, 내 파트너는 국제중재조항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서면을 작성하여 나중에 하나의 완결된 긴 서면을 제출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피고인 측 대리를 맡게 되었다. 총 30장이 넘어가는 긴 분량이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특히 각 쟁점에 관한 법률 리서치를 통해 관련 판례들과 법령, 근거를 뒷받침할 다른 자료들을 활용해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법률 리서치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국제상사중재 관련 판례들은 미국 Common Law 체계를 따르지 않아 각국의 판례들이 서로 구속력은 없지만 주장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탄탄한 뒷받침의 근거로서 활용이 될 수 있다.



다른 과목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대회까지 동시에 준비한다는 건 정말 힘들었다. 대회 문제도 5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분량으로 원고와 피고 주장이 담긴 의견서, 이메일 서신, 도표, 국제거래 계약서, 국제중재 준거 규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확한 쟁점 파악을 위해 몇 번이고 정독을 하였다. 서면작성을 위해 주말까지 쉼 없이 문서 작업을 하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심정도 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심지어 대회 같은 경우 1학점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 대충 할 수는 없었다. 로스쿨 1학년 때 처음으로 Westlaw 나 LexisNexis 같은 법률 리서치 검색 엔진을 사용하면서 법률 리서치 기초를 다졌는데 국제상사중재 대회를 접하며 Kluwer 나 Pace University Law School 검색 엔진 활용법을 추가적으로 익힐 수 있어 굉장히 뜻깊은 경험이었다. 법률 리서치 관련한 정보는 따로 나중에 소개하겠다.



파트너가 쓴 서면과 내가 쓴 서면을 하나로 합쳐 하나의 통일성 있는 긴 서면을 완성하고 제출한 후 대망의 구두변론 연습에 들어갔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실제 모의법정 대회 공간에서 상대편과 중재판정부 판사들 앞에서 구두변론을 하지 못했지만 온라인 화상으로 개별 구두 변론이 이뤄졌다. 구두 변론 시간은 각 팀 한 명씩 15분씩 변론 시간이 주어졌다. 각 쟁점별로 지그재그 형태로 원고 대리팀과 피고 대리팀이 번갈아 가며 구두 변론을 하였다. 온라인 화상 변론이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로 실제 판사들 앞에서 구두변론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이 대회는 팀들 간의 이의제기와 같은 치열한 법률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 중재판정부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판사들이 보는 앞에서 논리적으로 주장과 근거를 짜임새 있게 말하고, 판사들의 질의에 임기응변으로 얼마나 잘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구두변론을 위해 내 파트너와 함께 여러 번 모의로 연습도 해보고, 다른 상대팀과 합동하여 연습해 보기도 하였다. 변론 연습 과정을 통해 어떤 부분에서 내 논리의 허점이 있는지 또한 어조나 말하는 속도가 적정한지에 관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가상의 질의에 답변이 정확했는지 보완할 점이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 면으로 효과적인 구두변론의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실제 구두변론이 이뤄졌을 때 온라인 화상이지만 판사들 앞에서 영어로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하는 게 떨리고 긴장되었다. 상대팀 중 한 명이 공교롭게도 다른 한국인이어서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치열한 법률공방이 아닌 판사들의 질의응답에 막힘없이 대답을 하는 것이 중요해서 판사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질문들이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 제시되어 버벅거릴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침착성을 유지하였다. 구두변론까지 종료된 후 마음 한편이 짠하면서 산 정상을 정복한 느낌이 들었다.



대회가 모두 종료된 후 아쉽게도 결승 진출에 실패해 국제대회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해 큰 아쉬움이 들었지만 나와 내 파트너 모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워낙 쟁쟁한 후보들이 대회에 참가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최종 우승팀은 3학년 선배들이 차지하였고, 베스트 서면상, 베스트 변론가상 모두 미국인 선배들이 받게 되었다. 이 대회에 아시아인 학생은 중국인 두 명, 나를 포함한 한국인 두 명이 있었는데 중국인 학우 한 명만 결승 문턱을 밟았다. 경제법 저널 편집장, 헌법 모의재판 대회 4강 팀 멤버, 로리뷰 멤버 등등 한 명 한 명 화려한 내공을 자랑하는 후보들이 겨루는 대회라 경쟁이 꽤 치열했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 이 대회에서 로스쿨 역사상 한국인이 입상을 한적은 없다. 매년 입상자들은 로스쿨 내 복도에 걸려있는 명패에 이름이 새겨진다.



대회를 다 마치고 개개인별로 세 명의 판사들이 직접 평가한 서면 점수와 구두변론 점수가 적힌 표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서면 점수에서 판사 한 명이 내게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었고, 구두변론 점수에서 판사들이 고루 "Very Well Done"이라는 코멘트를 달아준 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출전해본 모의재판 대회 경험으로서 큰 의의가 있었다. 대회를 통해 정말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호흡을 맞춘 미국인 파트너와 소중한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 졸업 후에도 오래 볼 수 있는 법조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았다.




모의법정 대회라고 하면 큰 두려움이 앞설 수 있다. 특히나 영어로 진행되는 측면에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사실 미국 로스쿨에서 모의법정 대회에 참가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배우는 게 정말 많다. 정말 운도 따라줘서 입상을 할 경우 그 보상과 가치는 배가 될 것이다. 특히 미국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게 졸업하기 전 모의법정 대회 경험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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