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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 Aug 14. 2024

여름 안의 서울

서울 온 지 한 달이 되는 밤

나는 대구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태생이 대구는 아니고,

부산대병원에서 탄생해서

부산, 울산, 경주, 대구 순서로 이사를 다녔다.


아버지에겐 역마살이 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나도 대학은 연고가 아무도 없는 경남에서

대학시절을 보냈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무렵에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가

1년이 채 안 돼서 다시 대구로 내려오기도 했다.

대구는 참 살기 좋은 도시다.

‘대프리카’, ‘고담대구’와 같은

살벌한 칭호가 있어도 말이다.

대구에서 구한 첫 신혼집에서

큰 눈이 오는 법도 없고,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홍수가 나는 일도 드물다. 다만 ’열불나게‘ 더울 뿐.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해서 서울로 이사 온 것은 아니다.

직장도 오래 다녔고, 좋은 동료도 알게 되었다.


서울에 오기 전,

나는 2년 차 주말부부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주말부부를 이어나간다면,

우리의 굳건한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때문이다.

서울이 무척 좋아서 온 것은 아니란 말이다.


I SEOUL U ; 너와 나의 서울

서울은 우리에게 어떤 칭호를 얻을까.

최소한 나는 서울에게 칭호를 받고 싶지는 않다.


일과 사람을 좋아하는 와이프와 함께하며

우리만의 별칭과 칭호를 붙여나가고자 한다.

후텁지근한 서울의 여름밤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큰 선택을 하고 서울로 왔다.


대구에서 쭉 살 것이라 여겼기에,

아파트 분양을 받았으나

분양권을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이너스 7,500만원의 손해를 보았다.


20살부터 억척스럽게 야금야금 모았던

우리의 돈이 증발했다.

너무 큰 단위라, 슬프거나 아까운 기분조차

들지 않는다. 너무 큰 상실은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 딱 이런 것인가 보다.


전부 Reset 하고 새로 시작되는 판이다.

그렇다 ‘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생존이 아등바등 진흙탕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삼삼오오 모여서 즐기는 보드게임 같은 판이길 바란다.

져도 웃음이 나고, 이겨도 가벼운 즐거움만 남는.



이제 ‘판’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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